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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초록
천 승 세
솜사탕처럼 보송보송 부푼 뭉게구름들이 무척 많이, 얄게 떠, 손을 뻗으면 가슴에 들 듯 가까웠고, 써늘한 들국화의 향내가 온몸에 배어 끈덕지던 황혼. 새끼 양의 턱 밀 몽실거리는 새하얀 털 속으로 차츰 물줄이 되어 번지는 오랜 동안의 초록처럼, 그날의 초록은 그렇게 질기게도 을다가 먼먼 곳으로 사라졌다. 애잔한 한 방을의 눈몰, 아니면 이마 위로 버얼건 흥분의 얼기가 사르는 기쁨의 한 조각, 그 어느 곳이고간에, 그늘이 면저 번져와 눈꺼풀이 열리던 그 초록은 이제 새하얀 영원보다 더 먼 곳에서 시야(視野)가 되어 펼쳐져 있는지도 모른다.
조약돌이 깔린 시냇물은 풀이끼 얹은 징검다리도 채 못 미쳐 남실대다간 전나무 숲속의 암반을 비집어 산곡을 발기발기 찢으디 흘렀다, 다섯 손가락 사이로 다 들어앉은 몇 가호의 초가집들, 영광 앞 바다가 버얼겋게 불이 붙으면 그 빛줄들의 살이 퍼져 와 노을이 되는 그리고 퍽은 혼한 산새 소리로 아침이 열리는, 그런 답답한 마을이었다. 이런 흔한 정경들 외에 여느 농촌과 좀 다른 풍경이 있다면 그것은 시냇물 속에 떠 있는 어항들이었다. 한줌 소나기가 뿌리고 지나간 뒤떤 진한 초록의 그늘들이 떨어져 잠긴 시냇물 위로 으레 어항들이 뗬다 어떤 날은 대여섯 개, 많은 날은 열 개도 넘는 어항들이 즐올 지어 떴댜 어항 속에다 된장올 넣고, 그 속의 거품들을 보릿대로 쪽쪽 뽑아내고, 뒤쪽으로 뚫린 구멍에 풀잎들올 돌돌 뭉쳐 막아두면 한 시간쯤 뒤에는 펄펄 뛰는 피라미나 중고기 따위들이 어항 속으로 가득 들었다.
신경쇠약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곳으로 온 후, 매일의 생활은 거의 지루하고 답답한 것이어서, 한의사가 지어준 새까만 환약들을 스무 개씩이나 숭늉에다 넘기고 나변 나는 으레 이 시냇물 가 얕은 둑에 앉아 애들이 어항으로 고기를 잡는 것을 해 지도록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이 마올 아이들은 나를 박사 아저씨라고 불렀다. 쉬운 수학문제나 자연 문제 같은 것을 묻는 대로 가르쳐주었더니 그만 이런 엄청난 이름이 붙어버렸던 것이다.
조심조심 다가간 아이들이 어항을 들구는 나를 향해 “박사 아저씨 이봐유!” 하기 전에 대개는 내 편에서 먼저 바보 같은 탄성을 지르기 일쑤였다. “와, 많이 잡혔다” 한다든가 “어휴 굉장하네!”라든가 하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서툴고 앳된 행동들이 좋았다. 어항올 놓을 때도 어항 속의 거픔올 보릿대롱으로 뽑아올릴 때도 그리고 양쪽 손을 얼굴 뒤로 모아 세우곤 조심조심 돌아설 때도 아이들은 저마다 꼭 둑 위의 나를 향해 씽긋 웃어주는 것이었다. 어항올 놓고 돌아와서는 내 곁으로 주욱 둘러앉아 그 싱거웁고 귀찮은 질문들올 해댔다. 귀찮다 생각될 때는, 번듯이 누워, 보던 책으로 얼굴올 가리곤 부러 코를 골아대면, 아이들은 저마다 낮은 목소리들로 “시끄럽게 하지 마 박사 아저씨 잔다으” 하며 시냇물 속의 어항들에 집요한 시선들올 모두었다. 쨍쨍한 햇빚이 기계총자리에 반질거리는 살 위로 돋은 땀방울들올 끓이는데도 아이들은 조금도 더위를 타지 않고 마냥 그대로였다.
나는 책갈피를 비스듬히 들어 이런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들을 훔쳐보면서 나도 모르게 쿡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자세히 관찰하면, 아이들의 속눈썹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깜박깜박하면서 한 곳에다 눈길을 떨어뜨린 품이 그렇게 속절없이 우스운 것이었다. 거기다 언제 싸웠는지 얼굴 한복판에 말라붙은 핏자국이라든가, 누런 고름이 엉켜 마른 머리통 속의 기계총자리라든가, 꼭 못구멍만큼 콧물로 좁혀셔 뽕 뚫린 콧구멍으로 숨을 쉴 적마다 흠찔흠찔 드나드는 콧믈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그렇게 우스웠다.
비녀풀에다 잡은 고기들을 주렁주령 꿰매들고, 배리착지근한 벼잎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좁은 논길로 아이들과 줄줄이 서 걸으면, 으레 영광 앞바다는 불을 지피기 시작하고 그 빛줄들은 살이 되어 비녀산 낮은 허리에다 노을을 심었다.
아이들은 꼭 돌아가는 길목에서 한두 차례 치고 받고 싸웠다. “박사 아저씨, 아까 아저씨 잠잘 때 저 영돌이가 방귀 꿨대유, 몰랐지유?” 누군가 이런 새삼스러운 말을 고자질이라고 하면 “내가 은제? 박사 아저씨, 내가 말 안 했지만유 쟤가 아까 아저씨 잠잘 때 종다리에서 털 뽑았대유, 몰랐지유?” 하면서 두 아이들의 “은제? 내가 은제?”는 급기야 아이들 죄다의 입들로 합치면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여간해선 아이들의 싸움올 말리기는 퍽 어려운 일이었으나 “너희들 아저씨는 병 앓잖아, 너희들이 싸우면 아저씨 병 막 더한다” 하는 이 말엔 싸움질도 뚝 끊고 나섰다. 싸움통에 논물 속으로 달아나선 뻐끔뻐끔 더운 숨들을 내쉬는 고기들올 다시 잡아 비녀풀에 꿰는 아이들의 천진한 동작들 위로, 이젠 퍽은 질게 번진 황혼이 잔자누록하게 입혀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유일한 정양이 되던 시냇물가의 둑이나 아이들의 재롱들이, 몹시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이후부터,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말았다. 시냇물 징검다리를 건너 비녀산올 오르는 바쁜 나의 걸음올 두 팔을 벌려 막고 서선,
“박사 아저씨! 오늘은 고기 더 많이 잡을게유 고기가 쬐끔 잽히닝게 재미없어 그러지유?”
하는 이런 속절없는 투정을 당할 때마다 나는 어슬프게 웃고 서선 머리통만 늙적거렸다. 이렇게 어설픈 웃음을 물고 고무신 끝으론 땅만 파작거리고 있는 내가 몹시도 답답했던지, 아이들은 서로의 눈들로 무슨 다짐이라도 하는 듯하다가,
“우리들보다 큰애기가 더 좋지유? 그래서 인저는 우리하고 안 놀지유?”
해놓고는 뿗불이 흩어쳐 도망가버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함성들이 포플러 진초록 그늘이 내린 시냇물 둑 위로 얀정없이 길게 몰아갈 때까지 나는 멍청하게 선 채 손으로는 비녀풀을 뽑고 있었다.
허긴, 어젯밤에도 아이들의 저 소리로 꿈 속내내 버르적거렸었다. 첫닭이 올 때야 다시 잠을 이루였던가.
후질후질 내리는 비가 어지간히 질겼다. 뿌연 비안개에 묻혀 비녀산 산자락도 뚝 끊겼다.
소녀는 징검다리에 이르러 잠시 머뭇거렸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펼쳐 앞의 돌멩이를 가늠하고 나선 훌찍 뛰었다. 다리 하나를 건너뛸 때마다 소녀는 두 손올 모아 가슴에다 대고는 후――하고 긴 한숨올 몰아쉬었다.
허리께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은 구대로 비에 젖어 쉴 새 없는 빗물이 낙수졌다. 소녀는 징검다리를 건너뛰는 짓이 무척 즐거운 것이었던지, 그때마다, 앵두빚이 도는 볼과 입술이 퍽 조용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쳐다보고 서선 소녀의 두 눈을 가리운 짙은 밤색 색안경올 원망했다. 저 소녀의 두 눈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웃고 있을까. 저 안경만 아니면 그 눈올 볼 텐데. 그리고 소녀의 눈은 무척 새까맣고 클 것이라는 생각들로 좀 멍청해 있올 때, 바로 내 앞 돌멩이로 훌쩍 뛰어 선 소녀가 불쑥 내 손올 움켜쥐었다. 그리고 나선 연약한 어깨를 들먹이며 가늘게 웃었다.
“미안해요. 하마터면 빠질 뻔했네.”
물나는 다소 당황해하며 눈 안으로 스미는 따가운 빗풀들을 닦았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놀랬다. 소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게 아니라 가슴까지 서늘해지는 소녀의 차디찬 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궁금한 일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소녀가 하필이면 이렇게 모진 빗속을 우산 하나 없이 거닐고 있는 것과 또 상냥하기 그지없는 소녀의 서울 말투였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소녀는 예의 차가운 웃음을 어깨로 웃으며 무척 오랜 친구의 손목이라도 잡은 양 지극히 태연하게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무릎까지 차는 시냇물을 짐병지게 걸으며 소녀의 차디찬 손올 잡고 있었다.
“박사 아저씨, 고마웠어요.”
꼭 무슨 말인가 해야 될 때의 그 망설임처럼 한동안 두 손바닥을 비비적거리며 헛눈올 팔고 섰던 소녀의 입에서 나로서는 실로 놀랄 수밖에 없는 이런 인사를 들었올 때, 하마터면 바보스러운 감탄을 해버렸올 듯한 조바심을 나는 용하게도 참고 견디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었다니, 참, 참 이상한데.”
소녀의 손목을 놓고 나는 한두 번 고개를 내저었다. 소녀는 내 손아귀에서 빼낸 조그만한 손을 허리 뒤쪽으로 돌려 깍지를 끼고는, 흡사 전혀 무관한 사람의 헛소리라도 듣는 양 천천히 돌아서 산길을 올랐다.
전나무 애가지에 빗무놀이 쏴아 하고 머물더니 젖은 나의 얼굴로 진초록 물방울들이 튀었다. 한동안, 무척 서투른 소녀의 걸음걸이를 지켜보고 선 채, 소녀는 어쩌면 동네 조무래기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나를 따르는 영돌이 누나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역빠른 단언올 하며, 소녀가 일구고 가는 바람결에 묻어오는 아릿한 그의 향내를 말고 있었다. 그 향내는 조금도 나의 성인을 자극하는 그런 매운 것이 아니었다. 막 머리를 감고 들어온 어머니의 그 젖은 머리칼에서 풍기는 비누 냄새의 여운 같은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훌쩍훌쩍 울고난 어린 조카의 마른 눈물 자국으로 번치는 고소한 입김 같은.
소녀의 걸음이 키만한 높이의 바위 앞에서 멈춰섰올 때 나는 황망하게 다가가 소녀의 흠뻑 빗물에 밴 손을 움켜쥐었다.
앞을 분간키 어려울 정도루 점점 세차지는 빗발, 그 빗줄기 속으로 얼리고 닫히는 무서운 초록. 끝내는 내뿜는 입김에도 친한 풀 냄새가 섞여 내가 한 그루 전나무의 고된 몸부림으로 영원히 서버릴 것만 같은 아찔한 무섬끼가 하늘처럼 눌렀올 때, 나의 이같은 용기는 상추잎처럼 야들거리는 그리움의 마디마디로 자라는 것이었다.
“어딜 가는 거야, 웅? 산에 뭐가 있다구 더구나 이렇게 막 비가 오잖아.”
어쩌면 나는, 울음을 터뜨리기 전의 착잡한 얼굴로 소리쳤는지 모른다. 소녀의 밤색 색안경, 그 짙은 색깔 속의 눈빛은 이런 나의 조급함을 나무래고 있었다. 쿡― 하고 터뜨리는 소녀의 짧은 웃음은 곧 전나무 가지 끝에 열려 모진 빗발을 맞고 있었다.
“오늘 찾아가기로 했는걸요. 무척무척 기다릴 거예요.”
소녀는, 돌아서며, 그 차디찬 손아귀에 힘을 줘, 약간은 떨리고 있었던 나의 손올 잡아 끌었다.
“집이 산 속에 있었나.”
“아뇨, 비오는 날이면 무척 허기져 있는 내 친구를 찾아가는 거예요"
“밥을 가지구요”
“그럼 친구의 집이 산 속에 있군.”
“글쎄요…… 말하자면 그런데요…… 하여튼 나와 처지가 비슷해요. 보긴 보는데요 진한 건 몰라요 가엾잖아요? 그렇죠?”
소녀의 수수께끼 같은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산길올 올랐다. 팔과 팔이 닿은 그 사이로 나의 체온과 소녀의 체온이 섞였올 법한 따뜻한 빗물이 흘렀다.
어린 소나무들이 다문다문 앉은 좀은 낮은 산자락에 이르러 소녀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발 아래 조그만 돌멩이를 집어들더니 서너 차례 주위로 던졌다. 푸드득 멧새가 날았다.
소녀는 멧새가 날은 어린 소나무께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그 곁에 바싹 쪼그려 앉았다. 소녀는 소나무 가지 위로 연신 손가락올 뱅글뱅글 돌려대며,
“들리죠? 안 들려요?”
했다.
“무슨 소리가? 빗소리?”
“피이―내 친구가 날 부르는 소리 말예요 그래도 안 들려요?”
그제야 나는 귀를 쫑그리며 소나무께로 다가갔다. 빗소리에 섞여 가녀린 찌이―찌이 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소리나는 쪽올 향해 고개를 돌리다 말고 바보스러운 웃음올 몇 번 웃고 말았다. 꼭 쥐면 손 안에 든 듯한 조그마한 멧새둥치 속에서 멧새새끼들이 우짖고 있었다. 소녀의 손가락이 움직일 적마다 퍼런 핏줄이 분홍빛 살 속으로 드러난 몹시 어린 멧새새끼들은 누런 입가의 테두리를 세모꼴로 벌리고는 찌이찌이 우짖는 것이었다.
“밥을 줘야지.”
소녀는 젖가슴 속에 감춘 네모꼴 종이를 꺼내들고 한겹 한겹 종이를 벗겼다. 성냥갑 속에는 파리가 가득했다.
소녀는 파리를 손가락 끝에 쥐곤 훼훼 고개를 내두르는 멧새새끼들에
게 차례차례 밥을 줬다.
나는 그런 소녀의 어깨에 턱을 얹고 앉아 기실 멧새새끼보다는, 소녀의 하얀 목덜미나 가쁘게 들먹거리는 젖가슴에 눈길을 모으고 있었다. 약간 빗발이 멈춘 잿빛 하늘에다 왠지 자꾸 닳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며 나는 한 가지 기억을 더듬었다.
국민학교 육학년 때던가 그랬다. 다리를 절어 무척 애들의 놀림을 받던 혜원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항상 아이들의 눈을 피해 혼자 놀았다. 여름이면 집 앞 조그마한 사철나무 그늘에 앉아 돌줍기로 해를 보내고 겨울이면 헛간 앞의 손바닥만한 양지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혼자 보자기받기를 하고 놀았다.
어느 날이었다. 혜원이는 돼지을 앞에 앉아 여느 때와 달리 무척 불안하고 조급해보였다. 한번 놀려줄 심산으로 양팔을 벌려 날개를 세우고는 따따따따 총 쏘는 시늉올 하며 우루루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혜원이의 글썽한 눈과 곧 울 듯 상기된 얼굴올 보고 나도 몰래 의아해 섰는데, 혜원이는 양팔올 둥그렇게 해서 자기 앞올 막고는,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애타게 하소하는 것이었다. 혜원이의 그 둥그렇게 짠 팔아름 속올 들여다보다 말고 나는 “어?” 하고 놀래 서버렸다. 등어리는 활처럼 굽혀 엉켜주춤 섰는 어미쥐의 배 밑으로 일곱 마리나 되는 새끼쥐들이 억칙스레 젖을 빨아 먹고 있었다. 금방 땅바닥으로 특 떨어져내려 구슬처럼 대굴대굴 구를 것만 같은 불안한 눈알올 부라리며 어미 쥐는 한사코 앞발올 뻗치지만, 그럴 때마다 일곱 마리의 새끼쥐들은 얄미웁기도 한 팥알만한 눈들을 초롱초롱 뜨고 억세게 매달렸다.
나는 이미 눈물이 맺힌 채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혜원이의 눈올 향해 몹시도 매서웁게 흘겨주고는 주먹보다 큰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병신…… 쥐는 죽여야 해! 안 배웠니? 쥐가 얼마나 해로운 동몰이라는 것올 말야!”
혜원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내 손올 잡고 일어섰올 때에는 이미 돌멩이는 내 손올 떠나 아주 기분 나쁜 소리로 어미쥐의 머리 위에 떨어진 뒤였다.
깨진 어미쥐의 머리에서 선지가 흐르고 뒷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더니, 지렁이 꿈틀대듯 긴 꼬리가 몇 번 꾸였다 늘어졌을 때는, 한 마리의 새끼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 순하기만 하던 혜원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내 팔목올 흑 물고 늘어졌다. 나는 “어? 이 병신 안 놔? 안 놔?” 하다 말고 힘대로 혜원이의 가슴팍올 내질렀던 것이다. 혜원이는 강그러지며 쓰러졌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몇 달간을, 혜원이는 사철나무 그늘 아래도 돼지울 앞에도 도무지 그 모습올 나타내지 않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겨을날, 혜원이네의 낮은 초가집에서 울음들이 터졌다. 앓던 혜원이가 피가래를 쏟고는 죽은 것이었다.
“박삭 아저씨 추우세요?”
소녀의 조용한 물음에야 내가 그 동안 무척이나 떨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순간, 애써 소녀를 혜원이라 생각하며, 성급하게 소녀의 허리통올 꼬옥 안으며 젖가슴 속에다 얼굴을 묻었다. 이런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도 소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또 쿡―하고 웃올 뿐이었다. 밤색 질은 색안경이 타이르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봐 눈을 보여줘! 안경 좀 벗었으면 좋겠다. 응?"
소녀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왜?"
“쌍꺼풀 수술을 해서 다 나을 때까진 숭해요.”
“그래? 그까짓 시시한 짓을 뭣 때문에 한단 말이야! 여잔 도무지 시시하거 던!”
피식 웃다 말고 나는 좀은 뻔뻔스러울 수도 있는 나를 타이르고 있었다. 마을에 온 지 달포가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소녀의 젖가슴에 안겨 나는 먼먼 혜원이의 추억까지 되새긴 것이다. 소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구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무척 어색해 있었는데 소녀의 차분한 한마디의 말로 이내 기특하리만치 당당해질 수 있었다.
“박사 아저씨! 모두 다 비 탓으로 돌리면 어떨까요? 사실 전 그리운 게 너무 많거던요? ……그래요. 꼭! 죄다 비 탓으로 돌려요, 네?’,
소녀의 참으로 기특한 이 말로 나는 금세 무례한 사내가 될 수 있었다.
“맞았어! 비 탓이야 그리구 꼬마놈들이 먼저 토라졌었구 그리구 말야 나는 병자니깐 잠잘 때 빼놓고는 매양 성한 사람들이 그립거든. 난 신경쇠약 환자야 난·…….”
“피이―고까짓 거.”
소녀의 후끈한 한숨이 내 얼굴 위로 번졌다. 소녀의 볼에다 꼭 입을 맞추면 어떨까, 화낼까, 하는 생각으로 새끼 손톱올 지근지근 깨물던 나는 이렇게 소나기가 걷혔을 때의 그 시냇물 어항들이 생각나 일어서고 말았다.
“명함이나 한 장 놓고 가시지 그러세요, 엄마 아빠한테 할 말이 없올텐데요. 네?”
갑작스런 소녀의 이런 말애 나는 잠을 못 이뤄 고생하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지어보이는 그런 멍청한 얼굴로 망연히 서 있었다.
“명함이라니?”
“멧새둥지에다 명함 한 장 놓고 가는 게 뭐 그리 어려워요. 엄마새가 돌아오면 이런 사람이 왔다갔다구 말할 게 아녜요? 좀 시시해요?”
그제야 나는 소녀의 말올 알아들었다. 그런 소녀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그러지. 그것 멋 있는데.”
마침 뒷호주머니에 흠뻑 비에 젖어 글자도 알아보기 힘들 만치 닳고 닳은 명함 한 장이 있었다. 소나무가지 새에다 명함올 꽂아놓고 돌아섰올 때 소녀는 앵두빚 입술올 열고 크게 웃었다.
구름 사이로 하늘 한쪽이 열리더니 눈이 시릴 만큼 밝고 찬연한 햇살이 산자락으로 뻗쳐왔다.
“해가 떴죠?”
“그렇군.”
“참 이상해요. 다른 색깔들은 보이는 곳에 그 색이 있는데요, 왜 초록색은 감은 눈꺼폴에 와서 그늘을 느리우죠?”
“초록은 희망이니깐. 그리구 포부구 의욕이니까…….”
“그래요! 안 봐도 애당초 사람의 감각 속에 초록이 있나봐요.”
산올 내려오면서 소녀는 두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두 손으로 나의 허리를 감고 나의 가슴에 얼굴올 묻은 채, 소녀는 비녀풀을 뽑아 꼬옥꼬옥 깨물고 있었다.
소녀를 만난 뒤로부터는 지겨울 정도로 답답하고 단조로웁기만 하던 나의 정양생활이 다소 새 물올 가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나날이 활기스러워져갔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무서운 밤도 소녀의 얼굴올 생각하는 것만으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고, 체중마냥 가슴 한구석에 결렸던 시냇물가 그 둑의 초록도 이젠 싱거운 코웃음 하나로 달래버릴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기실 아무 상관도 없었던 초록색 그 하찮은 그늘올 두고 무척이나 고심해가며 나의 철학을 가꿔가는 일이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들이 나의 정양생활에 되려 해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병은 이 변화들로 하여금 나도 모르는 새 다 나아버린 것인지도 몰라도 예를 들면 소녀의 쌍꺼풀진 아름다운 눈을 곧 보게 될 거라는 심심찮은 기대 따위로 날마다 나의 의식이 선명해져가고 활달해져가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녀로 하여금 색깔 하나만이라도 분명히 알아두자고.
소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판이한 조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영돌이의 누나도 아니었고 이 마올 처녀도 아니었다. 소녀의 말로는 이모네 집에 정양하러 왔다 했다. 무슨 병이냐고 물으면 소녀는 예의 앵두빛 입술을 보조개가 패이도륵 꼭 다물어 물고는 언제나 쿡一하고 한번 웃을 뿐이었다. 그럴 때의 소녀는 정말로 귀여운 것이어서 자칫 했으면 소녀를 사내로서 갖고 싶은 여러 번의 충동올 애써 참아내곤 했던 것이다.
콩새의 눈꺼풀에 진하고 챤 초록 물방울이 튈 때쯤, 그러니까 산자락에 물김 같은 안개가 축축히 젖어 흐르다가 해돋이와 함께 거짓말인 양 걷히고 마는 그 사이면 으레 소녀는 멧새둥지 결에 앉아 있었고, 내뿜는 입김에도 초록의 진한 냄새가 묻어나게끔 왼통 그 속에서 젖다가 “쌍꺼풀진 눈은 언제 보여줄 것이냐”고 졸라대며 산길을 내릴 때면 영광 앞 바다는 벌겋게 불김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녀를 품에 안올 때마다 되지 못하게도 꼭 혜원이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소녀는 항상 검정 코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너무나 하얀 색깔이 되려 서러움마저 드는 그 가늘고 긴 다리. 숨쉬기에도 무척 고되보이는 좁은 젖가슴에 손을 얹고 있올 때면 헛간 앞 조그만한 양지에 양무릎올 세우고 앉아 혼자 보자기받기를 하던 그 핼쓱한 혜원이가 왜 그렇게도 생각나는 것인지―---¬.
“살려줄 걸 그랬어! 어미쥐를 살려즐걸! 그렇지? 그렇지?"
나는 소녀의 가슴을 파고들며 불현듯 이러기를 잘했고 그때마다 소녀는,
“멀요? 어미쥐가 뭐예요, 네?”
하며 짙은 밥색 색안경으로 챤찬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그 차디찬 손으로 나의 뒷덜미를 쓸어주는 것이었다.
나의 병도 사실은 쥐덫올 놀 때마다 생각나는 혜원이의 얼굴로 생겼는지 모른다. 아니,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걸핏하면 생각나는 혜원이의 얼굴이, 그 까마중 같던 눈알올 부릅뜨고 등어리를 활처렴 굽어 선 채 앞발을 뻗치던 어미쥐가 조금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여튼 나는 혜원이의 생각을 반쯤은 그 몸 속에 가지고 있는 소녀와 소녀의 고된 숨소리가 살강거리는 좁은 젖가슴에다 내 병올 묻고는, 꽤 많은 날들올 그렇게 열심히 사는 편이었다.
비녀산 낮은 산자락, 그 모도록이 깔린 잔솔발의 멧새둥지가 빈 달빛만 그득히 담고 조는 그때부터, 소녀는 다른 사람처럼 말도 몸짓도 전혀 달랐다. 멧새새끼들은 왜 자라서 어디로 날아가버렸올까. 소녀의 애잔한 한숨 소리를 들올 때마다 나는 이렇게 안타까운 원망올 하며 소녀의 차디찬 손에, 앵두빛 입술에, 그리고 가늘고 긴 다리에다 입을 맞춰주었지만, 소녀는 꼭 혼이 나간 듯 산사람 같지가 않았다.
여느때 같으면 힘올 줘 나의 목털미를 안아주었올 법한 그 차디참 손으로 마냥 비녀풀만 홅어내고 있었다. 쿡―하는 웃음은 멧새새끼가 날아간 후로 한 번도 들올 수 없었다.
그날, 종아리를 넘어 훤칠하게 자란 들국화들이 사태로 무더기져, 그 써늘한 향기가 온몸에 배이도록, 나는 수심에 찬 소녀를 안고 진종일 들국화밭 속에 누워 있었다.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으로 얕게 떠 있는 눈부신 금빛 뭉게구름에다 허망한 눈길을 꽂고 있던 나는 진초록 블라우스의 그 바삐 들먹거리는 소녀의 등올 두들기며 낮게 말했다.
“하여튼 말야, 태어나는 것은 죄다 자라구말야, 자라선 어른이 되구말야, 그러다간 또 죽는 거야 안 그래?”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멋없고 싱거운 말이, 소녀에게 털끝만큼의 위로가 될 수는 없었으나, 하늘올 향해 반듯이 누운 소녀의 너무나 태연한 태도가 몹시 못마땅하다 못해 서러웁기까지 했다.
“……그럼 나하구 서울 갈까?”
짐짓 가슴속올 떨려나온 이 말에 소녀는 여태 볼 수 없었던 완강한 힘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서올엔 아마 영원히 안 갈 거예요!”
“그럼?…….”
바보스러우리만치 다급하고 맥없는 나의 질문에 소녀는 한 마디의 대꾸없이 이번엔 등마저 돌아누웠다.
순간 나의 가슴속으로는 야릇한 욕심이 물결처럼 일면서, 그것은 제일 정직한 열기의 바다로 하늘 끝과 맞닿아 펼쳐지는 것이었다.
소녀의 입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신음이 자지러질 듯 연신 새어나왔으나, 나는 꼭 이때, 들국화 꽃더미 속에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던 소녀의 초록 블라우스가 하늘을 향해 있을 때? 어떻게든 소녀를 가져야 한다는 엉뚱한 울먹임으로 조금도 힘을 풀지 않았다.
소녀는 죽을 힘올 다해 나의 성급한 욕망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여태까지의 내게 준 소녀의 애정으로 감히 이런 냉대가 어디 있는가 싶게, 나의 정직을 있는 힘을 다해 거부하고 있었다. 나의 우왁스러운 손 끝에서 소녀의 초록 블라우스가 찢겨 속살이 드러났을 때 나는 그 속살의 색깔을 보고 한동안 어지러웠다. 얼마나 이 옷만 입고 지냈으면 소녀의 속살은 진초록 물이 배었을까.
소녀는 애써 앞가슴올 여미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박사 아저씨는 절, 절 아주 죽이실 마음이군요! 네? 그렇죠?”
“아나! 아냐! 그렇지 않어! 난 그렇지 않대두”
몹시 몸부림올 쳐대는 소녀의 몸짓에 들국화 무더기가 줄기를 꺾고 그 꽃더미들은 꽃다발마냥 나의 머리통 위로 소녀의 얼굴 위로 쓰러져내렸다.
소녀의 갑작스러운 비명이 소름이 돋게끔 처절했올 때, 잠시 고개를 들고 거친 숨결올 다스리던 나의 시야로 들국화 꽃더미 위에 팽개쳐진 그 진한 밤색 안경이 들었다. 소녀는 두 손바닥올 펴 꼬옥 얼굴을 가린 채 그 소름이 돋게끔 강그러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소녀의 아랫도리를 헤집던 손을 멈추고 바삐 뒹굴어, 꼬옥 막은 소녀의 두 손바닥을 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좀 전까지의 무서운 내 가슴속 물 이랑은 차츰 평온한 하늘 끝을 가면서, 먼저 소녀의 그 쌍꺼풀진 아름다운 눈을 보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기실, 어느 것보다 더 성급한 나의 갈원이었다. 나는 잠시 들국화더미 속으로 열린 새파란 하늘을 목이 아프도록 치켜 올려다보면서, 사람은 얼마나 착하게 살아야 되겠는가 하고 엉뚱하게 되뇌었다.
기를 쓰던 소녀의 두 손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두 손은 곧 힘없이 가슴 위로 내려졌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참으로 서러운 소녀의 긴긴 울음이 터졌다.
그 크고 새까만 동공, 그 위로 반달처럼 열려 내린 쌍꺼풀올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하던 나는, 하마터면 큰소리를 지르며 나자빠질 듯 놀랐다.
눈두덩만 앙상하게 솟아 그 깊은 눈자위 속으로 꺼질 대로 꺼져버린 두 눈. 바들바들 떨고 있는 눈꺼풀을 다 덮고 내린 깊디깊은 초록의 그늘. 황혼의 여린 빛살이 들국화 줄기 새로 퍼져와 그 깊은 소녀의 초록 그늘 속으로 고였다.
“저에게 남은 건요, 아니 세상의 제일 뚜렷한 마지막 기억은요, 탱자나무의 진초록색 그것 하나뿐이에요! 전 탱자 숲으로 날아간 빨래를 주으려고 사다리를 탔다가 그 초록색 탱자숲의 창끝 같은 가시에게 죄다 다 뺏겼어요!”
소녀는 온몸을 뒤틀며 몸부림쳤다. 소녀의 울음소리가 비끼는 나의 귓전으로 이제는 다 익은 가을이 따라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잘못했어. 정말! 다시는 안 그럴거야!”
나는 몹시 들먹거리는 소녀의 등을 힘주어 조여안고 몸부림쳤으나 소녀는 아까보다 더 차가웁게 내뱉을 뿐이었다.
“죽어선 꼭 별이 되겠어요. 아주 진한 초록색의 별이 되겠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제일 높은 곳에서 내 눈을 찾을래요!”
소녀의 볼에 몇 번이고 밑불처럼 닳은 나의 볼을 비벼보다가, 그 차디찬 소녀의 손에다 호호 입김을 불어보다가, 아무래도 소녀를 달랠 수 없는 지금 이 가을을 뉘우치며, 나는 이 소녀에게 그리고 먼먼 혜원이에게. 무척 많은 말로 용서를 빌고 있었다.
소녀는 열흘이 넘도록 한 번도 비녀산을 찾지 못했다. 내 방 봉창으로 처음 보는 풀각시가 떨어지던 날 그밤부터 소녀는 이 마을에 없었다.
비녀풀로 만든 풀각시는 봉창 문풍지 틈에 끼워, 소녀가 징검다리를 건너갔올 법한 그 밤올 홀로 새웠던 것이다. 까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이런 생각올 하고 있었다. 소녀에게는 어떻게든 멧새새끼를 구해주었어야 했었고 혜원이에게는 어미쥐를 죽여 미안하다고 나는 조무래기들 집 앞에 이르러, 일일이, 좀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크게 소리쳤다.
“애들 놀저으一 놀저으ㅡ 고기잡으러 가자으一―.”
조무래기들의 대답 소리는 어느 곳에서고 없었다.
“나 잘 때 누가 방귀 꿨었니이? 누가 종다리에서 털 뽑았니이?”
아무 대답 없는 사립문을 돌아서면서 나는 불현듯 울먹이고 있었다. 저 많은 별자리에서 소녀의 초록올 찾기는 아직 이른 것이라고 애써 다짐할 때, 대답 없는 초무래기들의 기계총자리에서 마올의 대낮이 끓었다. 그 초록의 대낮들이―----,
ㅡ1969년
2016년 12월 2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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