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우수수 떨어지던 11월 16일
봉녕사에 다녀왔습니다.
봉녕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마치 도심 한 복판에 핀 연꽃 한 송이를 보는 듯 했습니다.
봉녕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광교산(廣敎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입니다.
1208년(희종 4)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고 창성사(彰聖寺)라 하였는데
1400년대 초기에 봉덕사(奉德寺)라 개칭하였으며,
1469년(예종 1)에 혜각국사(慧覺國師)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참고했습니다.
그러나 1971년에 묘엄(妙嚴)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승가학원(僧伽學院)을 열기전까지는
흙먼지가 휘날리고 쥐가 들끓어 폐허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도량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11월 16일에는 윤달을 맞아
생전예수재를 크게 한다고 해서 갔습니다.
생전 예수재(豫修栽)란 살아서 자기의 업식을 미리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위해 재를 지낸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산단의 범패를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범패를 관람한 적은 있어도
절에서 직접 의식으로 진행한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공연관람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동안 혹은 앞으로
내가 알게 모르게 짓는 죄를 참회하는 자리인만큼
숙연해지고 투명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생전예수재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항상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큰 화두로 자리한 듯 합니다.
봉녕사는 생전예수재보다
세계사찰음식대향연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죠.
저도 지난 10월에 축제에 참여해서 여러 음식을 맛보느라
그렇지 않아도 동글동글한 사람이 오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올 해로 벌써 6회째를 맞이한 사찰음식축제는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고 하는데
세계 여러 불교국가들이 참여하여
각국의 사찰음식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고기는 물론 오신채를 넣지 않는 사찰음식은
모든 생명에 감사하고 평화를 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찰음식축제는 단순히 음식만 파는 축제를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좋은 전통과 장점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차 마시는 시연을 하는 장면입니다.
봉녕사는 사철이 아름다운 절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곳은 비구니스님도량이구나, 하는 것을 직감할 정도로
정갈하고 깨끗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능소화가 도량 곳곳에 피어있어
그야말로 극락정토가 따로 없더군요.
대적광전 앞에 피어 있는 능소화입니다.
대적광전 왼쪽에는 약사전입니다.
봉녕사 대적광전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하여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삼존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법당 내외부 벽에는 일본에서 가져온 옻칠과 인도에서 가져온 석분을 안료로
80화엄 변상도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상단의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는 목각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화엄경이 모든 경전의 으뜸이듯
봉녕사승가대학 또한 수행과 면학에서 으뜸이 되기를 바란
묘엄스님의 의지를 보는 듯 합니다.
대적광전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약사보전이 들어서 있습니다.
약사전 내부에는 석조약사여래부처님을 비롯하여
신중탱화와 현왕탱화 등이 모셔져 있습니다.
봉녕사의 가장 많은 예술품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대적광전을 바라보고 우측에는 용화각이 있습니다.
용화각 내부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을 거느린
석조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워낙 마모가 심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본존불을 비롯해 양쪽 협시보살이 모두
편평한 옷주름과 굴곡없는 신체표현 등이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이지만
정확한 년대측정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런 부처님을 만나면
마음이 푸근하고 안심이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에 의해 깎이고 주름 잡히고 형체를 잃어버리면서까지
그 자리에 서서 우리에게 전해주고싶은 말
혹은 가르침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 부처님입니다.
경기도 안성 지역에 있는 석불상들부터
전남 화순 운주사 석불군까지
이 땅에는 이런 부처님들이 아주 많습니다.
산사에서 자본 적이 있으신가요?
새벽에 혼곤한 잠 속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는
그야말로 진탕같은 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건져올리는 듯 합니다.
물론 저는 절에서 잘 때마다
범종소리를 듣고서도 일어나지 못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꿈결에 범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씻겨지는 듯 했습니다.
새벽예불은 법고, 범종, 목어, 운판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길짐승과 중생들을 위한 법고와
지옥에서 고통받는 지옥중생을 제도하는 범종과
날아다니는 새와 같은 중생들을 위한 운판과
모든 물속에 사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목어는
중생구제를 위한 불교의 대표적인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악기가 있다 한들
사람만 하겠습니까.
절은
도량을 닦고 쓸고 손질하는 주인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미얀마, 앙코르와트, 태국 등
어느 곳을 가더라도 크고 우람한 절과 탑은 많지만
우리나라 절처럼
정갈하고 청정한 기운을 가진 절은 없는 듯 합니다.
우리가 절에 가서 스님을 보면
반가운 이유입니다.
쌀 한톨의 무게가 우주의 무게라는 말이 있듯
시주를 받아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에는
쌀 한 톨의 무게를 잊지 않으려는 경건함이 배여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경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요.
더 맛있고 자극적이고 특별한 음식을 찾는 음식투어가 일상이 된 우리에게
쌀 한 톨의 무게를 우주의 무게로 여기며 사는 스님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입니다.
가끔씩이라도 절에 가서 저를 되돌아봐야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경험을 고백하자면
지난 번에 봉녕사 갔을 때 점심 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에게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준 밥이란 거 아시죠?
공양간에 갔더니 남이 준비해놓은 밥과 반찬이 쫘악~ 놓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봉녕사 반찬은 정말 먹음직스러워보였습니다.
부페식으로 차려놓은 반찬을 보자 흥분해서
접시에 마구마구 퍼 담았습니다.
묵직해진 접시를 들고 자리에 와서 앉았는데
저의 접시에 담긴 음식이 옆에 계신 스님음식의 세 배가 넘었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한톨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봉녕사는 비구니스님들을 교육하는 승가대학이 있는 절입니다.
1974년에 봉녕사 승가대학을 개원한 이후
1999년 6월에는 국내 최초로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금강율학승가대학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율원(律院)은 불교 생활 규범인 계율을 적은 율전(律典)을 강설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스님들이 있는 곳입니다.
즉 율사(律師)를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을 뜻합니다.
비구스님을 위한 율원은 통도사.해인사.송광사.파계사 송광사 등이 있지만
비구니스님을 위한 율원으로는 봉녕사의 금강율원이 가장 활발합니다.
봉녕사는 비구니계율의 근본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11월 12일부터 2박3일동안 금강율원에서
승가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확립하기 위해 마련한 계율 연수 교육장면입니다.
깨달음만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현재의 수행풍토에서
계율을 지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수행을 실천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불교인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봉녕사의 정갈한 도량을 둘러보다 가장 감동받은 곳은
소요삼장((逍遙三藏)이라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소요삼장은 1989년 묘엄 큰스님께서 신축한 도서관으로
경, 율, 론 삼장에 자유로이 노닐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묘엄큰스님의 배포가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이 정도 그릇은 되어야지
뭇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있는 듯합니다.
업력으로 태어난 사람과
원력으로 태어난 사람의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쥐가 들끓던 폐사지를
오늘의 봉녕사로 일으키신 세주묘엄큰스님입니다.
성철스님께 수계를 받고
자운스님께 율장을 공부하고
경봉스님과 운허 스님으로부터 강의를 해도 좋다는 전강(傳講)을 받은
해방 후 최초의 비구니 강사 묘엄스님.
동학사와 운문사에서 강의를 하다
참선수행을 위해 봉녕사에 강원을 개설한 묘엄스님은
비구니스님들을 진정한 수행자로 길러낸 여장부였습니다.
큰스님은 평소에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수행이 깊으면 두려울 게 없다’
큰스님은 2011년 12월 입적하셨습니다.
생전에 학인들을 가르치시던 모습입니다.
봉녕사 경내에 있는 세주묘엄박물관에 가면
위대한 대장부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 자료제공:봉녕사)
생전예수재를 구경하다 나오는데 스님이
과일을 한아름 싸주십니다.
집에 와서 석류를 쪼개보니
탱글탱글한 붉은 열매가 가득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http://blog.daum.net/sixgardn/15770775)에서 가져왔습니다.
첫댓글 세상의 청춘들은 독서실에서, 연구실에서, 삶의 현장에서 노동과
고뇌에 쪄들어 가고 있는데, 봉녕사 청춘들은 무신 복이 저리 많아
나를 찿겠다고 멀 깨달아 보시겠다고 새파란 청춘들을 불태우시나~!
부디, 나만을 찿아 헤메시지 말고, 깨닫거든 세상에 보탬이 되시는
소금이 되소서~!!
공부 하느라 고생 하는 두자식을 둔 어미로서 심경이 착찹 합니다.
_((()))_
세상에 나를 찿겠다고, 깨닫겠다는 사람만이 넘친다면,
이세상은 극락이 올까?
인도에 가보니, 답이 있더라~!!
나모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봉녕사 참 좋지요.
봉녕사를 꼭 한번 참배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