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이 암담한 것은 교육의 근본이 인간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한 이수일(62) 전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실장은 기자가 “공교육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극악스럽기 그지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공주사대 출신인 이 전 실장은 1967년 처음 교단에 선 후 37년 6개월을 교육계에 몸담으면서 그 중 반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머지 반은 교육행정을 맡아온 ‘교육전문가’. 그는 퇴임 직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장학금 2000만원을 남몰래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이 이후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우리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교육이 입시위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꼽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간에게는 참으로 다양한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오직 서울대 의대·법대에 들어가는 것만을 지상목표로 삼고 아이들을 몰아세우니 그게 문제죠. 부모의 굴절된 교육관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예수님이 교육부 장관이 된다고 해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서울시 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담당 장학관으로 재직중이던 지난 1993년 서울시내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폐지하고, 중학교 내신성적과 봉사활동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 결과 서울시는 1998년 입시부터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폐지했다. “당시에는 나라가 뒤집힐만큼 큰 사건이었어요. 봉사활동을 성적에 반영한다는 점을 낯설게 느낀 학부모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죠. 그렇지만 지식암기 위주의 교육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현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초·중·고교에서의 학생 평가는 지식 암기 중심이 아니라 토론 및 체험 중심의 수행평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교육부 학교정책실 중등교육 정책과장으로 임명됐던 지난 1998년 그는 이해찬 당시 교육부총리에게 이와 같은 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초·중·고에 토론문화와 체험교육을 정착시키고 학생평가 방법을 다양화하며, 교사의 전문성을 길러야한다고 말씀드렸어요. 대학의 학생선정에서는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서울대 입시의 영향이 크기때문에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만들어야한다고 제안했죠.”
“‘이해찬 세대’의 학력저하는 당시 교육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학력저하라고들 언론에서 많이 이야기하는데 구시대의 학력개념을 적용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의 학력관이 있어요. 지식기반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감성과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수십 년 전의 한자 시험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해서 학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고교평준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분간은 평준화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지난 1968년 중학교 입시가 철폐됐을 때의 감격,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가 도입됐을 때의 사회가 얼마나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는지 생각해 봅시다. 당시 중·고교 입시는 지옥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일부 상류층만 자녀의 입시 경쟁에 매달렸지요. 지금 다시 평준화를 폐지한다고 하면 전 국민이 그 경쟁에 매달릴 겁니다.”
그는 “대입제도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학당국이 객관화해서 우수한 사람을 뽑겠다며 지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인간은 불투명하고 오묘한 존재라 투명한 잣대로 잘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국대학은 미래 지향적으로 학생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들 프로그램에 의해 훌륭히 커갈 수 있는 사람을 뽑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입니다. 학생이 과거 몇 점을 받았고 몇 등을 했다는 사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는 “초·중·고에서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길러주고 인성에 충실할 수 있도록 평준화를 유지해야하지만 대학의 경우는 피눈물나도록 학생들을 경쟁시켜야 한다”며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긴다는 그는 ‘교육혼(魂)’을 지닌 교사가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전문성을 지닌 교사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줄 때 비로소 우리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고 했다. “교사의 기본은 자기희생과 봉사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염원을 가져야지요. 프로로서 자기 직업에 대해 당당하고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야합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무너져가고 있어요. 교사는 노동자니 일하는만큼 대접받아야한다는 주장도 일면 타당하겠지만 나는 희생, 봉사, 애정,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