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태어나 참으로 투표를 많이 한 세대에 속합니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 정권때까지 투표를 해 본 사람입니다. 박정희정권때와 전두환정권때는 20대였습니다. 박정희정권때는 대학시절이었는데 학교에 간 날보다 안 간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아니 학교에 간 날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계엄령속에 학교 캠퍼스에 탱크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학교내에서는 연일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19시절에는 학교가 문을 닫아 신입생 환영회가 이뤄지지 못한 것처럼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지니 신입생 환영회는 당연히 없는 것이지요. 간혹 열리는 강의시간에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최루탄 냄새에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그렇게 살벌하고 학교가 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속에 대학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선거를 치뤄졌고 이제 성인이 된 저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습니다. 당시 체제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지닌 선거였지만 결과는 예상하던 데로였습니다. 군사독재시절이었기에 이런 저런 부정선거들도 많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투표장에 가서 조그마한 저항의 마음을 표시하자는 층과 어짜피 해보나 마나한 선거이니 그냥 무시해버리자는 층으로 나뉘집니다. 정치적 무관심이 극에 달하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그래도 선거에 꼭 참가해 귀중한 한표를 행사해 달라는 절규가 메아리를 쳤습니다. 보나마나한 선거라도 참여해서 아주 조그만 반향이라도 일으키자는 대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선거날 완행열차타고 친구들과 도피성 엠티를 가는 그룹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선거를 한다고 뭐가 바뀔 것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기권해버리고 정치라는 것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이라다라는 주장도 상당했습니다.
박정권이 붕괴되고 서울의 봄이 오는 듯 했지만 전두환 일파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합니다. 5.18민주화항쟁이 일어나지만 무자비한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맙니다. 전두환 세력은 언론통폐합으로 나라의 언로를 틀어막습니다. 참 언론인들은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정권의 묵시적인 동조를 하는 언론인 지금으로 치면 기레기들이 언론사에 가득찹니다. 그런 상황속에 선거는 존재합니다.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심화됩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 희망이 없다는 정서가 팽배합니다. 젊은층에서 선거를 망각하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물론 야당정치인들의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모습은 처절했습니다. 정치적 무관심이 젊은이들에게 많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모습을 투표를 통해 이루자는 분위기는 상당했습니다.
독재와 권위주의적 정치시스템이 점차 사라져가고 정상적인 선거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정치적 무관심과 선거 망각 상황은 호전되어 갑니다. 젊은층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한국 정치에 이른바 나눔 현상이 이뤄집니다. 노년층들은 보수적 정당을 선호하게 되고 젊은층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정당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가 꽤 오래 이 나라 정치현실에서 유지됩니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이상한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뭔가 아주 큰 일을 겪으면서 뭔가 젊은층 그가운데 20대에서 독특한 분위기가 생성됩니다.
그런 분위기는 실제로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이 되고 난 2016년이후 생기기 시작한 움직임입니다. 뭔가 정치에 대한 혐오가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럭비공이자 기존의 정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이 다시 커지기 시작합니다.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권위와 위신을 팽개쳐 버리려는 트럼프의 정책에 미국의 젊은이들은 좌절하게 됩니다. 극우적인 성향의 대통령에게서 미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는 시각이 늘어납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혁신적인 분위기가 중단되고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을 받은 듯합니다. 젊은층 사이에서 미래를 불안한 시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느끼는 층이 늘어난 것입니다.
한국도 비슷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급작스럽게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뭔가 혁신적이고 개혁적인 조치가 거대한 물결처럼 한국을 휩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을 못했던 팬데믹 즉 코로나 19사태가 전세계를 공포속에 가둬버립니다. 모든 학교가 휴교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멈춰버립니다. 가족들과도 가까이하는 것도 중단됩니다. 한번 코로나에 감염되면 그 집은 동네에서 역적이 됩니다. 지금껏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 3년이상 계속됩니다. 그러면서 힘든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푼 유동성이 부동산을 자극합니다. 부동산 투기세력까지 가세해서 여기저기 난리를 피웁니다. 여기에 급작스런 부동산 가격 급등과 전세값 등으로 졸지에 벼락거지 신세가 된 사람들과 아빠찬스 엄마찬스로 대표되는 요상한 현상에 젊은이들은 좌절합니다. 이러려고 촛불혁명을 일으켰는가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터져나옵니다. 젊은층들 그가운데 20대는 이것이 평등한 사회냐며 정부에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대학가에서 이런 저런 대자보들이 붙기 시작합니다. 검찰개혁하라고 임명한 사람이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습속에 정치적 혐오를 느낍니다. 그런 현상들이 2022년 대선에 반영됩니다. 그동안 젊은층은 진보성향 정당에 노인층은 보수성향 정당에 투표하던 양상도 바뀌게 됩니다. 20대와 30대에서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층도 늘어납니다.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화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팬데믹이 풀리고 학교는 문을 열고 이제 원위치되었지만 젊은층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초저출산의 핵심이 젊은층의 정신상태에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젊은층은 이런 나라에서 무슨 결혼이며 출산이냐는 입장입니다. 집값이 급등해서 결혼후 들어가 살 집도 없는데 무슨 결혼이냐는 것이죠. 사교육비는 세계 최대수준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우느냐는 주장입니다. 앞으로 몇십년 안에 세계 최초로 소멸되는 국가 1위가 한국이라는 충격적인 예상에 대부분의 젊은층들은 좌절합니다. 그들이 40대 50대가 되어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할 시점에 소멸국가라니 너무도 충격적입니다.
게다가 꼰대같고 틀닦이들인 노년층의 연금과 부양의 책임을 자신들이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젊은층은 힘을 잃습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공짜로 타는 노년층이 싫은데 출퇴근속 힘든 자신들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노년층이 정말 싫습니다. 우리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 것은 정말 문제야 하는 그런 소리에 분노가 치솟습니다. 사다리를 다 치워놓은 이런 사회를 만든 장본인들이 이제와서 자신들에게 잔소리나 하고 핀잔을 주는 것에 화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노년층도 싫고 자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는 세력도 싫은 겁니다. 이제 코로나 시절을 보내고 취업을 하려해도 괜찮은 직장은 한정되어 있어 이런 저런 알바자리를 찾아 다니는 상당수 젊은층들은 하루하루 지내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젊은층 특히 20대층에서 무관심이 대단하다는 보도나 하니 정말 짜증나는 것이지요. 1970년대 1980년대 군사독재시절에 젊은층이 가졌던 그 힘듬과 짜증과도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자신들에게 이기적이다 자신들밖에 모른다고 몰아세우는 세력이 정말 싫습니다. 무슨 MZ세대라며 신인종 보듯이 판단하는 그런 분위기가 피곤하고 짜증나는 것입니다. 그런 정서가 쌓여서 20대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 심화 그리고 선거 망각증세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요즘은 긴 말이나 긴 영상 그리고 긴 글들도 젊은층에서 기피대상이 된 지 오래됐습니다. 짦은 것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긴 말이나 긴 문장이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짧게 결론만 말하면 되지 주절이 주절이 떠드는 소리가 정말 싫을 수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20대의 성향인 것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이 내세우는 그런 주장과 서로의 다툼 그리고 오로지 표를 위해 이전투구하는 모습 이런 것 보기싫은 것입니다. 말로는 젊은층을 위하고 젊은층이 이 나라의 주축이라고 떠들지만 실제로 20대와 30대 가운데 국회의원이 몇명이나 됩니까. 미국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정치 노년층들이 은퇴하지 않고 정치판을 장악하는 것에서 젊은층들은 정치라는 것은 자신들이 존재해야하는 곳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바로 지금 젊은이들의 나라입니다. 그들이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 그때 그렇게 정치적 무관심속에서도 나름 저항하고 미래를 위해 선거장에 힘들게 나갔기에 그래도 한국이 군사독재시절을 벗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20대들도 마찬가집니다. 포기하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뭔가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후보들에게 표를 줘서 그들이 자신을 대신해 나라를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야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가 싫고 기성 정치인들이 미워도 포기하지 말고 선거투표장에 가서 자신있게 한 표를 행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젊은이들은 이 나라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2024년 4월 5일)과 내일 사전투표가 실시됩니다. 본투표일 4월 10일에 다른 약속이 있어 부득히 선거투표장에 나가지 못할 분들은 오늘과 내일 사전투표에 한번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너무 주절이 떠들었지만 각종 선거에 너무도 많이 참여했던 이 땅의 국민 한사람으로서 투표만은 포기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긴 글을 줄입니다.
2024년 4월 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