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대명사 ‘노아’가 보내는 메시지, 사랑
의사들이 갈망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할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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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사진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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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아’는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제시하는 ‘사랑’에 대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노아’의 장면들. 제공=CJ
엔터테인먼트 |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의 구절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시작이며, 진화론을 포함한 과학적 세계관과 대립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주 속에 덩그러니 외로운 생명의 별, 지구의 인류는 우주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제기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
얼마 전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초기 우주
생성 과정에 대한 놀라운 발표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8억 년 전 대폭발(Big Bang) 직후 지금과 같은 우주가 생긴 과정인 ‘우주
인플레이션’(cosmic inflation)에 대한 직접 증거, 즉 중력파의 패턴을 발견한 것입니다. 과학계는 흥분의 도가니이지만, 창조론자들은
빅뱅조차도 창조자의 의지라고 주장합니다. 종교를 과학적인 잣대로 해석하려는 것도 무리지만, 과학을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려는 것 역시 과욕입니다.
종교는 종교로써 이해해야 하고,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 역시 기독교와 과학계의 논쟁이
많습니다. 그중에 노아의 방주에 대한 논란도 빠지지 않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노아’는 새로운 관점에서 이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종교계 인사들과 가진 시사회에서 여러 가지 수정을 제안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관심을 끌고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대한 영화는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에반 올마이티’ 같은 코믹한 영화부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까지 여러 가지 재해석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 ‘노아’에 대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해석은 어떤
것일까요?
영화 ‘노아’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SF적인 요소를 많이 살려 풍성한 볼거리의 판타지 성격이 강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 ‘노아’는 철저히 노아(러셀 크로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창조주의 심판에 대한 영화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는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는 모두 수장되고 그의 가족으로부터 새로운 인류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영화 ‘노아’에서는 모든 인류가 받게
되는 심판에 예외가 없다는 관점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할 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존재이고 방주의 임무가 끝나면 노아를 포함한
가족은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노아에게 인류의 존망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노아는 모든 인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인류의 존망에 대한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우리 인류의 존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 노아에게 보인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 사랑이야말로 인류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라는 것이 영화 ‘노아’의 메시지입니다
빅뱅에서 시작된 사랑
영화
‘노아’의 개봉일, 의사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격진료와 의료 영리화 사업 등을 두고 촉발된 의사들의 파업 사태에 종지부를 찍는
투표가 있었습니다. 2차 파업은 유보됐지만 이번 사태의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 갈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들에 대한 찬반양론,
갑론을박이 난무하지만 의료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개선을 바라는 의사들의 갈등이 핵심입니다. 의대를 들어갈 때 ‘나는 돈을 열심히 벌어야지’
하면서 들어가는 의대생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대부분의 의대 지망생에서 경제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질병과의
싸움, 사람에 대한 봉사 같은 의사에 대한 꿈이 가장 클 텐데 점차 의사가 돼 가면서 느끼는 현실의 괴리에 문제가
시작됩니다.
흉부외과ㆍ산부인과 같은 생명에 직결되는 과목에는 지원이 없고 편하고 수입이 좋은 과에 지원이 몰립니다. 의사들의 사고
방식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의사들을 그 쪽으로 내모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면 수정·보완하는 것도 공론화할 수 있을
겁니다.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가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의사들에게서 치열한 의학의 몰두, 아픈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의사들은 먹고살 만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문제는 먹고살 만하기 위해서 의사로서 기본적인 양심을 지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을 해결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의사들은 철저히 의학적인 기본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구애받지 않고 진료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쪽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가’ 하는 것은 의사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진 의사들이 가득한 그런 사회는 무엇보다 의사들이 갈망하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가 탄생한 빅뱅, 그것이
창조론이든 유물론이든 현재 우주 속에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이 지구상의 인류가 유일합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확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황량하고 공허한 우주에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영화 ‘노아’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의 사명이자
숙제입니다.
<척추전문 나누리서울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