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막15:7-9,15)
오늘은 본문을 읽으며, 예수님으로 인해 특별사면을 받은 '바라바'라는 인물에 눈길이 갑니다. 그는 로마의 압제와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로서, 민란을 일으켜 조국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 했던 열심당원의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사형선고를 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자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로 인하여 극적으로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아마 빌라도와 로마인들은 바라바의 석방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바라바는 분명히 반역자였으므로 장차 또 다시 민란을 일으켜 말썽을 일으킬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는 '힘없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로마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 바라바'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바라바'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지음받은 인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모든 죄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마땅히 사형선고대로 집행되어,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바라바'가 바로 우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사랑으로 자유의 몸이 된 '바라바'의 뒷 이야기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새사람이 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또 다른 민란을 도모하며 이전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바라바 이후의 삶의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순간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건지심을 받은 '바라바들'입니다. 이제 이후의 삶은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여 '거듭난 바라바'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혈기로 살아가는 '인간 바라바'로 살아갈 것인지를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이름을 가진 '거듭난 바라바'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이전의 '인간 바라바'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인간 바라바의 혈기가 올라올 때가 종종 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내 안에 심어주신 '진짜 나'! 성령의 본질을 가진 '새사람'이 '진짜 나'임을 믿으며, 내 안에 나를 속이는 '가짜 나'인 '옛사람'이 고개를 쳐들때마다 이미 십자가에 처형시켜 주셨음을 믿으며 내 안의 예수그리스도로 살아가기를 믿음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사랑으로 특별사면을 허락하신 나의 구세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적용>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나를 특별사면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죄로 인해 영원한 사형선고를 받아 영원한 지옥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통당할 수 밖에 없는 자였는데, 주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구원받고 거듭나 당신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젊은 날에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더라면, 천국도 지옥도 모른채... 속절없이 사망으로 가고 있었을 텐데... 주님을 찾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저를 구원하신 주님의 기가 막힌 은혜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날마다 이 값진 은혜를 헛되이 흘려보내는 일이 없도록... 연역하고 간사한 제 영혼을 붙들어주시옵소서. 제가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은혜의 선물이고, 이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도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셔야만 걸어갈 수 있는 길임을 다시한번 절감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붙잡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막15:7-9,15)
오늘은 본문을 읽으며, 예수님으로 인해 특별사면을 받은 '바라바'라는 인물에 눈길이 갑니다. 그는 로마의 압제와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로서, 민란을 일으켜 조국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 했던 열심당원의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사형선고를 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자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로 인하여 극적으로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아마 빌라도와 로마인들은 바라바의 석방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바라바는 분명히 반역자였으므로 장차 또 다시 민란을 일으켜 말썽을 일으킬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는 '힘없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로마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 바라바'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바라바'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지음받은 인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모든 죄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마땅히 사형선고대로 집행되어,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바라바'가 바로 우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사랑으로 자유의 몸이 된 '바라바'의 뒷 이야기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새사람이 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또 다른 민란을 도모하며 이전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바라바 이후의 삶의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순간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건지심을 받은 '바라바들'입니다. 이제 이후의 삶은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여 '거듭난 바라바'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혈기로 살아가는 '인간 바라바'로 살아갈 것인지를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이름을 가진 '거듭난 바라바'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이전의 '인간 바라바'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인간 바라바의 혈기가 올라올 때가 종종 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내 안에 심어주신 '진짜 나'! 성령의 본질을 가진 '새사람'이 '진짜 나'임을 믿으며, 내 안에 나를 속이는 '가짜 나'인 '옛사람'이 고개를 쳐들때마다 이미 십자가에 처형시켜 주셨음을 믿으며 내 안의 예수그리스도로 살아가기를 믿음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사랑으로 특별사면을 허락하신 나의 구세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적용>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나를 특별사면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죄로 인해 영원한 사형선고를 받아 영원한 지옥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통당할 수 밖에 없는 자였는데, 주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구원받고 거듭나 당신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젊은 날에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더라면, 천국도 지옥도 모른채... 속절없이 사망으로 가고 있었을 텐데... 주님을 찾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저를 구원하신 주님의 기가 막힌 은혜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날마다 이 값진 은혜를 헛되이 흘려보내는 일이 없도록... 연역하고 간사한 제 영혼을 붙들어주시옵소서. 제가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은혜의 선물이고, 이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도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셔야만 걸어갈 수 있는 길임을 다시한번 절감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붙잡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