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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은 2006년 유엔 총회를 계기로 뉴욕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진행했고, 2009년에는 상호 경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각국 정상이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Yekaterinburg)에 모였다. 최초의 브릭(BRIC) 정상회담이기도 한 당시 행사에 참석한 인물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러시아 대통령, 만모한 싱(Manmohan Singh) 인도 총리, 후진타오(Hu Jintao) 중국 주석이었다. 이어 2010년에는 중국이 남아공을 기존 4개국 협의체에 초청했고, 다음 해인 2011년에 제이콥 주마(Jacob Zuma) 남아공 대통령이 중국 싼야(Sanya)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정회원국 대표로 참석함으로써 브릭스(BRICS)의 현재 외양이 갖춰지게 되었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22년에는 아르헨티나와 이란도 브릭스 가입을 정식 신청함에 따라 각국이 협의체의 확대 가능성을 논의하는 중이다.
이 시점에서 생겨나는 의문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아르헨티나가 브릭스 가입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기존 브릭스 회원국들이 장장 30년 이상 지속된 근본적 경제 불안에 시달리며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디폴트 사태를 일으킨 전적도 있는 아르헨티나의 가입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아르헨티나와 브릭스 간 접점을 고려하면 이번 가입 신청이 반드시 무리수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2014년에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C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브라질 포르탈레자(Fortaleza)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여한 바 있다. 그 이후로도 2018년 남아공 정상회담에는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Macri)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그리고 2022년 중국이 주재한 화상 정상회담에는 시진핑(Xi Jinping) 주석의 초청을 받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Alberto Fernández) 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각각 참석했다.
브릭스가 본래 각 대륙에서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신흥국들만이 모이는 협의체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브라질과 함께 남미 대륙에 소재한 아르헨티나의 가입은 이전까지의 기조를 허물어 향후 회원국 추가 확대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 브릭스의 외연 확대가 이론적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라도, 현재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가입을 기존 회원국들이 선뜻 환영해 줄지는 별개의 사안이다.
아르헨티나는 과연 브릭스에 걸맞은 신흥국인가?
라틴아메리카에서 3번째로 큰 경제 규모, 그리고 4,5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1999년에 발족한 20대 경제 대국 협의체로서 세계 경제 규모의 85%, 무역액의 60%, 인구의 3분의 2를 대변하는 G20의 일원이다. 남미 지역에서는 아르헨티나 이외에 멕시코와 브라질이 여기에 가입해 있고, 브릭스 5개 회원국도 모두 G20에 이름을 올렸다. 이 점에서만 보면 아르헨티나가 일견 세계 경제 강국과 긴밀한 경제적 연계성을 지닌 신흥국으로서 브릭스 가입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신흥국으로 널리 분류되는 여타 국가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르헨티나는 2022년 들어 달마다 큰 폭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과 씨름하는 중이다. 일례로 동년 7월부터 9월까지의 아르헨티나의 월간 물가상승률은 각각 7.4%, 7%, 6.7%를 기록했는데, 비록 달마다 해당 수치가 다소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물가 위기를 해소하는 데 역부족이다1). 2022년 9월 기준 아르헨티나의 연간 인플레이션은 83%에 육박한다.
반면 브릭스 회원국의 물가는 아르헨티나에 비해 훨씬 안정된 경향을 보인다. 먼저 파울로 게데스(Paulo Guedes) 브라질 경제부(Ministry of Economy) 장관은 2022년 9월을 기준으로 한 자국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7.17%를 기록했음을 소개하면서, 연말에 이르면 이 수치가 6% 이하로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2). 그리고 같은 기간 중국과 인도, 남아공의 인플레이션도 각각 3.1%, 5.9%, 7.8%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에서는 인플레이션이 13.4%로 높은 수준이 전망되지만, 이 수치도 아르헨티나와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높은 수준의 부채 부담이다. 아르헨티나 통계·인구조사청(INDEC, National Institute for Statistics and Census)이 집계한 외채 규모는 지금까지 꾸준히 늘어나 2,840억 달러(한화 약 408조 원) 언저리까지 도달했고, 이는 인구 1인당 부채 부담이 6,310달러(한화 약 906만 원)에 달한다는 점을 의미한다3). 아르헨티나가 지난 2001년 12월에 이미 1,320억 달러(한화 약 190조 원)에 상당하는 외채를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와 같은 부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4).
아르헨티나 경제를 괴롭히는 여타 문제로는 빈약한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점차 그 정도를 더해가는 빈곤율을 들 수 있다.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아르헨티나의 2022년 경제성장률은 4%에 불과한 반면, 실업률은 최대 9.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2022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공식 통계에 잡히는 빈곤율이 36.5%에 달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전체 인구 10명 중 약 3~4명, 특히 14세 이하 어린이 중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에 있고, 극빈층에 속하는 인구도 530만 명에 이른다. 개인이 아닌 가계를 단위로 하는 INDEC 통계에서도 빈곤 가구 비율은 27.7%, 극빈 가구 비율은 6.8%인 것으로 나타나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5).
이에 반해 브릭스에서 남미 대륙을 대표하는 입지에 있는 브라질은 경제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브라질 경제부는 최근 2022년도 자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21년도 11월에 발표했던 2.1%에서 1.5%로 하향 조정하고 2023년도 성장률 전망은 이전의 전망치인 2.5%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실만을 가지고 4% 성장이 예상되는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에 비해 경제적 우위를 점한다고는 볼 수 없는데, 이는 브라질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7% 수준인 데 반해 아르헨티나의 물가는 연간 두 배 가까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경제적 문제를 내재한 아르헨티나는 브릭스 회원국과 비견되는 신흥국으로 불리기에 다소 모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르헨티나의 가입 신청을 수락함으로써 기존 브릭스 회원국이 얼마나 큰 혜택을 볼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릭스는 과연 아르헨티나를 필요로 하는가?
아르헨티나가 브릭스 가입을 타진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의 일인데, 브릭스의 주요 구성원인 브라질과 중국은 회원국 추가에 비교적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나머지 3개국이 여기에 보이는 시각은 대체로 회의적인 것으로 판단되며6), 아르헨티나 가입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회원국 간 합의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브릭스 확대에 특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는 국가로는 인도를 들 수 있으며, 그 배경에는 창설 16년을 넘어가는 브릭스의 권력 중심이 특정국으로 넘어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인도의 입장이 존재한다7). 인도는 브릭스에 신규 가입하는 국가가 기존 핵심 구성원인 중국과 밀착하게 되면 결국 중국에 더 큰 주도권을 쥐여주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존 브릭스 회원국 모두가 아르헨티나의 가입을 환영하지는 않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은 2022년 6월 투르크메니스탄 아시가바트(Ashgabat)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흥 경제 강국의 모임인 브릭스에 아르헨티나와 이란이 가입하는 안건에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휘말려 있어 브릭스 확장 계획을 논의하는 데 할애할 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게다가 브릭스의 입장에서는 아르헨티나 등 추가 구성원을 확보해 외연을 확대하는 작업보다도 기존 회원국 일부의 경제적 내실을 재차 다지고 상호 교역 규모를 늘리는 것이 더욱 급선무인 것으로 판단된다. 일례로 브릭스라는 명칭을 처음 제안한 당사자인 짐 오닐(Jim O´Neill)은 브릭스의 전신인 브릭이 출범한 직후 10년간 4대 창립 회원국이 거둔 성과가 자신이 예상한 네 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뛰어넘을 정도로 눈부셨던 반면, 이를 뒤이은 10년 동안에는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이들 국가가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20년 전의 원점으로 후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8).
여기에 더해 브릭스가 내놓은 구상이 구체성을 지니지 못해 여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과제로 남아 있다. 브릭스 차원의 계획이 실제로 소정의 성공을 거둔 사례는 IMF와 세계은행으로 대변되는 브레튼우즈(Breton Woods) 체제에 대항한다는 취지에서 2014년에 발족한 신개발은행(NDB, New Development Bank) 정도에 그친다. 신흥국과 개도국의 인프라 및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브릭스 5개국이 창설한 NDB는 지금까지 약 80개 사업에 300억 달러(한화 약 43조 원)를 지원하는 실적을 냈고, 여기서 지원 대상이 된 사업의 대부분은 청정에너지, 도시 개발, 사회 인프라와 관련된 분야인 것으로 나타난다.
상기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추가 회원국 가입 수용에 관한 기존 구성원 간 구체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간의 관심이 브릭스 이외의 사안으로 쏠린 점, 그리고 브릭스 자체적으로 내재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회원국 범위 확대보다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점 등에서 아르헨티나의 브릭스 가입 논의는 단기적으로 그다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브릭스 가입이 과연 시급한 문제인가?
사비노 바카 나르바야(Sabino Vaca Narvaja) 주중 아르헨티나 대사는 2022년 6월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Global Times)와 수행한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가 브릭스 가입을 희망하는 이유는 바로 조건 없는 협력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르바야 대사는 앞으로 무조건적이고 호혜적인 협력을 중심에 둔 균형 잡힌 세계 질서를 건설하는 데 있어 브릭스가 표방하는 협력 기제가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가 브릭스 가입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망한 협의체 가입이 현재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자국 경제에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 관점에서 아르헨티나의 브릭스 가입 성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 경제적 분기점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주요 수출 대상국은 브라질, 베트남, 미국, 중국, 인도, 칠레, 네덜란드, 방글라데시 등이고, 수입 대상국은 중국, 브라질, 미국, 독일, 태국, 이탈리아, 베트남, 인도, 일본 등이다9). 여기서 브릭스 가입에 성공한다고 해서 아르헨티나의 교역 대상국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브라질과 중국이 이미 아르헨티나의 핵심 교역국에 올라 있고, 인도도 수출·입 규모 모두에서 높은 순위를 보이고 있기에, 가입에 실패한다고 가정해도 이들 국가와의 경제적 연계가 약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만약 아르헨티나의 브릭스 가입이 신속하게 처리되지 않는다면, 비회원국인 우루과이와 방글라데시도 가입해 있는 NDB에 대신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022년 6월 개최된 제14차 브릭스 정상회담에 화상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전 세계 인구의 42%, 전 세계 GDP의 24%에 달하는 브릭스에 자국도 가입하고자 한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또한 아르헨티나가 ▲안정성과 책임성을 지닌 식량 공급국이고 ▲바이오 기술과 응용 물류 기술 분야에서 인정받았으며 ▲생산 효율성 신장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여타 국가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라고 소개했다10).
하지만 위 연설에 쓰인 미사여구와는 달리 아르헨티나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못하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2022년 9월 INDEC 통계에 따르면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는 아르헨티나 국민은 총 1,060만 명(총인구 중 36.5%), 기초적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260만 명에 달하고, 빈곤 가구의 비율도 27.7%를 기록해 2021년 하반기에 비해 0.2%p 감소하는 데 그쳤다11).
고도의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무거운 외채 부담과 높아져만 가는 빈곤율이 대변하는 경제적 수렁에 빠진 아르헨티나를 신흥국으로 분류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고, 따라서 모든 회원국이 이미 한 단계 높은 발전 가도에 진입해 있는 브릭스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 현재 브릭스의 입장에서도 정치적 수사와 별개로 아르헨티나 가입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별달리 없다는 점, 그리고 브릭스의 일원이 된다고 해서 저임금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경제적 난관이 해소된다거나 무역 체제의 개편을 비롯한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존재하지 않는 점을 추가로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볼 때 아르헨티나의 브릭스 가입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각주
1) Bianchi, Walter (2022) Argentina inflation, highest in decades, seen at 6.7% in Sept (msn.com)
2) Ayres (2022) Brazil's Guedes says IMF overlooked inflation surge, praises Brazil for 'acting early' (msn.com)
3) Buenos Aires Times | Argentina's external debt equivalent to US$6,310 per person (batimes.com.ar)
4) Tran, Marck (2001) Argentina defaults on debt, Argentina defaults on debt | Interest rates | The Guardian
5) (Buenos Aires Times | Poverty reached 36.5% in the first half of 2022 (batimes.com.ar)
6) https://www.eldiarioar.com/politica/argentina-quiere-unirse-brics-apoyo-china-brasil_1_9088101.html
7) Rezaul H Laskar, Hindustan Times
8)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brics-20-years-of-disappointment-by-jim-o-neill-2021-09
9) ¿Cuáles son los principales socios comerciales de Argentina? (comoimportarenargentina.com.ar)
10) Fernández: “Argentina quiere formar parte de los BRICS” - DangDai - DangDai
11) INDEC: 36,5% de pobreza en Argentina en 2022 (todojuju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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