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로순례기)여수 오동도와 순천 왜성

[임용철]

1. 여심화(女心花)가 피는 오동도
여수 밤바다를 즐긴 순례자 7명 중 4명은 밤차로 귀경했다. 영등포에 3시50분에 도착하니 전철이 아직 없어 난감했다. 한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다. 양평 가는 기차도 없어 전철 다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수에 남은 순례자 3명은 저녁 식사했던 식당의 맞은편 모텔에서 1박을 하고 아침식사도 그 식당에서 해결했다. 그들은 낙안읍성 대신 오동도 관광을 의결(?)했다. 금오랑은 순천왜성만 보면 목표 달성이므로 그 밖에는 어딜 가도 찬성이다.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오동도까지는 1시간에 걸어갈 수 있다. 가는 길은 걷기에 좋다. 여수 앞바다를 오른편에 두고 잘 정비한 보도를 따라 하멜 등대, 거북선 대교북단을 지나 터널을 통과하면 오동도 들어가는 다리이다. 이 다리의 원형은 1935년 설치한 방파제다. 터널의 인도는 걷기 좋고 안전하다. 터널 위로 가는 길도 있다면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기에 더 좋을 것이다.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데 터널 밖 보도 공사면 좋겠다.
오동도 다리에서 멀리 여수엑스포의 빅오(Bog O)가 보인다. 밤에 쇼를 하면 이 다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실감이 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작년 여수엑스포에 가서 보니 레이저광 동영상 쇼를 했는데, 이 먼 거리에서 그런 것이 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여수항 하멜등대

여수에서 오동도 입구 가는 터널

오동도 연결 다리
오동도는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책로가 잘 돼있어 걷기 좋다. 이 섬은 원래 오동나무 섬이었는데 지금은 오동나무가 없다. 고려 때 봉황이 오동열매를 먹으러 이 섬에 많이 깃들었다. 봉황은 왕의 상징이다. 왕은 여기서 왕이 날까 두려워 신돈에게 모두 베어버리도록 명했다. 신돈은 오동나무가 불타고 섬이 붉은 꽃으로 덮이는 꿈을 꾸고 나무를 베었다. 그 후 이 섬에 귀양 온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돌산에 고기 잡으러 간 사이에 아내가 도둑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해 도망을 가다 절벽에 몸을 던졌다. 남편은 큰 물거품이 이는 곳에서 아내의 시신을 찾아 섬의 정상에 묻었다. 그 자리에 동백이 자라기 시작하여 온 섬에 퍼졌다. 섬은 신돈의 꿈처럼 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었다. 여수에서는 여인의 지조를 나타내는 꽃이라 하여 동백꽃을 여심화라 부른다.
동백섬 정상에 있는 등대지기 살림집은 유럽풍 디자인으로 깨끗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관람객은 무임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섬의 남쪽 바닷가는 절벽이지만 내려갈 수 있도록 나무계단을 설치했다. 세 사람은 호기심이 발동해 내려가 보았다. 남태평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에 의해 수 만년 동안 침식되었을 절벽은 기묘했다. 그 중에서 문 회장은 남근 모양을 발견해 사진에 담았다.

등대지기의 집

정상의 등대 근처 숲속에 쉼터가 있어 음료수를 살 수 있다. 금오랑은 낙산이 준 홍초를 냉수에 타서 문 회장에게 주었다.
“가게에 좀 미안하지? 그냥 의자만 사용하고 있어서...”
문 회장의 감성은 이렇게 예민하다. 인송이 보이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그는 벌써 음악분수로 내려왔다고 응답했다.
그들은 오동도 나올 때 늙은이 티를 냈다. 경노우대 400원의 전기차를 타고 다리를 건넜다. 금오랑이 다리 입구의 안내소에 가서 버스시간을 물었다.
“율촌 가는 버스가 언제 있나요? 12시를 전후해서요.”
“11시 50분, 12시, 12시55분에 있습니다. 31, 32, 34번 버스인데 여기서는 없고 시내에 택시타고 들어 가셔요. 중앙동 외환은행 건너편 동양관광 앞에서 타면 됩니다.”
근무자가 시내버스 노선안내책자에 표시를 해서 주었다. 그 책자는 2012여수엑스포 관광객을 위해 특별 제작한 33쪽짜리였다.
세 사람은 이제부터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다. 그들이 외환은행 앞에서 율촌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다음 버스 안내전광판에 31, 32, 34번 버스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거 이상하다. 여기 율촌 가는 버스 서는 정거장 맞나?”
금오랑이 광장의 관광안내소에 가서 시내버스 노선안내책자를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이 버스, 올 시간이 되었는데 왜 전광판에 안 나옵니까?”
“그 시간은 미평 출발시간이므로 여기까지 오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금오랑은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는 12시가 가까우므로 점심 요기를 위해 빵과 우유를 샀다.
버스 기다리며 간식을 먹기 위함이다. 미평에서 11시50분 출발한 34번 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는 여수의 동남쪽 중심부에서 순천과 접하는 북단까지 간다. 버스 안에서나마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순례자는 13시가 지나서 율촌에 도착했다. 금오랑은 면사무소를 찾았다. 왜성 가는 길을 안내받기 위함이다. 율촌면 사무소에 낯선 사람 셋이 배낭에 이상한 깃발을 부착하고 나타났다. 중년 직원이 그들을 맞았다. 젊은 여직원이 시원한 음료수를 이방인에게 제공했다.
“주민생활지원팀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희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금오랑이 깃발을 보여 주었다.
“백의종군로 순례요?”
“네 충무공이 한성의 옥에서 나와 순천까지, 그리고 경상도 합천, 초계까지 간 길을 순례합니다. 그제 구례에서 순천까지 걸었습니다. 순천 온 김에 어제는 정원박람회를 관광했고 오늘은 왜성을 보려고 합니다.”
“왜성은 율촌면 소관은 아니지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간 기다려 주셔요.”
지원팀장은 인터넷을 검색해 지도에 왜성 위치를 찍어 프린트해 가져왔다.
“지금 우리는 여기 면사무소입니다. 이 길로 가시면...”
팀장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차로 모셔드리면 좋겠는데 제가 지금 바빠서...”
“아니, 괜찮습니다. 저희가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걸으면 1시간 이상 걸릴 텐데... 식사 안하셨으면 점심식사 하고 오십시오. 제가 모셔드리겠습니다.”
이로써 순례자는 여수에서 두 분의 귀인을 만난 것이다.

율촌의 귀인(우측)

왜성의 위치(대부분 경남)

정왜기공도(일부)

(지도) 순천시청-박람회장, 순천왜성-충무사-검단산성

해자를 설치했던 곳
2. 왜성
“간식 먹었지만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자.”
순례자들은 면에서 추천받은 식당에 갔다. 인송이 점심 생각이 없다고 했다.
“주인장, 2인분만 시켜도 됩니까?”
“네, 됩니다.”
‘셋이 와서 2인분 시키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데...’ 인송이 미안한지 속말로 했다.
“막걸리도 한 병 주세요.”
금오랑이 좋은 생각이라는 듯 술을 추가했다.
지원팀장이 면사무소 앞에서 순례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용차로 7분정도 거리에 왜성이 있다. 지원팀장이 운전을 하면서 지역의 특성을 설명했다.
“여기 공단 들어오기 전에는 참 부촌이었습니다. 갯벌에서 꼬막이 많이 생산되었어요. 전국 공급의 70%가 여기 산이었다고 해요. 돈이 많으니 주먹도 들끓었고요. 공단 생긴 이후로 여기 주먹이 벌교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여수 가면 돈 자랑 말고, 벌교 가서 힘 자랑 말라는 말이 있어요.”
“여기 안내판을 보세요.”
왜성 주차장에 도착해 지원팀장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왜성 안내판에 명나라 종군화공이 그린 정왜기공도가 있었다.
“지원팀장님, 고맙습니다. 여기서 기념사진 하나 찍으십시다.”
사진 찍는 것으로 어찌 고마움을 다 표할 수 있으련마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원팀장은 이 성을 복원하기 이전에 몇 번 다녀갔다고 했다.
일본이 쌓은 왜성은 30여개로서 순천왜성을 제외하고 모두 경남과 남해안에 분포한다. 왜성은 조선수군의 상륙저지와 일본군의 상륙 교두보 확보를 위해 선박출입 가능지역에 주로 구축했다. 조선을 침공한 일본군은 일본에서 80년 전쟁을 하며 견고한 성을 쌓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조선의 왜성들은 이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청수대 기단. 넓은 터에 고니시 병력 13,000명 주둔

3. 노량해전의 시작과 결말
1597년9월초 직산전투에서 흑전장정이 조명연합군에 대패했다. 그 후 일본군은 전라도, 경상도, 남해안으로 후퇴했다. 소서행장은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퇴군해 광양만 해안에 결진했다. 그들은 9월부터 11월말까지 성을 쌓고 막사를 건축했다. 그곳은 함선이 접안할 수 있어 보급과 철수가 편하고 육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좋은 언덕이다. 현재의 해룡면 신성리로서 지금은 앞 바다를 메워 여수 율촌산업단지를 만들었다.
1598년 8월18일, 풍신수길이 죽었다. 측근은 그의 죽음을 비밀로 했으나 일본의 장군들은 어찌어찌해서 알아내 철수하기 시작했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야 했기에 서둘렀다. 소서행장은 11월10일, 순천성 철수를 명했다. 그런데 조명연합수군 500척이 송도 앞바다를 봉쇄하고 있어서 행장은 왜성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경상도에 주둔한 도진의홍(島津義弘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청했다. 11월18일 사천만에 있던 도진의홍, 종의지, 립화안무 등은 500여척을 거느리고 소서행장을 구하기 위해 창선도를 출항해 노량해협을 통과했다. 이순신 함대는 봉쇄를 풀고 배후로 공격해 오는 구원군을 맞아 싸웠다. 일본군은 왜성의 고니시와 합세하려고 서진을 하다가 조선수군을 피해 뱃머리를 남으로 돌려 외해로 나갔는데 그곳은 외해가 아니라 관음포였다. 그들은 육지가 앞에 나타나니 돌아서서 죽기 살기로 이순신 함대에 덤벼들었다. 24시, 이순신은 손을 씻고 갑판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유한이 없겠습니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하고 하늘에 빌었다. 이순신은 적선 500여척과 밤새워 싸우고 아침이 될 때까지 1대5의 비율로 계속 싸웠다. 어둠 속에 피아가 뒤섞였다. 이순신의 주위는 모두 적선이고 적선의 주위에는 고립된 조선 수군이 있었다. 혼전은 이순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전투다.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도 없다. 모든 곳에서 날아오고 모든 곳으로 날아갔다. 이순신은 원수를 보았고 원수도 이순신을 보았다. 송희립이 이순신을 방패로 가로 막은 것은 이순신이 더 이상 활을 들어 쏠 수 없게 된 다음이었다. 원수들의 시체가 피로 물든 바다를 덮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이순신이 칼에 새긴 소망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노량해전이다. 19일 오전, 요시히로는 90%의 함선을 잃고 겨우 50여척이 외해로 도주했다. 이순신이 순절한 이후였다. 행장은 순천성을 출항해 20일에 남해성에 집결한 도진의홍 의 지상군을 태우고 거제도로 갔다. 남해상으로 피한 50여척도 다시 부산에 집결하여 일본으로 돌아갔다. 철수하려는 일본군은 남해안에 구축한 30여개의 왜성을 출발해 부산성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보내주는 수송선을 기다려 왜성을 버리고 11월25일 전원 철수했다. 정유년 출병 시 전투서열상의 병력이 14만여 명이었다. 그들이 다 참전하지 않았다 해도 다음해 8월의 실 병력은 6만4천이었으므로 일본군의 절반 이상이 조선에서 아사, 병사, 전사했다고 판단된다.

충무사에서 입구쪽으로 찍은 사진

멀리 보이는 섬 같은 곳이 왜성. 해자 파기 좋은 지형. 함선의 접근 용이. 육지로부터의 공격 방어에 유리

왜성에 대항하는 조선군 진지. 왜성이 멀어서 포로 공격 불가
4. 충무사에서 검단산성까지
왜성에서 10분쯤 북으로 가면 충무사가 있다. 왜란이 끝난 뒤 약 100년 후, 이곳에 이주한 사람들은 죽은 왜군의 귀신이 밤에 자주 출몰해 불안했다. 그들은 이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을 지어 왜귀를 몰아내 줄 것을 빌었다. 그 이후 밤에 출몰하던 왜귀(倭鬼)가 사라졌다. 일제가 1943년 사당을 소각했으나 해방 후 1947년 다시 지었다. 지금은 송희립, 정운 두 장군도 함께 봉안해 춘추로 제향한다.
순례자들은 마을 정자에서 쉬는 주민에게 충무사 가는 길을 물었다.
“저기 보이는 언덕입니다.”
충무사 앞에는 멋진 한옥 한 채와, 충무사중건비 등 많은 비석이 있는데. 무슨 내용인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했다.
충무사에서 나와 주민에게 순천 가는 버스를 물으니 1시간이상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율촌면사무소에 가면 버스가 더 자주 다닙니다.”
“그렇다면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 보다는 걷자. 시골 정취도 느끼면서...”
“금오랑은 기회만 있으면 걷자는 구나.”
인송이 한마디 했다. 문 회장은 사진 찍을 일이 많을 것이니 걷기에 찬성이다.
그들은 지름길을 물어 율촌을 향했다. 언덕에 오르니 멀리 순천왜성의 언덕이 섬처럼 보였다.
“여기서 보니 저기가 요새로 만들기에 적절한 지형이구나.”
이제부터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주위의 농가와 어울리지 않는 솟을 대문이 보였다. 선월리에서 남남서로 진행하던 일행은 삼거리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선택의 기로(岐路)이다. 11시 방향(남쪽)과 4시 방향(북북서)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마침 남쪽에서 트럭이 올라오기에 세워서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율촌을 걸어가려면 어느 방향인가요?”
“북쪽으로 가시오.”
일행은 오던 길과는 예각으로 구부러진 북북서로 진로를 잡았다. 오르막길 정상에는 남쪽에 검단산성 300m 안내판이 있다. 순례자들은 지쳤다. 더 이상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버스 정거장 나오면 무조건 멈춥니다. 순례 끝입니다.”
금오랑이 선언을 했다. 처음으로 만난 정거장에는 마을 주민이 한사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곧 버스가 올 모양이다. 사실 이미 50분 이상 걸었으므로 신성리 충무사에서 타려던 버스가 올 시간도 된 것이다. 정거장과 정자가 큰 느티나무 아래 있었는데 두 건물 모두 유리로 사방을 가렸다. 정자라면 사방이 트여 있는 것이 보통인데 유리로 막은 모습은 좀 생경했다. 이 마을은 비바람이 심한 모양이다.
5. 상경
순례자들은 버스로 20분정도 달려서 순천역에 도착했다(16:30). 승강장에는 정원박람회를 관람한 초등학생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17시13분발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초등생들은 구례구역에서 다 내렸다. 금오랑은 문자로 회계보고를 했다. <회계보고(3인해당분) 9월10일, 모텔 40000. 11일, 조식 22000, 오동도-시내 택시 3000, 간식 7700, 율촌면 중식 막걸리 18500, 계 91200. 주최측 지원 16200. 분담대상액 75000, 1인당 25000>
두어 시간 지나자 금오랑이 낮에 산 간식과 순천역에서 산 막걸리를 내 놓았다. 충청도를 지나면서 빗방울이 차창을 스쳤다. ‘중부지방은 폭우가 내렸다는 데 남쪽에서 비를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어.’ 금오랑은 임무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정소성]

여수 오동도와 순천왜성 검단산성의 지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읽었다. 성실하고 진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