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큰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기도를 하고 싶었지 아무래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고 화려한 기도가 눈에 잘 띌 것 같아서
폭설이 내린 날 전깃줄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윙윙거리는데 처마끝에서 눈을 피해 웅크린 배고픈 고양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이 따라오고 있었어 나는 먹일 게 없었어. 고양이는 현금을 먹지 않잖아 미안하지만 다음에는 꼭 챙겨올 께 하고는 지나 갔어 가면서 보니 편의점이 있었는데 말야 미사 시간이 다 되어갔거든 그리고는 잊어버렸지 그리고 다음날 거기서 그 고양이 시체를 봤어
나는 내가 젤 불쌍한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 기도가 젤 먼저 하늘로 갈 줄 알았는데 잴 큰 나무 꼭대기에서 기도를 해도 내 기도가 가장 늦게 갈 것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어
이젠 알겠어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은 되는 거라고 생각해 하늘로 가는 말은 시끄럽지 않아도 아주 멀리까지 쉽게 갈 것 같으니까 꼭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해 아기 예수는 무릎보다는 손 내미는 것을 좋아하실 것 같아
선물 같은 거는 안 줄 거라고 생각했지, 내게 줄 사람도 없겠지만 선물이란 원래 받는게 아니고 주는 거라고 했으니까 주지도 안했으니 한 번도 못 받은 거 후회는 안하지만 생각해보니 무척 받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 이었어. 솔직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지 그런데 매번 받고 싶은게 바꾸는게 문제지 어릴 때는 작은 거였는데 크니까 자꾸 커지고 결국에는 되지도 않을 기도만 하고 있는거야
겨울 어느추운 날 성당에 가신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온 밀가루 한 포대를 얻어서 삼십리 길을 메고 오시다가 호식이네 집에 주고 오셨대 엄마는 좀 섭섭해 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냥 무거워서 그랬다고 씩 웃으셨어 나는 엄마보다 더 섭섭했지. 사카린 넣고 구운 빵이 사라진 것이거든
성탄 전야 미사에 성가를 라틴어로 불러야 거룩한 거는 아닐거야 길 잃은 들고양이들과 같이 유행가라도 신나게 부르면 안 될까? 우리 할머니는 성가를 춘향가 판소리처럼 불렀어, 외국인 선교사 신부가 최고라고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하고 그랬어 나는 할머니가 부끄러웠어 하느님은 장구치고 북치고 꽹과리 치며 성가하는 것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 것은 무당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크리스마스 트리는 멋진 것이고 서낭당에 금줄은 미신이고 상여에 종이 꽃을 매단 것은 무섭기만 했지 아프리카 사람들이 교황님 앞에서 발가벗고 엉덩이를 씰룩 씰룩 흔들며 춤을 추고 멕시코 성모님은 까만 얼굴이고, 중국에서는 빨간 색으로 성당을 장식하는 것을 보고 브라질 카니발 축제가 사순절로 인해 생긴 것임을 배우고서 알았지
우리의 성모님은 한복을 입어야 하고 우리의 하느님은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정월 대보름쯤 이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