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하느님 뜻을 위한 비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고, 호감이 아니라 실천이다. 이는 이성 사이와 친구 우정도 마찬가지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사랑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 말씀대로 실천할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이 그에게 상을 내리시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랑하셨음을 알게 된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자주 말하는 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느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하느님보다는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이 훨씬 더 크다. 아니다, 이미 죄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죄짓는 거라고 하는 걸 거다.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 조건만 조성되면 저절로 그렇게 돼버리니 말이다.
사랑은 곧 실천이다.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하려고 하지 않으니 안 되는 거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제각각이다. 분열증 환자는 아니지만 선한 결심대로 참 안 된다. 좀 이상한데,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님을 직접 체험한 이들의 기억을 공유한다. 마치 내가 예수님을 보고 대화하며 함께 살았던 거처럼 예수님을 기억한다.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바오로 사도도 그리고 그 이후 전해 들은 예수님을 따라 헌신하고 삶을 봉헌했던 많은 사람들도 그랬다. 이렇게 기억을 공유하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실 것이다.”(요한 14,26)
어렸을 때 만화에서 보면 한 아이 앞에 악마와 천사가 나타나서 교대로 조언한다. 그러던 중 말로는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그가 천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니까 악마가 천사를 막 두들겨 패서 말하지 못하게 한다. 천사는 그저 착하기만 해서 싸울 줄 모르는지 실컷 맞고 그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지금 생각하니 그 작가가 참 제대로 표현한 거 같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 거다. 생각하거나 따져보지 않으면 악마가 끼어들지 못할 테니 말이다. 피 끓는 결심보다 자신의 의지를 기꺼이 성령님께 드리는 게 훨씬 더 좋을 거다. 사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다. “아버지, …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예수님, 말뿐인 줄 알지만 그래도 안 하는 거보다 나으니 말씀드립니다. 제 의지를 주님께 드립니다. 사실 드릴 게 그것밖에 없습니다. 좋은 데에 쓰이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처럼 하느님을 무한히 신뢰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