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봄 비 치고는 새차게 기세를 올리며 퍼 부어서
오늘까지 땅은 질고 외출에는 엄두를 내지 않다가도 남은
시선의 미련은 창문 밖을 서성인다
차마 귀청을 열어 봄이 오는 소리를 다 듣지 못하고
나가지도 않고 눈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리숙한이라
어쩔텐가 생겨 먹은 것이 그 판이라고 슬쩍 날씨타령으로
속내를 숨겨보지만 어리석음은 벌써 뽀록이 나버리지 않은가
봄의 방초는 비를 기다리지 않는다더니 초록의 향연이다
곁들여 속속들이 피어나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들이
중간중간 속살에 섞인듯 다소곳한 모습이 호사롭게 정겹다
몇 일 전에 조계산 대장봉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연화봉으로
돌다가 국사봉 옛길을 호젓하게 돌고 도는데 아랫동네는 벌써
잎이 돋아 큼지막한 자태로 봄이 완연하였으나 높지 않은
산 중턱부터는 아직까지 봄을 알리는 소식이라고는 철이
이르다는 시늉으로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였는데
질투라도 내야 할 진달래 옆구리에 철쭉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래도 지면에는 여러가지 자잘한 꽃들이 무수하게 피었는데
다들 이름을 알 지 못하니 불러주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할 뿐
그 중에서도 엘레지가 군무를 이루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니 이름조차 몰랐던 그 꽃이 어찌 이름을 기억하고
반갑다고 인사까지 나누는지 내가 봐도 웃을 일인데 대면하는
그 꽃이 또한 얼마나 대견스러워 하겠는가 싶어 우쭐이었다 ㅎㅎ
무엇을 좀 안다고 다 좋을 일이 아니련만 몰라서 쉬이 지나치고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라니 알아서 불러 준다고 어찌 알겠냐며
퉁사리 칠 일도 아니고 몰라서 불러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니
알아서 좋다고 퉁 칠 일도 아니고 모른다고 들통 낼 일도 아니고
이 깊은 산 중에 누가 베었는지 커다란 덩치의 그루터기를 깔고
앉아 두런두런 싸들고 간 간식꺼리에 물 한모금도 꿀 맛이라
엘레지하고 알러지하고 무슨 연유야 있겠냐만 봄이면 꽃가루에
미세먼지에 나의 콧잔등과 눈 언저리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재채기로 가름해 보고자 손사래를 쳐 보지만 얼척없는 일이란듯
하산 길 내내 훌쩍훌쩍 콧물을 들이키다가 킁킁거리기를 반복하자니
예순여섯살 어린아이마냥 콧잔등은 벌겋고 수건은 흥건하였다
첫댓글 얼레지와 알러지?
기똥찬 발상이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길효님 안녕하십니까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그저 끄적거린 너저분함을 곱게 봐 주셔서 더욱 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늘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차가운 바위가 아닌 나무의 그루터기라도 있어 앉으며 간식에 꿀맛이었으나 봄철의 무법자에겐 비염의 존재를 느끼게 했나 싶습니다.
다행인 것은
누군가 군무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이요,
고스란히 볼거리를 산행의 보람답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