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는 1882년 일본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 조선으로 진출한 교파 신도 중 교세를 가장 크게 넓혔던 교파이다. 1838년 일본 농촌에 거주하던 평범한 주부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가 나라 현[奈良縣] 덴리[天理]에서 천리왕명(天理王命)이라는 신이 강림하면서 시작된 천리교는 나카야마 미키가 주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자 그녀를 중심으로 신도 집단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현세 이익적인 내용으로 출발했으나 기성 종교의 압박에 대항하여 교의를 정비해 자기 몸은 신에게서 빌린 것임을 알고 욕심을 버림으로써 병 없는 평화 세계에서 살 수 있다고 설법하였다. 조선 포교는 처음에는 교단 본부의 정책적인 차원이 아니라 산하 개별 교회 신자들의 자발적인 포교 노력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천리교의 조선 포교는 1893년 코치현[高知縣] 분교회의 사토미 한지로우[里見治太郞]가 부산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천리교 기관지인『미찌노토모[道の友]』에 따르면 “개정조약이 크게 진척되고 정청군(征淸軍)은 육지와 바다에서 계속 크게 승리를 거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일본 국내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계림으로 포교를 시도하여야 한다.”고 하여 청일전쟁 전후 해외 포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포교 초기에는 조선에 와 살던 일본인 이주자들이 대상이었으나, 점차 조선인에 대한 포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0년대부터는 교단 본부 차원에서의 해외 포교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외국어 학교를 설립해 포교사 양성에 힘쓰는 한편, 이에 부속된 도서관 등을 두어 포교 관계 자료도 수집하였다. 그 결과 1930년대 말 조선에서의 천리교 신도는 일본인 약 4만 명에 조선인 2만 3,000명에 달할 정도였는데 다른 교파보다 특히 조선인 포교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