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동은 시인 박용래(1925-1980)가 오래 살다가 간 대전에 있는 그의 집이 있었던 마을의 이름이다.
그는 그 오류동 집에서 직장 없이 집에서 시를 쓰며 지내다가 조산원을 하는 아내가 돌아오면
마치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밖으로 나왔다 한다. 그가 직장 생활을 한 건 일제 때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잠시 있었던 때와 해방 후 중학교 교사 몇 년이 전부였다.
이 시는 그가 타계한 후인 1984년에 유고로 발표됐으므로 1980년 이전에 쓰여졌다.
그는 이렇게 돈이 안 되는 시만 쓰고 사는 자기의 모습을 마치 동전 같다고 말한다.
동전은 새겨진 액수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 때 동전도 지금처럼 1원이나 10원 짜리였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박용래는 아무도 없는 집의 방에 누워 돈벌이도 못하고, 지방에 있어서 시인으로도 별로 빛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그런 동전 같이 생각되었을 것이다. 자기는 쓰윽 꺼내어 호기롭게 지불하는 그런 지폐가 아니라,
잔돈이나 값이 많지 않게 소용되는 그런 동전과 같다는 것이다.
헌데, 그것도 전생에서는 솜과자나 붕어빵, 좌판 위의 햇살, 조롱 속의 새였을 거라고 한다.
솜과자는 학교 운동회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타나는, 사탕으로 솜처럼 부풀려 만든, 값이 싸고
누구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거리 음식이다. 붕어빵도 거리 귀퉁이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봉지 씩 사 가지고 가는 즉석 구이 빵이다. 또, 그는 자신을 길거리나 시장 어귀에서 잡동사니들이나
텃밭에서 캐온 채소 등속을 파는 서민의 좌판 위를 비추는 햇살이며 부산한 중국 음식점 한쪽에서
별다른 관심 없이 놓여진 조롱 속의 새였을 거라고 말한다.
허나 그가 이렇게 자조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한 봉지 솜과자나 붕어빵은 또 싼 값으로
얼마나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하고 요기가 되게 하는가. 스산한 거리 귀퉁이 좌판을 비추는 한 줌 햇살은
또 얼마나 정겨운 것인가. 중국집 조롱속의 새는 갑갑하지만 중국집을 찿는 손님들에게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 존재인가. 동전이 고액의 지폐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들이나 주머니가 텅 빈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돈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이 시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허나 이 시가 그 진정성과 욕심 없는 시인의 모습으로 하여
우리에게 주는 것은 감동은 얼마나 큰가. 자기가 전생에는 틀림없이 별 볼일 없는 존재였을 것인데
이승에서도 그런 하잘 것 없는 동전이 되었다는 그의 진술이 눈물겨우면서도 그 이면에 스며있는
마치 남산골샌님 같은 자부심도 엿볼 수 있다.
평생을 오로지 시에 헌신하며 가난하게 살다 간 그 동전이 지금 은전, 금전이 되어 빛나고 있다. 그
런 시인에게서 태어난 시들, 그 동전처럼 작고 단단한 시들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죽어 그는 또 무엇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 이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도 이제는 지폐가 아니라 그런 동전이 되고 싶다. 그런 아라동의 동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