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발투수로 나선 양훈은 8.2이닝 동안 134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그가 던진 132번째의 공이 오늘 경기의 마지막 투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애매한 타구에 동료의 실수가 겹쳐 공 2개를 더 던졌습니다. 그 다음 아쉽게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완투승은 놓쳤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동료가 경기를 마무리 지었고 우리는 기분 좋게 이겼습니다. 성적표는 1승 2패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번에도 위닝 시리즈를 기록했습니다. 다들 동의 하시죠?
저는 오늘 관중석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그가 오늘 백 서른번째 공을 던지면서 시속 144Km의 스트라이크를 꽃아넣는 모습을 말입니다. 류현진이 선배 송진우의 뒤를, 최근의 김혁민이 정민철의 뒤를 이었다면 오늘의 양훈은 15년 전의 한용덕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튼튼한 하드웨어와 절묘한 제구력, 묵직한 구위로 많은 이닝을 책임져주던 오른손 에이스 말입니다.
저는 오늘 관중석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백 서른 네번째 공이 안타로 연결되고 정민철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올 때, 투수판을 밟은 축발을 꿈쩍도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던 양훈의 모습을 말입니다. 비록 먼 발치에서 봤지만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분명 끝까지 버티면서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우고 마지막 순간에 선배 포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어했을 겁니다. 끝까지 투구판을 밟고 있던 그 다리는 내가 더 던질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로 읽혔습니다.
그래요. 오늘 8회와 9회에 양훈이 던진 건 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운드에서 '혼'을 던졌습니다. 상대의 날카로운 방망이가 그의 공을 조금씩 외야로 보내기 시작했지만, 양훈은 지친 몸을 이끌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렇게 마운드를 지켰습니다. 감동적인 호투입니다. 양훈의 이름을 외치다 목이 쉴 만큼 말입니다.
오늘 경기가 왜 중요했는지, 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게임이었는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딱 24시간 전, 그때 우리가 느꼈던 분노와 억울함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이글스가 왜 트윈스를 꺾어야 하는지 말 안해도 아시겠지요. 양훈은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나와서 홀로 게임을 지배했습니다. 전현태가 피를 흘리며 나뒹굴었던 바로 다음날. 그 중요한 경기에서 마운드를 지켜낸 동료 김혁민처럼, 오늘 양훈도 그렇게 팀을 구했습니다.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이글스에게 반등의 기회를 마련해 준 호투. 시즌 전체를 통해서도 분명한 포인트가 될 소중한 승리입니다.
8회에 홍창화 단장이 그러더군요. "여러분 어제를 생각하세요" 라고요. 그리고 나서 육성응원을 시작했더니 3루를 가득 메운 한화팬들이 목이 갈라져라 고래고래 최강한화를 외쳐댔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의 8회 육성응원이야 뭐 별난 일이 아닙니다만 오늘의 외침은 달랐습니다. 저는 그렇게 한 서린 외침은 처음 봤습니다.
아마 다들 그러셨겠죠. 그동안 우리는 어땠습니까. 리그 최강자였던 빙그레 이글스 시절의 자존심을, 3년 연속 플옵에 진출하고 KS에서 명승부를 벌였던 불과 몇년 전의 기쁨을, 송진우-정민철-구대성-한용덕-문동환이라는 국보급 투수의 위용을, 그리고 장종훈-송지만-김태균으로 이어지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모두 잃고 슬픔에 빠져 있었잖아요. 거기에 몇년 째 꼴찌팀을 응원한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2011년을 살다가 요즘 들어 겨우 자존심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시점에 눈먼 심판들이 우리를 짓밟았습니다. 몸 추스르고 조금씩 일어나려던 우리를 말입니다. 어제의 분노는 그저 한 경기 오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글스 팬들의 그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밤잠을 설친 거란 말입니다.
그 분노를 덜어내려면 오늘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경기가 취소되면 안 됐습니다. 전력이 밀리든, 타자들이 부진하든, 오늘은 무조건 LG와 맞붙어 이겨야 되는 날이었습니다. 상대 선발 박현준이 요즘 잘 던진다지만, 상대가 박현준 아니라 전성기 이상훈 김용수였대도 오늘은 싸워서 이겨야 했습니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야구장에 오셨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독기어린 팬들의 가슴을 풀어준 게 바로 오늘 양훈이 던진 백 서른 네개의 공입니다. 지난번 두산전 완봉도 기특하고 고마웠지만, 오늘 그가 찍은 8.2이닝 5안타 7삼진 1실점 기록이 어느때보다 소중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저는 올 시즌 남은 경기에서 양훈이 어떤 성적을 기록하든. 절대로 그를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끝까지 마운드를 지켜낸 그 뚝심과 용기 하나만으로 저는 양훈의 2011년을 모두 이해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까방권'을 주겠다는 얘깁니다. 그가 프로에 입단할 때, 우리는 정근우 오승환 윤석민 대신 양훈을 뽑았다고 아쉬워했지만, 오늘 마운드에서의 모습 하나로 그는 윤석민보다 더 훌륭합니다. 오늘 이겼으니까 그걸로 됐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글스의 야구는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봐야되는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그저 한 경기 이긴걸로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신대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적어도 오늘은...오늘만큼은...저는 그래야겠습니다
No. 50 속초상고 에이스. 멋있었습니다. 그런 공을 던져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참 막힘이 없이 잘 쓰시네여 매번 읽고있지만 감탄을 합니다그려
요즘 게임보면 뭔가 울컥하는게 있습니다. 전 원래 이성적인 팬이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자꾸 경기를 가슴으로 보게 되네요 ^^
저두요~ 1번선발님 참 좋으세요~ 언제 한 번 직관에서 뵙고 싶네요~^^*
이틀만에 이글보고 눈물이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