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없다라는 영화 보셨져?
전 며칠전에 빌려다 봤는데 왠지 슬퍼졌어요.
삼류 복싱선수 정우성. 치사한 건달 이정재.
그리고 배우를 꿈꾸는 한고은.
정우성과 한고은은 자신의 꿈을 쫓고 이정재는
돈을 쫓지만 다들 실패만 하져...
근데 세상이 뚯대로 살수 없다는건 알지만
자신이 정말 노력했는데 또 능력이 있는데도
운이라는게 비켜가서 기회라는 놈이 안와서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하는것두 있나여?
우리 20대는 자신의 꿈을 잘 찾아서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사람두 시행착오와 방황두 많이 하잖아요.
거기다 자신의 길조차 몰라서 해매이는 사람들...
세상은 공평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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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표현일 빌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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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유가 어디 있는가? 이 우주에는 자유라는 현상이 없다. 누가 자유를 가졌는가? 도통한다고 자유로운가? 각기 수백만억겁의 사연으로 얽혀 사는데 인간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우주에는 자유로운 인간도 평등도 없다. 그러면 무엇이 있는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조화다! 조화로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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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이 독립할 때 워싱턴 장군을 위시하여 미국 헌법이 만들어진 것을 기억합니다. 미국 헌법은 인류가 난 이래 가장 빠른 기간에 이루어진 업적이라고 하는 말이 있더군요. 한편으로는 업적인지 모르지만 부실공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많겠네용.
우리나라 헌법도 미국 헌법으로부터 많이 영향을 받았을 텐데.. 우리 나라 헌법은 일본 헌법을 거의 가져다 쓴 거라고 하지요.
미국 헌법 첫머리에는 이렇게 시작된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사회 교과서 뒤쪽에 우리나라 헌법 전문이 실렸던 것을 기억하는데 우리나라 헌법은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인간의 존엄성이니 뭐니 하는 문제들을 시험문제에서 봤던 것으로 보아 거의 똑같은 말이 있겠죵~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쓰고 있는 법이란 첫머리부터 틀려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평등해보이지 않으니까요.
가난하게 태어나고 부자로 태어난 차이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로 태어난 자도 있는데 과연 평등한가요.
사회적 신분의 차이도 있구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자유국가라는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사회신분적으로는 훨씬 자유롭다고 합니다. 미국은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 딱 구분되어 있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누구나 시험만 잘 보면 서울대 잘 들어갈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제일 좋다는 하버드 대학교는 집안이 보통 부자가 아니면 꿈을 깨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등록금이 아마도 몇 백이 아니라 몇 천 단위인가 봅니다. 최근에는 수능이라는 것도 다 폭잡히고 시험보는 것이어서 고액과외면 쉽게 점수를 딴다고 하는군요. 이런게 어떻게 보면 평등을 갉아먹는 것인가 봅니다.
우리는 영화 말콤엑스에서 흑인들이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말콤엑스를 따라서 이슬람교를 신앙하게 되는 모습을 봅니다. 이슬람교라는 것도 태어난 곳이 중동 어느매라서 기독교와 그 틀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지만, 흑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데는 기독교가 한 몫 했었나봅니다. 말콤엑스의 예언자와 같은 힘과 웅변은 수많은 흑인들에게 희망과 힘을 주었고, 그들을 말콤엑스를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불행히도 말콤엑스의 뛰어난 억덕과 성인지심은 주위의 시기하는 사람들과 기독교 단체들의 테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게 미국의 현실이랍니다.
한국이라고 뭐 다르나요. 우리나라에는 흑인이 없을 뿐이죠.
상제님 공사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순간 누가 장난 했는지도 모르게 조선판 노예제도인 쌍놈이 없어졌습니다. 60년 무렵까지도 어느집 품삯받는 하인이 있다고 하더랬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이후 정말 새 마을이 된 셈이죠. 박정희 대통령의 이런 점은 그 아저씨 빼고는 아무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짧은 시간 가장 효율적인 업적을 만들었으니까요.
지금은 그래도 인간은 평등하다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우리는 이해하지만 후천도 그럴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거라고 봅니다.
지금은 사람마다 자라나게 되는 환경이 다르지만, 후천은 개인의 공력과 복록에 따라서 수명이 다르고 도통의 경지가 다르게 됩니다. 지금과 같은 환상 속의 도통은 아니겠지요. 도통대중화시대에서는 그렇게 도통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이 됩니다.
후천은 사람마다 최소한 자기 앞날은 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훤히 알고 사는 사회는 아주 "열린 사회"겠지요. 우리의 상상으로는 이러한 열린 사회라는 것을 상상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작은 송사리가 큰 고래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요.
후천은 모든 정보가 공개된 사회입니다. 상제님이 "추지기신야(秋之氣神也)"라고 하셨듯이 엄청나게 높은 파동으로 생명체들이 진동하는 사회입니다. 정보의 전달 속도는 지금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지금과 같이 영성이 닫히고 생각이 닫히고 저열한 통신장비들에 의존해서 통신을 하는 시대와는 달리 정보는 무시간적으로 통용됩니다.
"열린 사회"가 됨은 당연하죠.
칼 포퍼라는 아저씨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2차대전 중에 썼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열린 사회라는 미명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구조에 의한 폭압을 비판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차대전 중에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마찬가지로 일본은 국민들에게 어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마구잡이로 부리고 있다는 것이죠. 정작 국민들은 그것이 부자유인지 파악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후천에는 모다 도통한다니 그런 자유에 대해서 제대로 사람들이 파악할거니까 좀 안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