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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 명시감상 1권에서
팬티와 빤쓰
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샅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 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손현숙, [팬티와 빤쓰]({애지},2007년 여름호) 전문
셰익스피어의 걸작품, [리어왕]을 읽다보면, “오 필요를 따지지 말아라! 제 아무리 비천한 거지라도 가장 하찮은 것에서는 약간의 여분을 가지고 있단다. 자연이 필요 이상의 것을 인간에게 허용 안 한다면, 사람의 생활은 짐승과도 다를 것이 없다. 너는 귀부인이지, 만일 옷을 따뜻하게만 입도록 되어 있다면, 별로 따뜻하지도 않은데 네가 입고 있는 그런 사치스러운 옷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이냐?”라는 아주 아름답고 멋진 대사가 나온다. 이 말은 두 딸과 그 사위들에게 모든 권력과 영토를 양도한 리어왕이 그의 두 딸들이 모든 시종들을 없애버리려고 하자,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그의 두 딸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말인 데, 바로 이 말에는 우리 인간들이 사치의 인간들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사치이고 무엇이 사치가 아니란 말인가? 사치는 자기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지나치게 몸단장을 하거나, 또는 대저택에 살면서 너무나도 과도하게 낭비를 일삼는 것을 말한다. 사치의 반대말은 절약이며, 그러나 지나치게 절약만을 일삼는다면, 그는 인색한 자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절약만을 일삼는다면 각종 소비재의 산업이 위축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자가 될 것이고, 더 이상의 문화생활도 가능하지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문화의 토대는 풍요로운 부이며, 그 풍요로운 부가 없다면 우리 인간들은 순간에 살고 순간에 죽는 짐승과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짐승들은 사치를 모르고, 언제, 어느 때나 오로지 먹고 배설하고 잠 자는 것밖에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자유와 그 과시적인 소비가 미덕이 되고 있는 것처럼, 사치가 가장 훌륭한 미덕이 되고,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생활을 떠받쳐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저택과 값비싼 장식품들, 고급의상과 고급승용차, 값비싼 보석과 골동품들, 그리고 각종 스포츠와 여가 생활에 드는 물품들은 바로 그 사치의 토대 위에서만이 존재하는 물품들이며, 따라서 우리 인간들은 사치를 하는 인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치는 우리 인간들을 더욱 더 아름답게 해주고, 사치는 우리 인간들의 삶과 사회에 생기를 더해준다. 사치는 우리 인간들의 학문 연구의 욕망을 북돋아주고, 사치는 우리 인간들이 날이면 날마다 축제와도 같은 생활을 향유할 수도 있게 해준다.
그러나 지나친 사치는 이 지구상의 천연자원을 고갈시키고,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을 파괴시키게 된다. 또한 지나친 사치는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의 구조를 더욱 더 가속화시키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불신의 관계로 몰아 넣는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만발하게 되고, 또한, 근검절약하는 성실한 인간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놓는다. 따라서 근검절약이 미덕이 되고, 근검절약하는 인간이 가장 훌륭한 인간으로서 칭찬을 받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절약할 줄 아는 인간이며, 그 절약을 통해서, 그 부를 축적하고 어떠한 재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운 내일을 기약하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사치이고, 무엇이 절약이란 말인가? 어떤 때는 사치가 미덕이 되고, 어떤 때는 절약이 미덕이 된다. 사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삶은 생기를 잃게 되고, 그 사치만을 강조하게 되면 이 세상의 삶은 더없이 타락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반대방향에서 우리가 절약을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삶의 미래가 없게 되고, 그 절약만을 강조하게 되면 이 세상의 삶은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야누스와도 같은 존재들이며, 그 사치와 절약이라는 경계 속에서, 이처럼,아슬아슬하게 공중곡예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현숙 시인은 1959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또한 그는 2002년도에 첫 시집, {너를 훔친다}를 출간했으며, 토지문학제에서 ‘평사리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손현숙 시인은 시인이면서도 사진작가이기도 하고, 사진작가이면서도 시인이기도 하다. 손현숙 시인은 눈처럼 흰 피부와 앵두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흑단黑檀처럼 검은 머리를 지닌 백설공주는 아니지만, 약간의 검은 피부와 앵두처럼 붉은 입술과 그리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지닌 시인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 어느 때나 그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좋아하고, 또, 그리고, 그의 천사와도 같은 따뜻한 마음씨와 친절함을 좋아한다. 내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한 대목을 떠올려 보고, 사치와 절약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본 것은 그의 [팬티와 빤쓰]라는 시를 너무나도 재미 있고 유쾌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시의 제목이 ‘팬티와 빤쓰’라니 얼마나 유머러스하고 기상천외한 발상이란 말인가? 팬티는 서양식의 말이고, 빤쓰는 한국식의 말이다. 그 두 말들은 다같이 우리 인간들의 속옷바지를 일컫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팬티에는 고귀하고 우아한 품격이 배어 있고, 빤쓰에는 어쩐지 괜스레 촌스럽고 천한 품격이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는, 아무튼, 팬티와 빤쓰 사이에서, 또는 사치와 절약 사이에서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즉, “유명 라펠라 팬티”로 갈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땡땡이 물무늬 빤쓰”란 무엇인가? 땡땡이는
1, 둥근 대틀에 종이를 바르고 양쪽에 구슬을 단 애들의 장난감(자루를 쥐고 돌리면 땡땡 소리가 남);
2, 공사판 등에서 인부들이 감독자의 눈을 피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일;
따위 등의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 두 개의 낱말풀이가 잘 들어맞지를 않는다. 다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는 어느 속된 가정집에서 도끼자루가 썩는줄도 모르고 세상 근심 걱정없이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삶을 태도를 지시하고 있다고도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중년 여성은 일정한 직업도 없고, 더 더군다나 요란하게 몸단장을 하기는 커녕, 아름다운 미모 따위에는 전혀 관심조차도 없어 보인다. 그녀는 이 세상의 장삼이사張三李四와도 같은 속물이며, 남편이 벌어다가 주는 돈으로 밥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나간다. 그녀는 사치를 모르는 인간이며, 오직 절약하고 또 절약하는 인간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외출을 할 때는 전혀 뜻밖의 새로운 인간형으로 돌변하게 된다. 그녀의 태고유형이 백설공주의 유형으로 변모를 하게 되고,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 팬티”를 통해서,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날개를 달게 된다. 태고유형이란 집단무의식 속의 여러 이상들을 가리키고, 그것은 그 주체자에 따라서 ‘왕, 왕비, 신, 천사, 악마, 왕자, 공주, 현모양처, 아버지, 어머니’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가 있다. 손현숙 시인의 태고유형은 그 ‘유명 라펠라 팬티’에 의해서, 현모양처의 유형에서 백설공주의 유형으로 변모를 하게 된 것이고, 그는 어느 새 상류사회의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옷을 입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그 맛있는 꽃무늬팬티의 약효에 의해서 두 겨드랑이 사이에는 날개가 돋아나고, 그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 공주는 이 세상을 향해서 날아가게 된다. 즉, 나뭇꾼의 아내의 탈을 벗어던지고 아름답고 예쁜 선녀(백설공주)의 탈을 쓰게 된 것이다. 그는 사치의 인간이지, 절약의 인간이 아니다. 그는 뤼이뷔똥의 가방과 페레가모의 구두와 샤넬의 의상과 불가리 제품의 보석으로 몸단장을 했는지도 모르는 데, 왜냐하면 아무도 눈여겨 볼 수 없는 속옷까지도 ‘유명 라펠라 팬티’로 갈아 입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더욱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이며, 그는 모든 사람들의 연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백설공주가 되어간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한계도 없고, 그 끝도 없다. 언청이도, 난장이도, 절름발이도, 꼽추영감도 그가 그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한, 자기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인간----가장 선량한 인간----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의전절차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있고,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치는 고귀하고 우아한 것이지만, 타인들의 사치는 이 세상의 자원을 한없이 낭비하고 모든 근로의욕을 갉아먹는 해악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그의 이상이며 목표가 되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그 어떤 사치도 소비자의 미덕이 된다. ‘당신의 걸작품--당신의 누드’, 그 몸을 위해서라면 한국은행의 금고를 다 탕진해도 아까울 것이 없다. 손현숙 시인은 맛있는 팬티를 먹고, 그 샅을 나풀대면서 이 세상을 향해서 날아가게 된다. 그가 ‘유명 라펠라 팬티’를 입고 이 세상을 향해서 날아가는 것은 “느닷없이 교통사고를 당할”까봐 인데, 왜냐하면 그 아름다운 미모에 반하여 ‘푸르댕댕, 땡땡이 빤쓰’가 공개되는 것처럼 더없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각선미와 그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또, 그리고, 만일의 교통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유명 라펠라 팬티’를 입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화려한 사치의 극단적인 예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사치의 인간은 보드리야르의 말대로 ‘필요한 것 이상으로 쓸데없이 소비하고 낭비하는 인간’이며, 그 과시적인 사치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해나가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소비사회와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역꾼이면서도, 산업공해와 생태환경의 파괴, 그리고 계급갈등을 증폭시켜나가는 악마이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 공주가 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도 같으며, 두 날개를 다는 것과도 같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 하듯” 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팬티는 그에게 맛 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 두 겨드랑이 사이에서 그 날개가 돋아나게 하고, 그리고 죽음까지도 아름답고 우아한 백설공주로 만들어 준다. {신데렐라}에서 호박이 마차가 되고, 생쥐는 말이 되고, 큰 쥐는 마부가 되었듯이, 팬티는 마치, 손현숙 시인의 요술지팡이와도 같은 것이다.
손현숙 시인은 날이면 날마다 그 ‘유명 라펠라 팬티’를 입고, ‘바람아, 바람아, 불어오고 또 불어오려므나!’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손현숙 시인은 사치의 인간이면서도 절약하는 인간이기도 하고, 절약하는 인간이면서도 사치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사치의 인간은 팬티를 애용하고, 절약의 인간은 빤쓰를 애용한다. 그가 팬티를 입을 때는 모든 사람들의 연인이 되고, 그가 빤쓰를 입을 때는 현모양처가 된다. 집밖에서는 값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집안에서는 값싸고 실용적인 옷을 입는다. 집밖에서는 백설공주의 탈을 쓰고, 집안에서는 엉덩이가 펑퍼짐한 중년 여성의 탈을 쓴다. 그 사치와 절약, 또는 팬티와 빤쓰 사이에서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공중곡예를 펼쳐 보이면서, 그는 또한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 사랑하는 모든 사내들이여! 원, 같은 사내라도 이렇게 다를까! 이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를 보세요! 이 백설공주의 진심은 당신들에게 바쳐진 것이예요! 우리 집 바보는 내 몸을 새치기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나, 죽어도 꽃무늬레이스로 들키고 싶다”는 욕망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자주, 모든 사내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백설공주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 욕망에는 한계도 없고, 소비사회는 더욱 더 수많은 사치의 아이들을 생산해내게 된다. 나는 손현숙 시인이 실제로 ‘팬티’와 ‘빤쓰’ 사이에서 이처럼 아슬아슬하게 공중곡예를 펼쳐나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첨단에 올라서서 한 중년 여성의 욕망의 진수를 펼쳐보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그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의 감각과 그의 심리학을 통해서이다. 그는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샅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와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레이스로 들키고 싶다“에서처럼 그 감각의 깊이를 보여주고, 다른 한편,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와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 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에서처럼 그 인간 심리학의 깊이를 보여준다.
손현숙 시인의 [팬티와 빤쓰]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너무나도 풍요로운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제일급의 시적 수준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명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부분은 [리어왕]의 망나니 공주인 고너릴이 그녀의 정부情夫인 글로스터에게 그토록 요염하게 속삭이고 있는 대목을 내가 내 나름대로 변용시켜 본 것이다.
첫댓글 좋은 시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