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마냥 환멸과 타락, 착취의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많은 이에게 희망과 기회의 땅이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힘들고 모진 세월 속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간 이웃이 참으로 많고도 많았다.
여느 여름보다 더 뜨거웠다는 1994년 여름. 우리가 그나마 그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서울의 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제비족 생활을 하는 김홍식(한석규 분)과 농고를 졸업하고 상경한 우직한 박춘섭(최민식 분), 여상을 나와 작은 회사의 경리로 일하면서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는 차영속(채시라 분), 독특한 개성을 가진 미술 선생 김인철(백윤식 분)과 그를 사모하는 장옥희(윤미라 분), 제비족 춤 선생인 박만석(김용건 분)과 제자 천호달(김영배 분), 꽃뱀 홍미선(홍진희 분)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서울 달동네 서민들이 겪는 애환을 맛깔나게 그려 냈던 드라마다. 복닥대는 달동네가 서울 어느 곳보다도 정겹고 건강하게 비쳤으니 드라마를 보는 내내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서울은 사람을 변하게 했다. 〈서울의 달〉의 김홍식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초록 물고기〉의 막동이(한석규 분)와 자꾸 겹치는 것을 그래서 막을 수가 없다. 그 둘 모두 돌아가고 싶어 했다. 가난해도 모두가 행복했던 그때로 말이다. 그 그리움이 지금이라고 다를까. 그러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서울의 달〉의 주제가인 〈서울, 이곳은〉을 리메이크한 것은 마땅한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외로움에 길들여진 후로
차라리 혼자가 마음 편한 것을
어쩌면 너는 아직도 이해 못하지
내가 너를 모르는 것처럼
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에 하나
연인 또는 타인뿐인 걸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나의 슬픔을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너
처음으로 난 돌아가야겠어
힘든 건 모두가 다를 게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뿐이야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휴식이란 그런 거니까
내 마음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져
너를 다시 만나면 좋을 거야
처음으로 난 돌아가야겠어
힘든 건 모두가 다를 게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뿐이야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 김순곤 작사, 장철웅 작곡, 〈서울, 이곳은〉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지금, 아무래도 우린 돌아가야겠다.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약한 모습 좀 보이면 어떤가. 언젠가는 돌아올 터인 것을. <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 두 번째 이야기 그대를 듣는다(정재찬, Humanist, 2018)’에서 옮겨 적음 (2019.10.24.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