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따로 없습니다. 오늘 6시에 일어나 여기 들어와 보니 우리지기님과 도계선생 맨님의 답글이 새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지기님과 도계선생의 답글에 답을 하고 맨님 답글에 대한 답글을 쓰고 보니 답글이 별도로 쓰여져있어, 새로 화살표로 넣어 정리 해보겠다고 일단 쓴 댓글을 복사해 놓고 순간 삭제를 누른게 몽창 달아 가 버렸습니다.. 여기에 새로 싣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신 답글이 아까워 복구 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법을 아시면 가르쳐 주십시오. )
명문가의 여인(제1회)
권 희 경
[1]하얗게 웃고 있는 그녀
올 봄은 유난히 따뜻하다.
너무 급히 오는 봄의 길목을 가로 막기라도 하려는지 하늘은 며칠째 흐려있지만, 바람은 사월 말이나 오월 초쯤에나 불어올 법한 더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
이러다가는 이 땅에도 봄은 없어지고 바로 초여름으로 진입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언론들은 떠들 대고 있다.
오육십 년 전.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라면 봄이 빨리 와서 추위 하나만이라도 덜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적선이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즈음 사람들은 일찍 찾아오는 봄이 대단히 못마땅한 모양이다. 하기야 지구과학자들은 물론, 타 분야의 과학자들도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재앙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로 떠들고 있으니, 봄치고는 엄청 따뜻한 이런 날씨가 사람들에게 무서운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높은 산이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낮은 산줄기를 깎아 조성한 이곳 전원주택단지에도 봄기운은 완연하다.
개폐기가 설치된 입구에서 올려다보면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원주택마을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마을 한 가운데로 곧게 나 있는 길 양 옆에는 벚나무 가로수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지금 훈풍이 벚나무 가지를 부드럽게 흔든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자주 빛 볼록한 꽃망울들을 매달고 있는 벚나무들은 이제 멀지 않아 하얗게 웃으며 피어 날 것이다.
전원주택단지의 집들은 산을 향해 정남향으로 지어진 아래쪽과 위쪽의 몇 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길을 따라 동남향으로 앉혀져 있다. 길의 동편 집들은 길을 등지고 앉아 있고, 길의 서편 집들은 길을 향하고 있다.
맨 아래쪽에 위치한 정남향의 조명준교수 집은 떨어져 있는 산과 벚나무 가로수들이 안방과 거실의 큰 창문을 통해서도 한 눈에 훤히 내다보이게 설계되어 있었다.
폐암 선고를 받은 후, 내처 대학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조명준교수가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긴지도 벌써 한 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조교수의 병은 발견이 늦은데다가 고희를 넘긴 나이에 항암치료가 무리였던 모양이다. 몇 번 치료를 받지 않아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부작용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결국 항암치료를 중단 할 수밖에 없었다.
조교수는 항암치료를 중단하던 그날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하기를 희망했고, 그의 마지막을 이 집에서 맞겠다고 아내 예나원여사에게 일러, 그들은 급히 이리로 이사 해 왔다.
그 집의 거실에 걸린 고전양식의 괘종이 방금 두 번을 울었다.
내처 누워만 있던 조교수가 아내에게 일어나 앉고 싶다고 부탁한다.
예여사는 환자용 침대 아래쪽에 달려 있는 버턴을 누른다. 침대가 머리 쪽에서부터 서서히 들어 올려진다. 침대가 정지되자, 예여사는 조교수가 편안하게 몸을 가누고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보살핀다.
칠십을 눈앞에 둔 예여사지만, 남편의 병간호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녀는 재벌가의 여식답게 교수생활을 하는 남편의 봉급을 넘겨다보는 일 없이 친정에서 물려 준 재산으로 평생 남편을 보살피며 살아왔었다. 이번에도 별장으로 사 둔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간호사와 간병인까지 데리고 이사를 해 왔지만, 그녀는 쉬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남편을 간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뼈만 남은 조교수의 몰골이 이제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가늠케 한다.
일어나 앉은 그는 힘없이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다.
잔가지 끝에 수 없이 많은 꽃망울을 달고 있는 벚나무들은 아우라에 싸인 양, 자주 빛에 가까운 예쁜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창 너머로 보이는 길과 가로수에 반쯤 가려있는 집들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다가 아내에게 묻는다.
‘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오.’
자주 빛 기운을 띠고 있는 벚나무들을 바라보던 조교수는 힘에 겨운 듯 헐떡이며 예여사에게 묻는다.
마침 나무들은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예’
‘밖은 춥소’
‘아니요. 언론에서는 절기가 열흘이상 빠르다고 하네요. 바람도 늦봄이나 초여름처럼 훈훈하다는데요.’
‘…’
아내의 친절한 설명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남편의 의중을 헤아리기라도 하려는 듯, 예여사가 다시 말한다.
‘추워 보여요.’
‘…’
그는 또다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대답을 할 힘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하며 남편의 눈치를 살피던 예여사가 다시 묻는다.
‘다시 누우실래요.’
‘아니 괜찮소.’
조교수는 그 짧은 대답도 힘이 드는지 떠듬떠듬 억지로 말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한 자세로 그는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다.
(며칠 있으면 꽃들도 피어나겠지. 저 꽃들이 필 때까지는 나도 살아 있으려나.)
그는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남은 생명을 가늠한다.
예여사는 말없이 앉아 있는 남편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제 남편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통 받지 않게 해 주는 일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예여사는 조교수가 조금만 숨이 차 해도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조금이라도 아픔을 참지 못하는 것 같은 기색이 보이면 곧 간호사에게 시켜 진통제를 주사하라고 명하며, 오로지 남편의 고통을 들어주려는데 혼신을 바치고 있다.
앞으로 조교수의 병이 더 악화되면 그녀는 다른 생각하지 않고 진통제의 양을 더 늘릴 것이다. 그 덕분에 조교수의 정신은 늘 잠이 덜 깬 사람처럼 혼미한 상태다.
예여사가 다시 묻는다.
‘눕지 않으실래요.’
환자용 침대 곁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예여사가 일어나며 말한다.
조교수가 고개를 젓는다.
예여사는 다시 안락의자에 앉는다.
그런 자세로 한참을 더 그렇게 앉아 있던 조교수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됐소.’
조교수가 마침내 눕혀주기를 청하며, 눈길을 돌려 예여사를 바라본다.
예여사는 조심스럽게 남편의 머리와 어깨를 받쳤던 얇고 넓은 쿠션을 빼내고 머리를 침대에 기대게 한 후, 아래쪽 버턴을 눌러 조심스럽게 침대를 내린다. 이런 일은 간호사나 간병인에게 맡겨도 될 것 같건만, 그녀는 그마저도 손수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조교수는 눈을 감는다. 그는 금방 잠이라도 든 듯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를 속으로 가늠하고 있다.
(아직은 죽지 않을 것이다.)
조교수는 누구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생존의 시간을 좀 더 허락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곧 잠에 빠져 들고 만다.
입을 벌리고 자는 그의 모습은 피부가 덮여 있는 해골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편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한 예여사는 방밖으로 나가 간호사와 간병인을 부른다.
‘김양 송양 나 좀 쉴 테니까 교수님 곁을 지켜요.’
이렇게 이르고 난 예여사는 남편의 곁을 떠나 옆방으로 가서 침대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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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러면 어때요. 좋은글 올리는데 好事에 一魔니 말입니다. 그걸수도 있지요
위로가 되네요. 곰곰히 생각했더니 명단은 나왔습니다.
에헤이~~~~
아이구 아까버라......
정말 아까워 죽겠다.
늦게 온 것이 다행이네 ㅎㅎㅎ 이 글을 읽으니 몇일 전에 하늘로 간 친구생각이 납니다. 그 친구도 항암치료 두 번하고는 몸이 쇠약해져서 더 이상 치료 못하고...... 조교수님의 병세가 궁금해지고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화님 이 답글 읽고 실컷 웃었네요. 역시 아름다운 여인이라니까. 평해 즈는 것 잊지 마시오.
덧글이 시원찮아 다 지우셨구려, 앞으로는 정성드려 쓰야 겠는데 미천이 짧아서 ㅋㅋㅋㅋ.
이게 무신소리입니까. 일일히 답을 다했는데ㅡ. 내 잘못입니다. 다 날라 가버렸으니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읽어시고 정말 부탁합니다.
명문가의 여인이라 제목이 근사하네요. 이제쯤 쉴때도 되었으련만 게속 의욕적으로 생각하고 글쓰고,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풀어지려나---기대되네요.
감사 합니다. 답글을 분명 썼는데 확인을 누르지 않았나-. 아무튼 감사 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누구신지요. 그대도 답글 쓰면서 궁금했는데.
본문만 건재하면 됩니다요.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또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다보니 문득 보고 싶고 만나고 싶네요.
한번 더 보니 더 좋습니다.
1회를 보고 아래층으로 가서 2회를 연이어 보면 더 좋다고~
지워진 것이 아닐까요?
신의 섭리라고 하면 너무 거창?...ㅎㅎㅎ....*^^*
희경언니 행복한 추석명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에 대하한 답을 썼는데 또 확인을 누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부디 읽은 소감과 비평을 부탁 드립니다.
오랫만에 반갑고 감격스러워서 댓글을 썼더니 진짜 시원찮았는지 날아가 버렸네. 좋은 작품 읽게해 준 희경님께 감사!!!!!
명희야. 이 답글 아까 쓰고 도쓴다. 확인을 누르지 않았더라. 그리고 1회에 실은 네 답글 보고 내가 답을 한 것 못 읽었구나. 네가 문학소녀로 글을 잘 썼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너 뿐만 아니라 누구나 두꺼운 소설책 읽으려고 하면 소녀 소년 때는 시작과 함께 끝을 보기도 하지 않니. 너의 예리한 비평 꼭 부탁한다.
맛깔나게 써 내려 가신 솜씨에 큰 박수와 찬사를 보내 드립니다.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