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옥몽(속 금병매) <125>
*여씨와 공씨는 대각사로 이사를 하기위해 하던 일을 정리 하는데,
공매옥은 오랑캐 청년 장수에게서 청혼을 받는다...
님과 헤어지던 그 때가 그립구나
외로운 이내 몸은 수척해 가는데,
미인 박명이 허껏 말이 아니로세
밤마다 별을보며 장탄식을 하누나.
영약도 많다지만 상사병엔 무효라
옛 사랑의 미련을 떨칠 수 없으니
누구를 다시만나 새로운 정 나눌까?
열두 봉 골짝마다 서리서리 닮긴 꿈,
먹구름 휘몰아 치고 돌아갈 날 막연하네.
공매옥의 뒤를 밟아 그의 사는 집을 확인하고 돌아간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다름아닌 오랑캐 달라이 장군의 둘째 아들 금이관(金二官)이었다.
대각사에서 두 모녀 과부 일행이 백화궁주의 설법을 듣고 있을때 그 많은 신도들 중에서도 유독 한눈에 뜨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여금계와 공매옥을 발견하고는 요염하게 보이는 공매옥을 어떻게든 사귀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평소에는 한량들과 어울려 계집이나 꼬시고 오락이나 즐기며 생활하는 것이 전부였던 놈팽이가, 매옥에게 눈독을 들이고는 대각사에서 부터 몰래 뒤를 밟아 따라와서는 어느 집안 계집인지 알아본 후에 첩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오은장네 전당포에서 그집 사정을 수소문해 보니 가난한 과부의 딸이라는 사실과 아직 혼약한 곳이 있다는 소리를 못들어 봤다고 하자 내심 쾌재를 부르며 돌아 갔다.
다시 날이 밝아오자 두 과부네는 그동안 밀렸던 바느질 품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맡은 일을 마처야 대각사로 이사를 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금계 모녀는 바느질을 하면서도 절뚝이 유조의 일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웠다.
매옥이 모녀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머리도 단정히 빗고 화장까지 하고서 일을 하는데 그저 싱글벙글 이었다.
마실나온 이웃 오은장의 마누라가 백화궁주의 설법을 듣지못해 아쉽다며 들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아휴, 정말 아쉽구만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으니, 그 놈의 배는 왜 갑자기 아파가지고 구경도 못가게 만들어 놓았는지, 우리 딸년이 가고 싶다고 얼마나 지랄을 떨었는지 말도 못한다우.
엄마는 왜 배가 아파 가지고 자길 못 데리고 가냐구 성질을 부리는데 누군 안가고 싶었겠나?
나두 아쉽기는 마찬가지 인데 고것도 모르고 난리 용천을 떠니...
그건 그렇고 재미가 있습디까?"
공씨댁이 대각사에서 있었던 일을 묘한 웃음을 섞어가며 상세히 얘기를 해주었다.
"아 글쎄!
그 라마 비구니승인지 도사인지 하는 백화궁주란 자가 한다는 설법이 얼마나 음탕한지, 건장한 중놈이 야릇한 춤을 추고는 비구니를 껴안고 침상에 같이 앉아 좌선(坐禅)을 한다고 하는데, 아이고 별 해괘한 좌선이라 보고 있는 우리가 망칙 스럽더라구.
아미타불이란 주문만 없었다면 누가 그걸 보고 불법이라고 말하겠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불법을 한다고 그런 짖의 좌선을 한다면 무슨 사단이 벌어져도 크게 날거요?
어찌되었던 희한한 구경을 하였다우."
오은장의 마누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다며 아쉬워 하며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돌아갔다.
그가 가고 조금 있다니 또 누가 찾아와 불렀다.
여씨댁이 나가보니 자기는 손씨(孙氏)라는 매파라고 했다.
매파는 남의 중신이나 서주고 소개비를 받아 챙기는 뚜쟁이로 바로 금이관의 부탁을 받고 매옥의 중신을 서기 위하여 찾아 왔던 것이다.
손매파는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하고 앉은뒤 여씨와 공씨댁이 바느질하는 것을 칭찬하더니 본론을 꺼냈다.
"어느 분이 공씨 마님이슈?
중신을 서려 왔수."
공씨댁이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
"이 집에 공씨댁이라고는 나 하난데, 대체 어느 집 사람이 누구 딸을 중매선다는 얘기죠?"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같은 소리냐는 표정이다.
뚜쟁이가 다시 말했다.
"저기 저 색씨는 금년에 나이가 어찌 됐수?
정혼한 집안이 있수?"
"내 딸인데 이제 열 일곱 살이라우.
어려서 왕씨 집안과 혼약을 했는데, 어제서야 난리통에 그집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네요.
그나저나 중매를 서겠다니, 대체 어느 집안이고 사윗감의 나이는 어찌되나요?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셔야 응낙을 하던 말던 할 게 아니겠어요?"
"에구, 인자 이 색씨는 복이 터졌수다!
상대가 보통 대단한 집안이 아니라우.
그 집에 시집가면 비단 옷으로만 치장을 하고 살 것이라우, 또한 평생 가져보지도 못할 금은보화와 온갖 패물로 넘쳐나고 온갖 옥비녀며 금비녀는 머리에 다 꽂아 보기도 힘들거요. 사윗감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스물네살의 훤칠하게 생긴 미남자에 그림같이 생겼다우. 모르긴 몰라도 전생의 좋은 일이 있어 하늘이 미남 미녀를 만나게 맺어준 것 같구려."
공씨가 이야기를 듣고서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대체 어느 집안 사윗감이기에 그렇죠?
우리는 애 아버지도 안계서서 번뜻한 집안도 아니고, 예물을 많이 할 수 있는 형편도 되지않아, 그저 사윗감만 괜찮다면 시집을 보내 걱정거리를 덜 생각이예요.
단지 이 장모 하나 봉양해주면 그걸로 만족 한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집안이지요?"
뚜쟁이 손씨가 빙글빙글 웃으며 뜸을 들였다.
"이 개봉 성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갓집이우.
보잘것 없는 집안 같으면 내가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요?"
그러자 여씨댁도 방 한쪽에서 수를 놓고 있던 매옥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는 집에서 들어온 청혼인지는 몰라도 매옥이 같은 색시를 얻으려면 웬만한 복이 없으면 성사가 안되는 법이죠."
손 뚜쟁이가 다시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요즘같은 세상에는 그저 높은 벼슬아치가 최고 이지요.
그런 권세가를 뒷 배경으로 맞이하고 있다면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지요.
그런 사위만 얻는다면 평생 먹고 입는 것은 걱정 없지 않겠수?"
그러면서 뚜쟁이는 비로소 "사윗감은 금나라 좌독부(左督府)의 달라이 장군의 둘째아들 금이관이라오.
아직 나이가 어려 장군의 직책을 승계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공씨댁은 사윗감이라는 자가 금나라의 오랑캐 청년 장군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겁이 나서 펄쩍 뛰었다.
"아니, 내 금쪽같은 딸을 오랑캐 장군한테 주라구요?
난 또 누구라고, 그런 얘긴 입에 올리지도 마세요!"
공씨댁이 실망한 듯, 고개를 푹 떨군 채 더 이상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뚜쟁이가 끈질기게 다시 설득을 하였다.
"그리 펄쩍 뛰지만 말구 내 얘기를 좀 들어 보시구려, 지금이야 온 천하가 다 오랑캐 세상 아니우?
게다가 머지않아 남방까지 평정하고 나면 중원천지가 다 통일되어 금나라가 될텐데 오랑캐 사윗감이면 어떴수, 그 집안하고 사돈간이 된다면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께 확실합니다.
아! 다른 사람들은 싸들고 독부(督府)를 드나들면서 줄을 잡으려고 야단이며, 심지어 아부하려고 금나라 복장으로 꾸며입고 금나라 관리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는데, 댁들은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옛날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 딱도 하구려?
내새울 것 하나 없는 집안에서 저절로 굴러온 복을 마다한다니 아무리 색씨가 잘났다고 해도 이런 대단한 사윗감을 찾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일 것이유."
~계속해서 12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