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로키스처럼 선수 층이 어리고 경험이 적은 팀은 상승세를 타면 무섭지만, 무너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추락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최근 7연패의 중병에 걸린 로키스에게는 김병현(27)의 보약 같은 역투도 약효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18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보여준 김병현의 투구 내용은 이번 달 앞서 등판한 두 경기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김병현은 최근 시애틀 마리너스전(7월2일)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7월8일)에서 두 번 다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습니다. 두 경기 평균 자책점이 9.00에 달했고, 1패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김병현은 지난달 26일 텍사스 레인저스를 7이닝 무실점으로 막을 때의 발군의 투수의 모습을 과시했습니다. 공은 대부분 낮게 깔려 들어갔고, 타자의 몸쪽과 바깥쪽을 오가는 코스의 배합도 아주 좋았습니다. 1회말에 기록한 146km의 패스트볼은 7회말 대타 제로미 버니츠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을 때도 똑같이 146km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생애 최다와 타이인 9개의 삼진을 빼앗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슬라이더는 우타자의 가운데서 마지막에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면 파이어리츠 타자들의 배트가 번번이 허공을 가르게 만들었습니다.
1회말 선두 맥로스에게 중견수 키를 넘어가는 2루타를 맞은 김병현은 1사 3루에서 폭투를 범하며 첫 득점을 내줬습니다. 포수 클로서의 글러브에 맞고 뒤로 빠졌지만 워낙 공이 높아 패스트볼이 아니라 폭투로 기록됐습니다. 그러나 그 후 3번 산체스와 4번 베이에게는 모두 방망이가 두 동강이로 부러지면서 나온 안타를 맞았고, 4회말 5번 케이시에게 맞은 안타도 빗맞았지만 코스가 좋았습니다. 그 정도로 김병현의 이날 공은 힘이 있었고, 또 적절히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로키스의 타선은 요즘 참 무기력합니다. 지난 세게임 동안 득점권 타율이 정확히 1할(30타수 3안타)이던 로키스는 이날도 전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2회 초 4번 할러데이와 5번 앳킨스의 연속 안타로 잡은 무사 2,3루의 호기에서 1점도 뽑지 못한 것은 팀이 왜 연패의 늪에 빠져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날 파이어리츠 선발 킵 웰스는 오프 시즌 팔 수술에서 복귀한 후 4연패를 당하며 9이닝 평균 자책점이 12.82에 달했습니다. 특히 좌타자에 약점을 보여 피안타율이 3할7푼8리였습니다. 그러나 웰스가 위기에서 집중력을 과시한 반면에 좌타자인 6번 허프와 7번 피에드라는 안타는커녕 희생플라이도 치지 못하고 연속 삼진을 당하며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운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3회 바메스의 홈런으로 1-1로 따라붙은 로키스는 4회 초 허프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허들 감독은 피에드라의 1-3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런 엔드 히트’ 작전을 걸었습니다. 최근 워낙 부진이 계속되자 공격적인 야구를 펼친 것인데, 피에드라의 제대로 맞은 공은 2루 커버를 들어오던 유격수 윌슨에게 잡히며 병살이 됐습니다. 평소 수비 위치였으면 당연히 중전 안타였습니다.
계속해서 1-1이 이어지던 8회에도 로키스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으나 앳킨스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 때 1루에서 홈으로 파고들던 토드 헬턴이 파이어리츠의 호수비와 본인의 느린 걸음의 조화로 홈에서 태그아웃 당하며 앞서갈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날도 로키스 타선은 득점권에서 6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습니다.
7회말 펀치력이 있는 대타 버니츠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닝을 끝냈을 당시 김병현의 투구수는 119개. 4회에 이미 79개의 공을 던졌을 정도로 투구수가 많았음에도 7회까지 훌륭히 이끌어 선발 투수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습니다. 그런데 허들 감독은 8회 초 다시 김병현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본인의 생애 최다 이닝째. 그런데 김병현의 8회 등판은 최근 로키스의 속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로키스 구원 투수진은 슬럼프에 빠진 타선과 함께 최근 로키스 추락의 주범입니다.
최근 로키스 불펜은 2승8패를 기록했고, 후반기 시작인 신시내티와 4연전 전패 중에 3패를 불펜이 당했습니다. 전반기에 3.95이던 불펜 평균 자책점이 7월 들어서는 9.29로 치솟았습니다. 이날 김병현에 이어 나온 구원 투수들 볼까요? 이날 경기 전까지 라몬 라미레스의 7월 평균 자책점은 13.50, 레이 킹은 9.00, 그리고 스캇 도맨 역시 13.50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니 허들 감독은 불펜에 맡기느니 여전히 구위가 살아있는 김병현에게 8회를 지키도록 한 것이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김병현은 선두 맥로스를 멋진 삼진을 잡았으나 윌슨과 산체스에게 연속 2루타를 맞고 2점째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날 수비에서 수차례 뛰어난 모습을 보인 올스타 산체스는 경기 내내 김병현의 바깥쪽 공이 위력적이었다는 점을 간파하고 외곽으로 빠지는 패스트볼을 잘 밀어 쳐서 결승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김병현은 127개의 공(85K)을 던지고 내려왔고, 시즌 5승6패에 평균자책점은 4.78로 약간 좋아졌습니다. 라미레스와 킹은 김병현에 이어 나와서 볼넷 두개와 몸에 맞는 공으로 아웃 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남기고 간 주자만 득점시켜 김병현의 이날 자책점을 3점으로 늘리고 강판됐습니다.
이날 패전으로 8연패를 당한 로키스는 NL 공동 선두에서 최하위로 곤두박질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선두권과 5게임차 정도라 추격의 기회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신인급인 선수들을 위주로 한 팀 운영으로는 경험이 태부족합니다. 로키스 선수 중에 페넌트 레이스를 거쳐 포스트 시즌 경험이 있는 것은 김병현과 포수 요르비트 토레알바 뿐입니다. 1995년에 단 한번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으니, 자체적으로 키운 선수 중에는 노장급인 헬턴(33ㆍ97년 데뷔)조차 포스트 시즌 경험이 없습니다.
댄 다우드 단장은 아직 트레이드 계획 등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1주일 정도는 더 팀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옵션을 저울질하게 됩니다. 마이너리그에서 회복중인 마쓰이 카즈를 불러올 수도 있고, 유망주 1루수 라이언 실리와 외야수 제프 베이커를 트레이드할 수도 있습니다. 큰 문제인 불펜의 도움을 유망주 트레이드를 통해서라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또 내년을 기약할 것인지가 조만간 결판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아쉬운 것은 선발진만은 탄탄한 모습을 보여 트리플A에서 호투중인 김선우에게는 아직 서광이 비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 중간 계투요원으로 승격할 가능성은 조금 엿보이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3.74 정도만 해도 괜찮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