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이 글을 본 나의 소감...
한마디로...재밌다....
금녀의 벽이라....
암도 여자보고 하지 말라고 안했는데.....
말 그대로 금녀의 영역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슬픈 일이다...
금녀의 성역으로 알려져 있던...
사각의 링에도 여자가 올라간다...
단순히 라운드 걸이 아니라 글러브를 끼고 올라간다.
티브 중계까지 한다....
슬프다...
남자 화장실은 아주 예전부터 아줌마들이 대걸레를 들고 드나들고 있고.. 남자 목욕탕조차 무서운 언니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터키와는 전혀 무관한 ..솔직히 왜 터키인지는 모르겠지만....터키탕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말이다...
대충 상황이 이정도이니 다른 곳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솔직히 조금은 슬픈 느낌이 없지 않아있다...
그리고 조금은 웃기는 느낌도 없지 않아있다,,,,
남녀평등...금녀의 성역을 없애자....
좋은 말이다...
물론 나도 남녀평등에는 동의 한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들을때면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르다...
남녀평등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녀간의 차이마저 무시하고 남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여자도 갈 수 있다...라고 주장하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남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라는 생각을 실제로 실행하는 거도 아니다...
차이와 차별의 차이점을 모두 인정했으면 한다..
그건 단순히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들만이 아니라 마쵸주의에 빠진 멍청한 남자들도 마찬가지일거다...
흠...
뭔 소리를 하는건지...
그러나 난 단언할 수 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페미니스트들이 절대 차별이라고 주장할리없지만....자신들에게 불리한 얘기니까..뭐 페미니스트가 나쁘다는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이라는 동물은 기본적으로 자기 못났다고 말하지않으니까...남자들에게 차별하는 그런 것이지만 그런 이유때문에 금녀의 성역이라는 우스광스런 모습이 되어버린 곳이다.
바로 군대다...
푸하하하...
여군도 있다고?
웃기지 마라...
10자리 군번은 오직 남자만 가질수 있다.
그것도 군대에는 아무런 뜻도 의미도 갖고 있지 읺은 불상한 남자들이 개처럼 끌려갔을때 주어지는 죄수번호가 바로 10자리 군번이다.
물론 그 대가로 아무런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당연히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남자들의 의무일런지도 모르지만...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는 말이쥐....그곳에다 묻어놓고 온 시간에 대한 보상은 남자만 갖을 수 이다....라는 관념속의 그것이 전부여야만 하는걸가?
의무와 권리...?
그가 희생한 만큼의 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권리..?
모성보호법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모성으로서의 의무..의무라는 단어가 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암튼...그것이 개인의 가능성을 일정부분 희생하고 있고 나름대로 사회에 대해 기능을 한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난 뭔소리를 하고 잡은걸까?
분명 세상은 변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도 의미하는 바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된다.
개인으로서 사회에서 성취가능한 것을 안락한 가정과 안녕을 휘해 포기했으니 그만큼의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여자도 사회에서 나름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으니 그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다.....
더 말하면 돌이 날아올것 같구만....
그러나 나 당당히 말한다.
스스로 죄가 없는 이여 나에게 돌을 던져라....
그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상의 권리를 얻어본 적이 없는자...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를 역차별해본적이 없는 자.....
스스로가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해 본적이 없는 자...
그러한 자만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
--------------------- [원본 메세지] ---------------------
1. 주혜란 (1941-) : 보건소장 (1977)
한국 최초의 여성 보건소장 주혜란. 그녀는 서울 출생으로 1975년 고려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76년 7월 충북 청원군 현도면 보건지소장을 역임하고, 1977년 3월 28세의 젊은 여성의 나이로 충북 옥천군 보건소장으로 발령 받았다.
그 당시에는 여자가 시골 보건소장을 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하여 보건보사부에서 발령을 내주지 않았으나, 끈질긴 설득 끝에 보건소장자리를 맡게 되었다. 1978년 3월 경기도 의정부시 보건소장, 1980년 8월 서울특별시 강동구 보건소장, 1981년 3월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건소장, 1991년 8월 서울특별시 강남구 보건소장을 역임하였다. 미군부대 주변에 형성된 윤락가 윤락녀들의 복리 증진과 건강관리는 물론, 에이즈 예방활동을 펼쳐, '윤락녀의 대모', '에이즈의 대모'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8년 현재 <주 크리닉> 원장으로서 미8군 121 후송병원 급만성 질병 자문위원, 미국 국립보건원 소수 민족 AIDS역학 연구위원, 미국무성 워싱톤시 AIDS퇴치 특별 자문위원, 세계 환경기구 보건환경 특별 자문관, 국제 STOP AIDS운동본부 회장, 환경부 지구환경 자문위원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김경임(1948-) : 외무고시 합격자(1978)
한국 최초의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는 김경임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을 졸업하고, 1978년 12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였다. 외무부 최초의 외무고시 출신 여성 직업 외교관으로 출발한 외교부내의 문화통이다. 2001년 3월에 외교통상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임명되어 두 가지의 기록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녀는 문화 외교국장에 임명받기 전 문화 협력 2과장, 주 유네스코 참사관을 역임하였으며, 주 뉴욕 영사, 주 인도 참사관을 거쳐 주 벨기에 구주 연합 참사관으로 근무 했다.
3. 이은숙 (1952-) : 변리사(1978)
한국 최초의 여성 변리사 이은숙은 경남 마산 출생으로 1980년 성심여대 식품영양학과와 화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81년 연세대 법과 대학원 연구과정을 거쳐 1998년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법무대학원 국제통상법무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1978년 제14회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1980년 최초의 여성 변리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93년에 단독 개업을 하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발휘하여 국내 최초로 자비를 들여 의장디자인 관련 DB인 <산업디자인 뱅크>를 천리안에 서비스하고 있고, 각종 디자인관련 법률 정보 제공과 아울러 <변리사님께 의논하세요> 및 <아이디어 기록실> 코너를 마련하여 무료 상담에 응하고 있는 등 직업을 통한 사회봉사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한국여성변리사회 회장, 대한변리사회 상임위원, 대한여성 과학 기술인회 이사,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이사, 전국여성 경영인 총협회 감사, 여성신문사 이사를 역임하였다.
4. 신종희 (1955-) : 필드하키국제심판 (1981)
한국 최초의 여성 필드하키 국제심판은 신정희이다. 그녀는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필드하키를 시작하여 당시 필드하키 명문인 평택여자 종합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선수활동을 하였다. 1981년에 인천체육전문대학을, 1986년에는 경희대학교 체육과학대학을 졸업하였다. 1970년대 불모지에 가까웠던 우리 나라 필드하키계에서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선수로서 활동하였고, 1981년에는 여자로서 결코 쉽지 않은 필드하키 국제심판 자격을 취득하였다. 심판이 된 후 그녀가 최초로 참석한 경기는 1981년 8월 아시아컵 대회였다.
그 후 1986년 국제심판을 은퇴한 이후에도 한국 체육계의 발전을 도모한 결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동안에는 필드하키 해설자로서 큰 활약을 하였고, 그 밖에도 여성체육학회 간사직과 한국 여성스포츠회의 필드하키 종목 이사직, 사무국장직을 역임하였다. 현재 대한하키협회 이사직과 아시아하키협회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기술임원(judge)이나 국제대회 부감독관(technical officer)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5. 피우진 (1956-) : 헬기조종사(1981)
한국 최초의 헬기 여성 조종사는 피우진은 충주여고를 졸업하고, 청주대 체육과를 졸업한 후 6개월동안 교편을 잡았다. 1979년 서울 여군 훈련소에서 6개월간 훈련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해 본격적인 군무를 시작하였고, 2년 후 헬리콥터 조종술을 익히기 위해 26주간의 힘든 훈련을 마치고 조종사가 되었다. 당시 여군 3명이 지원하여 조종사가 되었으나 현역으로는 그녀 한 사람만 남아있다. 1981년 12월, 첫 비행 이후 지금까지 천 여 시간의 비행기록을 가지고 있는 피씨의 임무는 조종사 관리와 작전, 군민 지원이다.
6. 조배숙, 박숙경 : 검사 (1982)
최초의 여성 검사 조배숙, 박숙경은 1951년 이태영씨가 법조계에 발을 디딘 이후 처음 배출된 여성 검사이다. 이로써 여성에게 취약했던 법조계에도 실질적으로 남녀평등이 구현되기 시작했고, 여성진출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조씨가 판사로 전직하면서 여 판사에게 영장 당직을 맡기지 않던 관행이 깨졌고, 대구지법에서 근무하면서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에는 여 판사를 배치하지 않던 관행마저 깨졌다.
그녀는 전북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제 22회 사법시험에 합격, 82년 사법연수원 연수과정(제 12기)을 마친 후 박씨와 나란히 최초의 여성 1호 검사로 서울지방 검찰정으로 임관을 명 받았다. 198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학위를 받고,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수원지방법원 판사, 대구지방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성차별 개선위원, 여성변호사 회장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서초구에 '조배숙 법률사무소'를 개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박씨는 1974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1980년 제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82년 사법연수원 연수과정을 마친(제12기) 후 조씨와 함께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 받았다.
7. 김영정 : 한국여성개발원장 (1983)
최초의 여성 '한국여성개발원'장은 김영정. 그녀는 함흥에서 태어나 1950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 사학 문학석사를 거쳐, 미국 인디아나 대학원에서 역사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이화여대 인문대 사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1979년 대한 여학사협회 회장,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 초대 원장을 역임했으며, 1985년 12대 전국구 의원을 지냈다. <변화와 도전> <한국여성의 현실과 정책> 번역서 <영국 현대사> 등의 저서가 있다.
8. 박신자 : 청소년여자농구대표팀감독 (1983)
여성 최초의 청소년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과 스프링필드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숙명여고 2학년 때 데뷔하여 1959년부터 1967년까지 상업은행 소속 국가대표 농구선수로 활동했고, 1963년 제4회 페루선수권대회에서 동양선수로는 유일하게 '베스트 5'로 뽑혔다. 1967년에는 제5회 세계여자농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어 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했고, 1982년 신용보증기금 창단 감독을 맡아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여성 사령탑의 기록을 세웠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여자농구협회 이사로 활동하였고, 1999년에는 美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헌액되었다. 상훈으로, 국민훈장 석류장과 5.16 민족상 등이 있다.
9. 신미경 : cf감독 (1983)
한국 최초의 여성 CF감독은 신미경. 신씨는 서울예전 방송 연예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 대학원에서 PR광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끊임없이 새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고 촬영과 편집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인 광고 일의 특성 때문에, 숱한 여성 광고인들이 시간과 체력에 밀려 감독입문의 문턱이 높았으나 그녀는 1983년부터 14년째 자기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실적과는 관계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1년짜리 재계약 촉탁으로 일해야 했고, 정규직이 된 뒤에도 성과만큼 직급과 보수를 뒷받침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충무로의 광고 프로덕션에 들어가 조감독부터 시작하여 1983년 감독으로 입봉한 뒤 광고회사 <코래드>에서 10년간 근무했다. 현재 1993년 직원 5명과 함께 <에이비전>이라는 회사를 차린 그녀는 내노라하는 광고감독으로 손꼽힌다. 1996년 그녀가 찍은 광고는 모두 33편이나 되며, 대표작으로 '천원으로 뭘 먹지'로 시작하는 <맥도날드 햄버거>, 남녀 학생이 나와 각기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선경 스마트 학생복>, 여성 패션 <예츠>, 삼성전자의 <신 현모양처> 시리즈 등이있다. 1987년 한국 광고대상 남성 화장품 작품상 부문에서 <피어리스 마스터즈>로 작품상을, 1991년 한국 광고대상 서비스 항공 부문 작품상 부문에서 <아시아나 항공 동경 취항편>으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0. 장옥주 : 고시출신 사무관 (1983)
첫 고시출신 여성 사무관은 장옥주. 그녀는 1981년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동 대학원 석사와 1987년 네덜란드 사회과학대학원 여성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제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녀는 1988년 보건사회부 아동복지과, 가정복지과, 노인복지과 사무관을 거쳐, 1994년 보건사회부 노인복지과 서기관을 지냈으며, 1996년 보건 복지부 기획관리실 법무 담당관으로 활동한 후 1997년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심의관실 복지 지원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 우수 공무원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