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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여왕 스물셋,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한 그이를 믿고 덜컥 결혼했다. 연분홍 꽃잎 같은 신혼 생활은 참으로 짧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루하루 육아의 고단함을 느꼈다. 기쁘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혼자였던 나는 어느 새 네 식구를 이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의 웃음 덕에 살아갈 수 있었 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제법 컸을 즈음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성실하게 일하고 아끼며 살아온 덕에 집을 샀고, 공장과 가게도 얻었다. 온 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 이제 밝은 미래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쓰 러졌다. 시어머니는 후유증으로 치매를 얻어 아이가 돼 버렸다. 우리는 처 음 산 그 집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시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시어머니를 돌보며 아이들을 키웠고, 생계를 위해 몸이 100개라도 모자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와중에 알코올 중독이었던 시아버지는 저녁 무렵이 면 동네 어귀서부터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미운 정이 고운 정으 로 변한 걸까. 세월이 흘러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마음이 고달팠다. 그사이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됐고, 시어머니의 상태도 나아졌 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 낸 우리 가족. 이제는 정말 행복하리라 생각할 때, 거센 파도가 다시 우리를 덮쳤다. 남편이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몇 년 동안은 약으로 버틸 수 있 었지만,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간 뒤로는 투석을 시작했다. 그때조차 일 을 쉴 수 없었던 남편은 해가 뜨기도 전에 병원에 들러야 했다. 그런 날엔 나 역시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너무 애를 태운 것이 문제였을까. 곪은 마음이 독이 된 것일까. 내게도 병 이 찾아왔다. 자궁암 4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암은 이미 방광과 직장까지 퍼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악을 쓰고 세상을 원망했다. 이리 거둬 갈 목숨이었던 가. 고생만 하다 보내 버린 지난 세월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딱 하루만 그렇게 울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다시 일어 나야 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미래를 꿈 꾸던, 배짱 두둑했던 젊은 날을 떠올렸다. 마흔 번의 방사선 치료와 여섯 번의 항암 치료 과정에서 남편은 큰 힘이 돼 줬다. 새벽에 투석을 하고 매일 오전 내가 있는 곳에 다녀갔다. 딸은 나보다 내 병을 잘 알았고, 막내아들은 생활비로 쓰라며 모아 둔 돈을 내놓았다. 똘똘 뭉친 가족의 힘 덕분인지 나는 4기 암 선고를 받고도 살아남아 어느 정도 몸을 추슬렀다. 앞으로 3년은 더 있어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이 기적이 계속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아등바등했던 시기를 돌이켜 보다 깨달았다. 내가 엄청난 긍정의 여왕이 라는 것을. 앞으로도 고난이 찾아오겠지만 양손에 긍정을 꼭 쥐고 사는 내 내 잃지 않을 것이다. 이정옥 | 부산시 연제구 아기 호랑이 결혼 후 6개월 만에 아기가 찾아왔다. 기쁜 마음에 시어머니에게 소식을 전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잘했다!" "축하한다!"가 아닌 "자~알 한다."라는 언짢 은 한마디였다. 나는 그 의미를 곱씹었다. '큰아들이 아직 장가들지 않았는데, 둘째 아들네 가 먼저 아기를 낳게 돼서?' '내가 임신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까 봐?' 오만가 지 생각이 들며 서운함이 몰려왔고 그 말은 내게 큰 상처로 남았다. 여느 때처럼 일을 하던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하혈 끝에 결국 유산을 했다. 아기가 나를 떠난 게 시어머니 탓인 것만 같았다.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밉고 원망스러웠다. 아기는 또 찾아올 테니 그만 잊어버리자고 다짐했지만 1년, 2년이 지나도 임 신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엄마가 되지 못할까, 남편 닮은 아기를 못 만 날까 시간이 갈수록 겁이 났다. '이번엔 임신인가?' 기대하다가도 생리가 시 작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의학의 힘을 빌려 보자며 병원에 가자고 권유했다. 나 는 무슨 병원이냐며 완강히 거부했지만 몇 달 후에는 남편의 손을 잡고 난임 전문 병원을 찾았다. 인공 수정을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아기는 없어도 괜찮다 는 남편의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얼른 아빠가 되고 싶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몇 년을 우울 속에서 지내던 어느 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우리 병원 그만 다니자. 이제 긍정적으로 생각할래! 언젠가 우리에 게도 아기가 찾아오겠지. 마음이 편해야 한다잖아. 하루하루 당신이랑 재밌 게 살고 싶어" "그래! 당신만 괜찮다면 나는 다 좋아." 오랜만에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남편을 기다리는 시 간이 꽤 행복했다. 몇 년 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그날 새벽, 나는 호랑이 꿈을 꿨다. '보통 꿈하고 다른데 설마 태몽일까? 설마 는 사실이었다. 3주 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했다.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번엔 기쁨과 행 복이 섞인 눈물이었다. 4년 만에 다시 임신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다. 고생 많았다." 나를 따듯하게 안아 주는 품에서 마음 깊은 곳의 원망 도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박영이 | 대구시 북구 |
Laura Wilde - Telepathie (Offizielles Musik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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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긍정의 여왕 / 아기 호랑이
좋은 글 고맙습니다.
따듯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핑크하트 님 !
오늘도 기쁨
미소 가득한
하루보내세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동트는아침 님 !
1월이 시작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이 되었네요~
첫날을 기억하며 설렘
가득한 하루하루 보내세요
항상 건강하세요 ~^^
현실감 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사는 게 몸과 마음에도 좋습니다.
그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요?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답니다.
생각을 너무 조급하게 다루지 말고,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사는 게 만사형통 입니다.
고맙습니다...망실봉님!
좋은 시간 보내셔요...^^*
향기나는 댓글 주신
바다고동 님 !
대단히 감사합니다 ~
오늘 하루도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시고
좋은 꿈 꾸세요 ~
내일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