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때 사극의 대장정, 그 끝없는 투어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하였고
격망한 세월의 망각, 그 정중동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온고지신의 실상을 이루는 사극의 세계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사극 작가의 현대적 감각으로 고조시켰습니다.
저마다 사극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는 달라도
대립과 갈등의 구조는 사극 작가의 창의적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이념의 도구가 된 사극 작가의 필력은
끝없는 민중의 타령, 백성의 하늘을 여는 이념을 한결같이 고취하였습니다.
사극에 심겨진 좌파적 이념의 코드는
민주의 옷을 입은 좌파적 민중의 심리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사극의 진실과 정의는
진영과 힘의 논리에 편중된 상대적 가치를 지향하였습니다.
정치 권력의 탐욕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진실과 정의는
누군가에게는 거짓과 불의의 복마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탐관오리의 진실과 정의는 백성의 고혈이요,
백성의 진실과 정의는 의적 임꺽정과 장길산의 투혼이 되었습니다.
사극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은
장길산의 시대정신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좌파적 이념을 구현하였습니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사극 작가의 편협한 이해는 민중사관으로 백성의 하늘을 여망하는 필력을 집중하였으나
성서적 통치의 진실과 정의를 망각하고 상실하였습니다.
상대적 가치의 편중된 진영 논리식 정의와 진실의 추구는
종말론적인 혼란한 시대정신의 타락이요, 그 오염된 이념의 쓰레기일 뿐입니다.
자유 통일을 염원하는 보수의 가치를 적폐청산의 궤적으로 삼은 좌파 독재 정치는
평등에 기초한 평화적 민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광화문 촛불 혁명의 진실과 정의를 가졌습니다.
작금의 자유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아닌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편협한 인권과 평등과 평화와 민주의 옷을 입은 민중의 소리, 그 역발산기개세가 되었습니다.
진실과 정의로서의 자유는
참된 인권과 평등과 평화와 민주를 실현하는 역동적인 힘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배제한 인권과 평등과 평화와 민주는
노예적 평화, 그 쇠사슬에 묶인 평등이요, 탈북의 고통받는 민중의 아우성일 뿐입니다.
나의 정의는 너의 불의가 되고 나의 진실은 너의 거짓이 되는 세상은
진영에 편중된 정의와 진실의 다른 이름으로 불의와 거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의 빛은 공의를 뿌리고 땅이 열여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의를 움돋게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진실과 정의를 함의한 하나님의 창조요, 그 구원의 본질을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사극의 진실과 정의로 근접하지 못하는 성서지대의 창조와 구원의 본질은
사극 작가의 창의적 한계요, 성서 저자의 영감적 탁월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사극의 패러다임은
불의와 거짓의 다른 이름으로 정의와 진실의 오염된 가상현실, 그 영상미학일 뿐입니다.
지난 주까지 51부작의 기황후를 시청하였고
이제 또 다시 77부작의 사극 이산의 투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극의 패러다임, 그 스토리텔링의 흥취는
사극의 행간을 읽어내는 또 다른 진실과 정의의 투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것은
매크로 렌즈로 야생화를 담아내는 출사의 길인 것 같습니다.
자난 날 출사의 길에서
몸에 밴 자연과 소통하는 창조의 숨결은
취화정과 연꽃과 창포의 늪지 전주 덕진 공원의 전통과 자연친화적 정취를 담아내는 사진 작가에 투영되었습니다.
출사의 길에서 얻는 정의와 진실은
액션의 활극으로 가득한 사극의 패러다임이 아닌 여행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순전한 눈입니다.
언제나 출사의 길은 진실과 소통하고
낯선 일상과 마주하는 그 삶을 공유하는 열린 창입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역사의 거울은 지난 역사의 정당한 공권력 집행을
오늘의 역사는 새로운 권력의 칼을 든 과거사 진상의 거울에 국가 폭력을 비췄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성공한 권력의 정의라지만
권력의 옷을 벗으면 불의와 거짓의 다른 이름입니다.
성서지대의 갈등 구조는
양의 탈을 쓴 삯꾼 목자의 선한 목자상, 그 대척지점입니다.
예레미야 시대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다윗의 위와 모세 율법의 전통성을 가졌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진실과 거짓의 전쟁에서
시냇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진실과 그 정의를 구하였습니다.
☞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을 찾아 못하고
멸망하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참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고
살아계신 여호와로 맹세하였으나 그 맹세는 거짓 맹세였습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탄식과 창자가 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고통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 보았습니다.
☞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애2:11)
☞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7:8-11)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렘8:10 )
☞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렘23:14)
☞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렘23:15)
참으로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는 말씀은
오늘날도 위정자와 종교인들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동료와 대화하는 가운데 강단의 복음이 사라졌다고 탄식였는데
그 동료는 자기가 설교하면서도 말씀의 사기꾼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권력을 찬탈하고도 진실과 공정과 정의로 옷입은 그 정통성을 주장하고
삯꾼 목자로 사이비 설교를 하면서도 주 예수의 복음만을 전한다고 하니
백성은 우둔하여 깨닫지 못하고 성도는 멸망받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는
종말론적인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종말론적인 불법의 비밀을 말씀하였습니다.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7-12)
참으로 불의와 거짓의 다른 이름으로 진실과 정의가 횡행하는 혼용무도한 세상......
성서지대의 진실과 정의, 그 하나님의 뜻에는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