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달리다 보면 자주 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 노래들 중에는 추억을 불러다 주는 노래들이 참 많습니다. 안치환의 노래 '내가 만일"도 그런 노래들 중 하나지요.
그 추억은 삼십 년 전인 1995년으로 저를 데려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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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격한 아들과의 첫 대면.
갓난 아들은 한 눈은 반쯤 뜨고 한 눈은 감은 채 간호사의 품에 안겨 힘겹게 세상을, 그 세상 속의 큰 인연, 아빠와 누나를 보고 있는 듯 보였다.
"아빠~ 저 애가 내 동생이야?"
녀석은 무지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녀석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아내는 무척 힘든 고생을 해야만 했다.
엄청 무더웠던 1994년의 여름.
아무것도 입에 대지를 못하고 거봉 포도로만 끼니를 잇더니, 출산 두어 달 반을 남겨두고부터 아내의 발목이 붓기 시작했다. 의사에게 말했지만 별로 유심히 살펴보지 않고, 임신 말기쯤에 그런 현상은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점점 그 발목 부기가 발과 종아리 쪽으로 퍼져나갔고 어느 날부터 아내의 신발은 더 이상 아내의 발에 맞지 않았다. 출산이 2월 14일이었으니 아내는 그 겨울을 슬리퍼로 났다.
<임신 중독증>, 아내의 병명이었다.
출산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말에 서둘러 큰 병원으로 옮겼고, 출산 예정일이 보름정도 남았지만, 혈압이 낮아지자마자 얼른 유도 분만을 서둘렀다.
대학병원이라 첫아이처럼 곁에서 지켜주지도 못하고 복도 밖으로 내몰렸다.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으니 진통이 시작되었을 텐데...
분만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뒤돌아 보던 아내와 그 부운 발목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늦은 시간인 데다가 오늘 밤중에는 출산하지 않을 것이라며, 집에 갔다가 아침에 나오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갔다. 대구에서 급거 상경하신 어머니의 걱정을 풀어드리고는 잠시 눈을 붙였다.
이른 새벽, 병원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렸다.
"산모가 밤새 잠 한숨 안 자고 우셨어요. 얼른 들어가서 달래 보세요. 산모가 지치고 혈압 오르면 출산 못해요."
금남의 대기실로 후다닥 달려 들어갔다. 심약한 아내는 밤새 운 흔적을 부어오른 눈두덩이에 매달고 있었다. 나를 보고는 반갑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또 훌쩍이기 시작.
간신히 달래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두 손을 모아 쥐었다.
두세 시간이 흐른 뒤, 빼꼼 문이 열리고 간호사의 두리번거리는 눈과 내 긴장된 눈이 마주치는 순간,
"... 보호자분~ 건강한 사내아이 출산입니다~"
"산모는 괜찮아요??"
"네. 정상 분만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공에다 대고 인사를 하며 울컥하는 기분을 꿀꺽 삼켰다.
"내... 죽을 뿐 했어예. 죽는 줄 알았어예... 두번째가 훨씬 더 힘들었어예..."
눈물 글썽이며 날 바라보고...
"그래 그래~ 정말 장한 일했다. 애썼다. 이제 고생 끝났다..."
서로 두 손 꼭 잡았다.
그 다음날 딸과 함께 그 녀석을 면회하고 병실로 올라갔다.
"잘 생겼어예?"
"어언지... 하나도 안 잘 생깄더라. 뻘거니 눈도 잘 못 뜨더라~"
그로부터 한 달 후...
아내가 배가 부르고 아프다고 했다.
다리와 발의 부종은 거의 다 빠졌고, 출산 후 배는 서서히 빠지는 줄 알고 있던 터라 단순한 복통인가 했었다.
밤사이 구토에 복통을 호소하고, 가까운 내과에 들렸더니 토사곽란이라며 주사 한방에 링겔 하나를 놓아주었지만 아내는 계속 아파했다.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응급실 레지던트는 문진과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장염이라며 3일분 약을 처방해 주고 퇴원하라고 했다.
이틀이 지난 한밤중, 아내는 심한 구토 후에 배를 잡고 방안을 데굴데굴 굴렀다.
다시 대구 어머니를 호출하고, 아내를 병원 응급실에 입원시키고... 다시 집으로... 갓난아이와 딸을 친구 집에 맡기고... 다시 병원으로... 정식 입원 수속 밟고... 역으로 어머니 모시러 달려가고...
검사 결과는 안 나오고 이 검사 저 검사 온갖 검사를 다하더니 두 주일 후 내려진 병명은,
<의사 결핵성 복막염>.
장염이라고 성급하게 진단을 내렸던 같은 병원 응급실 레지던트를 혼내주고 싶었다.
주치의는 결핵 치료를 하니 차도가 있는데, 이상하게 결핵균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래서 '의사'란 말이 병명 앞에 붙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병원의 보호자 침대에 누우면 발목 아래가 공중으로 떴다.
배가 홀쭉하게 줄어든 아내의 입에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소리가 달리던 입원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우리는 퇴원 길에 올랐다.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던 노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크게 틀고 집으로 향하던 길엔 어느새 개나리 만발한 노란 봄이 와있었다.
내가 회사에 잠깐 들르러 간 사이, 아내는 입원 중에 가장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했다.
아파트 복도에 나가 유치원을 갔다 오는 딸아이를 기다리는 일.
저 멀리로 딸아이가 보이고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딸아이도 멈칫! 엄마를 발견하고 오른손 왼손 번갈아가며 고사리 손을 흔들었다.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온 딸아이, 한품으로 가득 안아주는 엄마 품에 안겨 집으로 들어온 딸아이.
비록 할머니가 계시다가 가셨지만 두렵고 외로웠을 딸아이. 혼자 잠드는 게 힘들었을 딸아이. 반겨주던 엄마가 없는 집으로 귀가하던 어깨 쳐진 딸아이...
"엄마~ 이제 우리 집은 정상이야~ 정상!!"
**
그 후로도 여러 번 비정상적인 일들이 우리를 맴돌고 떠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늘 정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 이제 우리 집은 정상이야~ 정상!!" 외쳤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와 또 다른 여러 시련들로 힘든 날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아내가 더 아프지 않고, 딸이 회사 다니며 원하는 공부 잘하고 있고, 아들은 교생 실습 잘 다니고 있고, 전 넓은 땅 동서로 신나게 달리고 있으니...
<내가 만일>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번 외쳐야겠습니다.
"우리 집은 정상이야~ 정상!!"
첫댓글 노랫말은 모르겠지만
지난일은 지난일이요
모든 게 정상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지난일들이 밑받침이 되어 오늘이 있는거겠죠.
잘읽고 갑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일들이었습니다.
94년도
그 당시는
그 해가 제일
더웠지요.
아들 보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가족 분들 모두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그해 여름 '라이언 킹' 만화영화를 봤는데, 극장 안 에어콘 냉방이 너무 좋아 그냥 하루종일 그곳에 있고 싶다고 아내가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해 여름이 너무 더웠습니다.
네~, 정상임을 제가 고마워 하고,
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큰 환희의 순간이면서도
몹시 아팠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겪기도 한 때가
출산의 경험이지요.
살아 가노라면,
사랑으로 영걸어 가는 인생이
험난한 길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지지 않고 왔지요.
<내가 만일>의 꿈과 함께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가 만일도 좋아하는 노래지만,
<사노라면 언젠가는>하는 노래도 마음으로
흥얼거린답니다.
여태 한번도, 아내의 출산이야기는
저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 그 노래 <사노라면 언젠가는>.
저도 좋아하고 잘 부릅니다. ㅎ
아내분이 아들을 낳으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아침에 딸이 전화와서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하나뿐인 딸의
생일입니다
93년 9월 7일 제천서울병원에서
딸과 첫대면할때 가늘게 뜬눈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아이들과의 첫 대면, 저도 기억합니다. ㅎ
딸 아이 첫 울음소리를 분만실 밖에서 들었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더군요. ㅎ
"엄마~이제 우리집은 정상이야~정상!!"
참 귀여운 따님이네요.
어린 아이 눈에도 집안이 힘들다는
것을 많이 느꼈던가 봅니다.
출산이라는 게 참 쉽지 않지요.
출산 끝에 또 아프신 사모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시련과 함께 가는 인생.
따님도 아드님도 참 잘 성장했네요.
시월초에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는
큰딸이 오늘 산부인과 검진을
다녀왔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네요.
애 안낳겠다던 마음을 바꾸어서
마흔 두살에 애를 낳네요.
제 마음도 설렘, 기다림입니다.
마음자리 님, 추억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일을 겪고난 그 다음해에 다시 발목이 붓고 단백 수치가 높아 병원에 갔다가 '루프스' 진단을 받았습니다. 글로 말씀드렸던 저 병도 루프스에 의해 일어났던 병임을 그때야 알았지요.
여자 분들 출산을 앞두고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올 수 있는 병인데, 미국에는 그런 환자가 많아서 치료나 관리가 나은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쪽으로 오고나서 아내가 별로 크게 아픈 적이 없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진짜 아내들의
출산만큼 위대한건 없을듯요.
저도 둘째를 94년도에 낳았는데
예정일 맞춰서 제왕절개 했답니다.
큰 애는 자연분만 했지만
둘째 낳으려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두 가지를 해보니까
둘다 못하겠어서 끝~ㅋㅋ
하원,하교하고 돌아오는
아이들 맞이하는 행복은 가슴이 벅차지요.
마음님 덕분에 그때를 떠올려봅니다.
미국에선 거의 모든 산모가 무통분만을 신청해서 출산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별로 겁도 안 내고. ㅎ
하원, 하교하는 아이들 맞이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더라고 입원해있던 아내가 말하곤 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행복임을 알게 합니다.
저도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느낀답니다.
마음자리님의 정상이 계속 유지되길 바랍니다.
힘 닿는 데까지는 그렇게 정상으로 유지되도록 용을 써볼 작정입니다. ㅎ
아내 이야기에 제 눈이 번쩍 뜨입니다.
의술이 미약했던 옛날에는 영아 사망률도 높았지만 애를 낳다가 죽은 산모도 많았다는데 아내 분이 아주 힘들게 출산을 하셨습니다.
이리 엄마를 힘들게 하면서 세상에 나왔으니 아드님은 환영식을 제대로 받으며 나온 걸로 여겨도 될 듯합니다. 이렇듯 통과 의례가 힘들수록 남은 과정은 훨씬 수월하다지요.
안치환의 이 노래는 제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곡이랍니다.ㅎ
여자분들이 출산시에 호르몬 변화가 심한데, 그 균형이 흔들리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오면서 일어날 수 있는 병들이 임신중독이나 루프스 등등 다양하더군요.
유현덕님 노래 들어보고 싶습니다. ㅎ 제가 한국에 나가면요. ㅎ
우리집도 지금 현재는 정상인데?
아내가 며칠후에 백내장 눈수술 때문에 1박 2일 동안 병원에 입원 한답니다
매년 아내는 병원에 입원 합디다
그래서 신경이 쓰입니당
우리집 이야기도 해 봤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요즘은 많은 분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으시더군요. 저도 운전에는 눈이 생명이라 매년 눈검사하는데 백내장이 오면 곧바로 수술할 생각입니다.
아내분 수술 잘 받으실 겁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휴우~
조마조마하게 읽다가 조용히 안도의 숨을 쉬며
저의 지나온 삶은 참으로 평탄하게 지내온 것 같아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말씀하신대로 앞날은 늘 희망찬
'정상'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ㅎ
앞으로 건강 잘 유지해서 오래 정상에 머물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ㅎ 우리집은 정상,
맞는 말씀이네요,
아무 이상없는 지극히 정상인 우리집,
아무쪼록 이국땅에서 아무런 이상없이 오래오래토록 평안하세요 ~
먼길 다녀와 집에서 휴식 중입니다.
충전 잘해서 화요일부터 또 한바퀴
잘 돌아보겠습니다.
마음자리님 댁이 정상으로 쮹 진행형이시지요 ?
앞으로도 그러실것 입니다 .
저는 안치환님의 노래 좋아 합니다 .
<내가 만일 > 제목이 맞는지 ..그 노래 좋아 합니다 .
관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마음자리님!!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정성어린 마음 배워갑니다
의미와 보람 늘 함께 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