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수원 삼성은 선수들의 투표로 1년 임기의 주장을 뽑는다. 송종국(29)은 투표에서 이운재(35)와 김대의(34)를 누르고 2008년 시즌 수원의 주장 완장을 찼다.
일반적으로 주장은 군기반장 등 경기 외적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송종국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가장 중요한 주장의 임무는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11명의 플레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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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국은 2008년 시즌 수원의 완장을 찼다.
사진 한상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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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가 열린 3월 9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기분 좋은 승리로 2008년 시즌 K리그의 시작을 알리려던 수원에 이날 아침 작은 문제가 생겼다. 애초 선발 예정이던 송종국(29)이 갑작스레 담에 걸려 몸 상태가 매우 나빠졌다.
차범근(55) 감독은 고심 끝에 송종국을 선발 명단에서 뺐다. 수원은 양상민(24)-마토(29)-이정수(28)-곽희주(27)로 이어지는 포백으로 대전전을 치렀다.
수원은 브라질 출신 외국인선수 에두(27)의 연속골로 대전을 2-0으로 꺾었다. 그러나 차감독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기긴 했지만 대전의 빠른 공격에 꽤 고전했기 때문이다.
송종국은 “경기 초반 수비에서 허점이 많았다. 공수 간격이 벌어져 고종수에게 계속 침투 패스를 내줬다. 이럴 때는 누구라도 나서서 포백 라인을 끌어올렸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송종국은 일주일 뒤 성남 원정 길에 올랐다. 그로서는 2008년 시즌 첫 번째 경기였다. 그런데 송종국의 위치와 임무가 지난 시즌에 견줘 많이 달라졌다.
포백 라인의 앞 선에서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드리블이 많아졌고 기회가 나면 슈팅도 했다. 경기 도중 손짓, 발짓까지 하며 동료 선수들과 대화를 했다. 수원은 성남과 2-2로 비겼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송종국은 “경기 초반 수비 조직에 문제가 있었다. 빨리 추스르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잘 안됐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송종국에게 “플레이 내용이 많이 달라졌다”고 넌지시 묻자 “차감독께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라고 지시한다”며 주장 완장을 찬 왼팔을 가리켰다. 송종국은 올 시즌 수원의 역대 12번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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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국이 홍명보를 닮고 싶다고 한 이유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조금 다르다.
GETTY IMAGES/Multibits.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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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홍명보 송종국이 생각하는 주장의 구실은 일반적인 틀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 보다는 경기장 안에서 리더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팀이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이를 바로잡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축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동료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 송종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송종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주장인 (홍)명보 형을 보고 팀의 중심을 잡는 주장의 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홍명보(39)와 송종국은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때 묘한 상황에 놓였다. 2001년 1월 지휘봉을 잡은 거스 히딩크(62) 감독이 4-4-2 전형을 들고 나오자 확고했던 홍명보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이 느린 홍명보는 스피드와 대인방어에서 약점을 드러내며 히딩크 감독의 곱지 않은 눈길을 받았다. 홍명보는 SPORTS2.0과의 인터뷰에서 “포백의 중앙 수비수로는 약점이 많았다. 그때 한국축구가 요즘처럼 포백을 썼다면 선수로서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의 10년 후배인 송종국을 중용했다. 송종국은 2001년 2월 8일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에서 열린 모로코전에서 후반 33분 홍명보와 교체 투입돼 히딩크 감독의 믿음을 얻었다.
이후 송종국은 다양한 위치에서 시험 가동되며 국가대표팀의 핵심 전력으로 올라 섰다. 히딩크 감독이 스리백을 본격적으로 굳힌 2001년 11월부터는 중앙 수비를 맡으며 부상 중인 홍명보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1년 11월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로 세네갈과 치른 평가전의 관심은 스리백 복귀를 선언한 수비진에 쏠렸다. 송종국이 가운데 서고 최진철(37)과 이민성(35)이 상대 스트라이커인 엘 하지 디우프(27)와 앙리 카마라(30)를 막았다.
한국은 전반 41분 송종국의 패스가 미드필드에서 끊겨 역습을 허용하며 코너킥을 내줬다. 오른쪽 코너에서 올라온 볼이 카마라의 머리에 맞고 문전으로 흘렀다. 디우프의 오버헤드킥이 빗나가자 달려들던 파페 부바 디오프(30)가 오른발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고 한국은 0-1로 졌다.
코너킥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송종국에겐 세네갈전이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송종국은 “주위에서 (세네갈전 이후) 스리백을 잘 이끌었다며 많은 용기를 줬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스리백의 중앙에서 뛰다 보면 선수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보인다. 그럴 때 선수들의 위치를 바로잡는 리더가 필요한데 그때의 나는 그런 일을 잘 못했다.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선배가 (홍)명보 형이다. 주위에서 내게 ‘잘한다. 잘한다’ 했지만 명보 형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송종국이 주로 스리백의 중앙 수비수로 뛴 세네갈전 이후 10번의 경기에서 2승3무5패 11실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홍명보가 돌아온 2002년 3월 13일 튀니지전부터 한일월드컵 본선 개막 직전까지 치른 8번의 A매치에서 3승4무1패 5실점하며 수비진이 안정됐다.
5실점 가운데 3실점이 한국이 2-3으로 진 2002년 5월 26일 프랑스전 한 경기에서 나왔다. 홍명보는 2002년 3월 13일 튀니지전부터 5경기 연속 무실점의 수비를 이끌었다. 송종국이 ‘주장’ 홍명보를 닮고 싶다고 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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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펠트는 페예노르트 시절 주장 완장을 집어던지고 맨체스터 시티로 떠났다.
GETTY IMAGES/Multibits.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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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폴 보스펠트 송종국은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그해 8월 네덜란드리그의 ‘빅3’로 꼽히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했다. 송종국은 그곳에서 폴 보스펠트(38)를 만났다. 보스펠트는 2002-03시즌 페예노르트의 주장이다. 딕 아드보카트(61) 감독과 관련해 보스펠트를 떠올리는 국내 팬이 적지 않다.
보스펠트는 유로 2004 조별리그 네덜란드-체코전에서 아르옌 로벤(24) 대신 교체 투입됐다가 2-3으로 경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용병술을 썼다며 언론과 팬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송종국은 팬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스펠트를 기억한다. “유럽 클럽의 주장들은 K리그에 비해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 자신의 포지션에서 제 몫을 다하는 정도다. 그런데 보스펠트는 달랐다. 그는 팀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르겠다는 자세였다”고 5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03-04시즌을 앞두고 페예노르트 구단은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2001-02시즌 페예노르트를 UEFA(유럽축구연맹)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2-03시즌에도 28골을 터뜨리며 네덜란드리그 득점 2위에 오른 ‘프리킥의 달인’ 피에르 반 호이동크(39)의 거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터키리그의 페네르바체 이스탄불이 반 호이동크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반 호이동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터키로 가고 싶다”며 언론 플레이를 해 페예노르트 팬들의 반발을 샀다.
반 호이동크를 내놓지 않겠다던 페예노르트 구단이 뜻을 굽혀 이적을 허락하자 이번에는 선수단이 들고일어났다. 베르트 반 마르베이크(56) 감독이 회의 석상에서 구단 경영진과 언성을 높이는 사건이 벌어졌고 약속을 어긴 팀에 실망한 몇몇 베테랑 선수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주장 보스펠트가 앞장섰다.
송종국은 “그때 팀이 참 시끄러웠는데 놀라운 것은 보스펠트의 행동이었다. 반 호이동크가 끝내 이적한다고 하자 보스펠트가 주장 완장을 집어던졌다. 반 호이동크가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나 또한 ‘이적 하지 않았으면’하고 있었다. 보스펠트의 행동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했던 건 주장으로서 팀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스펠트의 우려대로 반 호이동크가 떠난 뒤 페예노르트는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구단의 결정에 실망한 선수들이 잇달아 페예노르트를 떠났다. “주장을 하지 않겠다”며 구단에 맞섰던 보스펠트는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브렛 에머튼(29)은 프리미어리그 블랙번으로 옮겼고 보나벤투르 칼루(30)는 프랑스리그의 오제르 유니폼을 입었다.
구단 경영진과 싸움을 불사했던 반 마르베이크 감독은 1년 뒤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았다.
네덜란드의 <텔레그라프> <스포르트위크> <알게멘 다흐블라드> 등은 “빠져나간 전력에 비해 들어온 선수들이 시원찮다”며 2003-04시즌을 앞둔 페예노르트에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11명의 네덜란드 축구 전문가 가운데 6명이 페예노르트의 시즌 성적을 3위로 예상했고 3명이 4위로 내다봤다. 페예노르트는 2003-04시즌 PSV 에인트호벤과 아약스 암스테르담에 이어 3위를 했다. 이듬해에는 4위로 밀려났다.
‘빅3’ 페예노르트에게 4위는 큰 상처였다. 악재가 겹친 2005년 송종국은 페예노르트에 남아 있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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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국(왼쪽)은 3월 19일 열린 제주전에서 위협적인 드리블로 수원의 첫 골을 도왔다. 이 경기에서 수원은 3-0으로 이겼다.
사진 제공=이남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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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송종국
제주 유나이티드의 알툴 베르날데스(55) 감독은 3월 16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과 성남의 경기를 지켜봤다. 수원과 성남이 K리그의 최강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알툴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지인을 통해 “수원이나 성남이나 제주나 거기서 거기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런 알툴 감독이 유독 수원의 8번 선수에 대해서는 경계령을 내렸다. 송종국의 등번호가 8번이다. 알툴 감독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수원의 8번 선수가 가장 잘했다. 커버플레이를 상당히 잘한다. 그리고 팀을 위해 뛴다. 수원은 8번 선수가 없었다면 성남에게 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원은 3월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컵대회 A조 1라운드에서 알툴 감독이 이끄는 제주를 맞아 변함없이 포백을 세웠다. 그런데 포백의 구성이 성남전과 달랐다. 성남전에서 측면 수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차감독은 포백의 왼쪽에 마토 그리고 오른쪽에 송종국을 배치했다. 중앙 수비는 곽희주와 이정수가 맡았다.
이 경기에서 송종국의 진가가 드러났다. 왼쪽의 마토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쳐 경기 초반 수비에 치중하던 송종국은 전반 중반이 지나면서 공격적으로 나섰다. 전반 29분 터진 수원의 첫 골은 송종국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드리블을 시작한 송종국이 문전에 촘촘히 서 있는 제주 수비수 4명을 제친 뒤 조용형(25)의 태클에 걸려 쓰러졌다. 이때 흘러나온 볼을 박현범(21)이 달려들며 왼발로 차 넣어 제주의 골망을 갈랐다.
송종국의 플레이는 수비에서도 빛났다. 송종국은 후반 5분 역습에 가담한 제주의 외국인선수 히칼딩요(24)의 패스를 끊었다. 반대편의 빠찌(27)에게 볼이 연결됐다면 제주는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경기가 잠시 중단될 때마다 동료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송종국의 움직임은 성남전과 다르지 않았다. 수원은 후반전에 터진 에두와 서동현(23)의 추가골을 더해 제주를 3-0으로 완파했다.
성남전에서 어두웠던 송종국의 얼굴은 제주전이 끝난 뒤 환해졌다. “대전과 치른 개막전에 뛰지 못했는데 중심을 잡아 주는 선수가 없어 경기 초반 조직이 흐트러졌다. 성남전에서도 전반전에는 수비진에 문제가 있었다. 세 번째 경기인 제주전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이같은 흐름을 잘 이어가겠다. (홍)명보 형과 보스펠트에게서 배운 주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올 시즌 수원에서 실천해 볼 생각이다.”
수원에 터를 잡은 지 3년 송종국은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플레이에 욕심을 내고 있다. 송종국은 5골 5도움을 올 시즌 목표로 잡았다. 겨울훈련을 통해 전형에 변화가 있었고 수원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동계훈련을 제대로 치른 덕에 이런 목표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송종국은 골이나 도움을 올렸을 때보다 더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3시즌 동안 나도 모르게 플레이가 수비적으로 바뀌었다. 공격으로 치고 올라가는 후배들의 뒷공간을 메우는 일에 신경을 썼는데 가끔 후배들이 ‘형이 뒤에서 커버를 해 든든하다’는 얘기를 한다. (신)영록이가 최근에 그랬고. 아무튼 그런 말을 하는 후배가 꽤 많다. 그럴 때 기분은 골을 넣었을 때 이상으로 좋다.”
SPORTS2.0 제 97호(발행일 3월 31일) 기사
첫댓글 송주장님 화이팅♡
킹왕짱 !!!!!!!
ㅠㅠㅠㅠㅠㅠㅠㅠㅠ올해는 같이 별 달아요~ !!!
일반인의 생각과 다른가?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 독려하고 수비진의 리더라면 수비조율몫도 있다고 생각했는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