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스 / 박은영
침대에 몸통을 두고 자의식 없이 걸었다
먹고살기 위해
먹은 것을 소비하며 걷던 나는
다리를 벌리고 오므리는 길 위에서
재고, 그리고, 혹은
내 발에 걸려 넘어지거나
남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며
어제와 오늘을 작도하다
지팡이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때
요실금이 찾아왔다
원이 많아 표식을 남기는 사잇길들
개가 뒷다리를 들고 영역표시를 하듯
둥글게 말해 반경, 구역을 원한 적도 있지만
한 다리 건너 서 있는
또 다른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걷다 뛰다가 돌아보면 녹슨 다리,
제도하고 싶은 것은 세상만이 아니라
나와 나 사이의 거리였다
한 바퀴 빙 돌아 만날
시작과 끝,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재고 걸었다
황새의 보폭을 보며 다리 찢는 연습을 할 때면
눈물 나게 아픈 가랑이
그때 나는
벌어지지 않는 마지막 순간을 생각했다
ㅡ 계간 《시인시대》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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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영 시인
1977년 강진 출생. 동아인재대학교(現 동아보건대학) 졸업.
2018년 〈문화일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우리의 피는 얇아서』
제1회 농어촌희망문학상, 제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제2회 천강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