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이 4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앞에서 쌀 시장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윤재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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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유례없는 세계 곡물부족현상이 일어났다. 그걸 식자들은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 하는데 곡물가격의 상승을 이르는 말이다. 아이티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는다고 했고 멕시코에선 ‘또띠’(화덕에 구운 빵) 시위도 있었다. 쌀의 나라 필리핀에선 쌀 배급을 하기위해 장사진을 친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엄청나게 오른 사료값 때문에 축산농가들은 경영에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우리가 먹는 주식인 쌀값이 오르지 않은 것은 쌀의 자급이 되기에 가능했다. 그제서야 국가적 식량안보가 강조되었고, 그때 농민들이 주장한 것이 식량자급률 법제화였다. 물론 오래전부터 식량자급률법제화 의견은 다각적으로 제기 되었고 2006년 정부는 법이 아닌 정책목표로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후 2011년에 2015년과 2020년까지의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재설정했는데 여기에는 식량자주율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2.6%로 전 세계에서 꼴찌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굶주리고 있다는 북한도 자급율이 100%가 넘는다는 자료도 있다. 어느 나라가 식량을 다른 나라에 맡겨두고 있겠는가. 식량 자주율이란 국내 생산량과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있는 양을 모두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1979년 노풍(다수확종 쌀) 피해와 다음해 냉해로 쌀이 모자라게 되었다. 당시 신군부는 식량이 모자라 민심이 이반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식량수입에 목숨을 걸었다. 신군부는 미국 쌀 경작자협회와 곡물메이저인 코넬사로 부터 당시 시세보다 3배나 높은 가격으로 필요한 양보다 많게 미국 쌀을 수입했다. 물론 쌀을 파는 회사들의 배짱장사로 울며 겨자먹기를 한 것이다. 이는 돈만 있으면 필요한 양의 식량을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경고를 한 셈이다. 그런데도 어찌된 셈인지 이 나라는 외국에서 식량을 언제든 들여 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형태의 식량 안보 개념은 매우 위험하다. 즉 식량을 자본의 하위에 두고 자본만 있으면 식량은 언제든 어디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천만한 생각인 것이다.
곡물메이저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식량안보’ 개념
곡물이 모자라는 것을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 때문이라고 원인을 찾는다. 물론 어느 지역에 흉년이 들면 거기엔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곡물값이 오르는 주요 원인들은 따로 있다. 바로 거대 곡물메이저들의 자본놀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식량메이저들의 이윤추구야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곡물 60%이상 공급권을 장악한 카길사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2010년 농식품부가 국제곡물엘리베이터를 인수하려다 실패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실패는 곡물메이저들의 견제와 간섭이라고 쉽게 추정 할 수 있다. 한국에 들어가는 곡물가가 견제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이윤을 보장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지 않는가.
곡물 엘리베이터를 장악한 곡물 메이저들은 인류의 기아나 굶주림은 자신들의 이윤을 창출의 기회로 작용한다. 따라서 곡물은 항상 모자라게 운용되는 것이 기업적 측면에서 유리한 것이다. 그 예가 축산업의 촉진이며 고기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여기는 관련 영양학자 등을 동원해 은연중에 고기를 많이 먹도록 유도하고 고기를 많이 먹어야 선진사회인걸로 착각하게 만든다. 고기를 1KG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곡물의 양은 60명이 한 끼 먹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이런 육식의 권장은 1950년대 한국과 일본에 양계산업을 진출시킨 것을 보면 오래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곡물회사들의 사료 판매량이 이 두 나라에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근래에는 바이오 연료가 떠오르고 있다. 바이오 연료는 화석연료의 고갈을 대비한 포석이라고 하지만 화석연료의 고갈이라고 하는 것도 살펴보아야 한다. 대체 에너지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지속적인 개발이 일어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임을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곡물 메이저들은 바이오 연료로 인해 신이 난거다. 무한정의 곡물을 투입할 수 있기에 곡물의 양은 늘 부족하다. 따라서 식량은 최고의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재임이 분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음모는 여러 곳에 도사리고 있다. 식량안보재단은 무엇인가. 들여다보자. 중소규모 곡물 회사들이 재단의 주축이고 참여 학자들은 이론을 생산하는 것 아닌가. 곡물회사들이 이윤을 보장하는 것은 곡물 수입이 많아지는 것이다. 국가 식량안보를 주장하며 나름대로 안전한 식량곡물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데 누가 토를 달고 꼬집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매우 위험하며 자신들의 이윤을 저버리고 국민을 위해 식량을 내어줄 것 같지는 않다.
실례로 서울시 문용린 교육감이 지난 4월초 서울시 학교급식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농진청 관계자를 불러 강연을 시킨 자리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해 학부모들과 농민들의 공분을 샀다.
“농약은 과학이다.” 이 음모적 말 한 마디가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농약은 고분자유기화학의 결정품이며 과학적 조제방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독성의 안전성에는 수많은 이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약은 독성으로 인해 생명체인 벌레나 곰팡이를 죽이는 작용을 한다. 같은 생명체인 인간에게 노출 되어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 분명한데도 과학적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궤변적 이데올로기를 생산 유포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논리의 꼭짓점에는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면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가 한국의 친환경 농업 때문에 농약사용량이 줄면 줄어든 만큼 자신들의 이윤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GMO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이는 제초제의 사용금지는 이윤창출의 가장 큰 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약과 제초제를 맘대로 쓸 수 있는 GAP인증 농산물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런 다국적 기업의 ‘똘만이’들은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전문가, 학자, 관료들이 서로 얽혀 관계를 가지며 먹잇감을 공유한다. 물론 이들의 식량안보타령 뒤에는 다국적 메이져 자본들이 날라리 춤을 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식량주권’을 말하자
비아캄파시나는 식량주권을 제창했다. 농민환경운동가인 피터(PETER M. ROSSET)가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한국의 농민운동가 이경해가 WTO가 농민을 죽인다며 할복한 것을 보고 충격 속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2007년 ‘닐레니 선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자본에 의해 장악된 식량안보라는 개념이 식량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식량주권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다는 개념이다.
지금 거대한 농식품복합 메이저들의 음모는 세계도처에 펼쳐지고 있다. 그들과 함께 이윤을 나누어가지는 세력과 그들의 떡고물을 먹고 사는 똘만이들의 행태를 저지해야 한다.
DDA협상 테이블에도 그들 똘만이들이 있고 FTA, TPP협상장에도 그들의 똘만이들은 점잖게 양복을 입고 무시로 출입하며 자본의 이윤을 확보한다. 식량주권을 무너뜨리고 식량안보타령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자들이 쌀 수입 개방을 외치며 날라리 춤을 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식량안보를 말하지 마라. 분명 식량주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