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늦은 아침밥을 먹을 때다.
'이번 제사에는 아이들 오지 말라고 해야겠어요. 우리끼리만 제사 지냅시다.'
'그려. 아이들 오지 말라고 전화해.'
며칠 뒤에는 5년 전에 저너머의 세상으로 홀로 여행 떠난 어머니의 기고이다.
아내는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저건너편, 바로 곁에 사는 큰아들네이 걱정되는가 보다. 그리고 동대문구에 사는 작은딸네, 일전에 미국 다녀온 큰딸이 할머니 제사에 참가하려고 잠실로 오는 것이 걱정이 되나 보다.
'코로나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꾸만 확산되는 마당에 사람들의 접촉과 왕래가 두려워서 바깥으로 나가는 게 겁이 나는 요즘이다. 특히나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는 더욱 조심해야 할 터.
나도 어린아이만큼이나 면역력이 약해서 바깥나들이가 겁이 난다.
하나의 예다.
지난 2월 1일.
충남 태안읍에서 사촌동생네 결혼식이 있었다. 나는 결혼식장에 다녀와야 하는지 가지 않아야 하는지 한참이나 고민해야 했다. 집안 어른이라고 해야 큰당숙 사촌동생 나 셋이서 꾸려나가는 3인이다. 다른 친족들은 예외로 하고.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친척인데도 사촌형인 내가 불참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겁이 나는데도 눈 딱 감고는 아내와 함께 태안으로 내려가서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결혼식장에는 예상했던 대로 손님들이 적었고, 대전과 충남 보령에서 대절한 대형버스에는 하객이 극소수였고, 결혼잔치도 금세 끝이 났다. 모두들 자리를 황급히 떠서 되돌아가기에 급급했다.
서울 사는 나.
운동이라고는 고작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석촌호수'로 나가서 한 바퀴 걷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것마저 중단한 채 아파트 바깥으로는 전혀 나가지 않는다. 면역력이 약한 나는 '코로바19'가 겁이 나기에.
사람과의 접촉이 겁이 난다.
내 아파트에서 걸어가면 잠시 뒤에 도착하는 큰아들네가 있다. 제사에 내 큰아들네가 올까봐 겁을 낸다. 생후 20개월이 채 안 되는 외손자. 작은딸 내외가 올까 봐 겁이 난다. 사람 접촉이 겁이 나는 시기에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이번 내 어머니 기고에는 우리 내외, 함께 사는 막내아들 셋이서만 조촐하게 지내야겠다.
나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있다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신자이다. 그런데도 내가 명절 쇠고, 시사 지내고, 제사 지내는 이유는 영혼(신, 귀신 등을 모두 포함)을 보거나 느낀다는 게 아니다. 내가 돌아가신 그 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싶다는 것에 불과하다.
과학적 근거, 철학적 논리, 내 신념에 전혀 맞지 않기에. 따지고 파고 드는 내 성미에는 전혀 맞지 않기에. 귀신들이 존재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제사에는 우리끼리만 지내야겠다.
우주 저너머의 세상 바깥으로 여행 떠난 어머니는 지구라는 작은 별에 사는 아들의 실정을 이해해 주실 게다.
천문학, 우주학을 좋아하는 나는 죽은 사람의 혼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성질이 깐깐한 아들을, 하나뿐인 아들로 남은 나를 어머니는 이해해 주실 게다.
답답하다.
내 방안에서만 갇혀서 지내자니 할일이 없다. 컴퓨터 중독자도 아닌데도 요즘에는 '컴퓨터 중독자'가 되어서 날마다 매시간마다 사이버 세상에 빠졌다. 인터넷 뉴스를 보고, 개인카페에서 남의 글을 읽으며, 나도 잡글 쓰고 남의 글에 어줍잖은 댓글을 단다.
큰며느리의 친정은 대구.
지난 설 연휴기간(1. 24. ~ 1. 27.)에 큰며느리네는 대구에서 설을 보냈다.
지금 대구에서는 난리가 났나 싶다.
'코로나19' 환진자가 대량 발생했다고 방금 전 인터넷 뉴스로 떴다.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대량 전파 확산 중이라고 하며, 신천지교회는 폐쇄했고, 일부 대학병원 응급실도 폐쇄조치했다는 뉴스가 뜬다. 확진자가 더욱 번질까봐 정부당국 의료기관 등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신종 코로바 바이러스'의 명칭에 대해서 생각한다.
지금껏 전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호흡기병이다. 발병 초기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했고, 지금은 '코로나19'로 바꿨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이를 'COVID19'로 부른다. 우리나라는 국민이 알아듣게 쉽게끔 '코로나19'로 정했다.
초기의 용어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긴 명칭을 줄여서 '신코바'라고 쓴 일부 네티즌도 있었다. 축약하는 용어이다. 아쉽게도 '신코바'를 '신코 바'로 잘못 쓰는 사람이 있었다. '신코바'와 '신코 바'는 전혀 다른 용어이다.
착각하고, 잘못한 용어이다.
아직도 '신코 바'를 '신코바'라고 잘못 글 쓰고, 이를 잘못 활용하는 네티즌이 있다는 게 황당하다.
'신코 바'와 '신코바'의 차이가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일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2019년 년말에 발생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용어는 '코로나19'로 통일해야 한다.
새로운 용어정립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엉성한 나를 반성하고자 이런 잡글 길게 쓴다.
나중에 더 보탠다.
2020. 02. 20.
첫댓글 시대가 변하니 풍습도 변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제사를 안지내려고 제기를 갖다 버리는 집도
자꾸 늘어나네요
저역시 기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명절 차례는 지낼작정입니다.
그것은 아니들에게 하나의 추억거리도 만들어주고 풍습을 이어가는
미풍양속도 지킨다는 생각이지요
귀신의 존재여부를 떠나 산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이제 자식들 바쁘면 우리까리 지내는 풍습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 위분들은 음력으로 제사 모시고...
아버지 어머니는 양력으로 모시지요.
훗날 자식들이 음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제사 간소화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 속의 제수용 목기가 욕심납니다.
저한테 좀.. 주소는... xxx.ooo 알았슈?
많이도 축소하고 없앴지요.
앞으로는 거의 사라질 겁니다.
울집도 시아버지 기일날 작년부터
곁에 사는 시동생 내외와 같이 지냅니더
울집 애들십년넘게 참석 했는데
작년부터는 울집과 시동생 내외만 참석해
지내고 있심더
애들 직장생활 시대가 시대인 만큼
두 상 차리든 거 한상으로 음식준ㅂ비 헙니더
예.
잘했습니다.
더욱 간소화시키면 더욱 좋겠지요.
마음으로 그분들을 생각하면 되겠지요.
종가 종손인 제가.. 시향에서 첫번째 제주인 제가 이런 생각 가졌으니....
@곰내 시대 따라서 간편하게 모십시더
울집도 저가 종부임당
어느 설날 신발짝 46족
신발 작 맞추어 나란히나란히
짝맞추는 조카도 세워 뒀을 정도였담니더
그것이 종가이고 종부임당
차례는 우리끼리 지낸다고~~~
올 설에는 저도 몸도 안좋고해서 각자 집에서
설빔하고 점심 때 떡국과 과일 묵자고 미리 연락함
저도 몸도 안좋고 그 많은 음식과 뒷치닥거리
설 쉬고 나면은 병원에 입원할 것 같으니
남편도 그렇게 하자고 하드군예~~~
@하늘과 호수 예.
잘했군요. 그리고 그동안 수고하셨고, 마음고생도 많았군요.
이제는 각자 집에서 알아서 설빔하는 방안으로 정했군요.
저는 오래 전에 각각 알아서 설, 차례 등을 하라고 했지요.
지금은 아주 편하게 합니다.
잘 하셨어요... 다 사라져야 할 문화이지요.
산 사람이 먼저여야 하거든요.
오가지 않는다고
과연 얼마나 안전할지.
모두들 대책없이 전전긍긍하는 분위깁니다.
오늘 제 직장근처에도
한바탕 소동이 일었네요.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세 차례나 소독을 하고 갔습니다.
유기오 난리 이상입니다.
저런...저런 섬뜩했겠네요.
그저 조심이 최고이지요.
참... 그런데.. 베리꽃님 연세가 어떻게 되셔요?
유기오는 1950, 6. 25. 에 발발했는데... 그 당시의 경험담을 말씀하시니??
그럼 저보다 나이 더 많은 누님뻘?
유기오 전에 태어났는데도 기억은 하나도 없시유. ㅠ.ㅠ.ㅠ
제사를 식구끼리만 하신건 잘하신겁니다
그런데 이토록 오래 운동을 안하면 그또한 큰일입니다
새벽일찍 완전무장하고 운동다녀 오세요
요즘 자꾸만 속이 상하네요.
움적거려야 하는데도 바깥에 나가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니...
몸 튼튼한 분이 마냥 부럽네요.
지존 님이야 공기 맑고, 사람 별로 없는 곳에 터를 잡으셨으니 이런 난리에는 마음 느긋하시겠군요.
좋은 조언 고맙습니다.
@곰내 네 선배님 여긴 한적해서 그런걱정 없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나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세월이 변해 갑니다
우리세대도~~변하고~알아야 합니다.
제사라기보다는 내가 그분을 생각한다는 수준이지요.
진짜로 영혼, 혼.. 이런 것이 있다면 이 세상 불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손들이 힘들어하고...
돌아가신 그 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생각하는 것으로
제사의미를 바꿔 봅니다.
제사를 식구끼리만 하시는것두 대단하신 겁니다
점점 제사를 지내지않는 가구들이 무척 많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제사.. 개인의 초상/장례식... 정말로 끔찍하게 거창하대요.
제 어머니는 제사에... 시어머상, 시아버지, 남편(나한테는 아버지)의 상에 조석으로 밥 새로 지어서 절을 하시대요.
각각 2년씩이면 만 6년동안 조석으로 제사 올리대요.!!
제 어머니는 당신이 죽으면 3일만 밥상 올리라고 유언하셨지요.
제가 말을 안 듣고는 100일 밥상에아침.저녁에 절을 했지요. 밥은 아내가 늘 새롭게 짓고.
이것도 지나친 거... 제가 기억했던 어린시절의 제사를 생각하면..
다.. 필요없습니다. 이 세상에 혼을 없습니다.
내가 그 분을 생각하는 기억, 추억일 뿐.
온세상이난리이니 제사를 식구끼리만지내도 이해가 될것같아요.
이제는 제사모습도 상황에따라 변해야할것같아요.
심사숙고하는그모습을 이해할수있슴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종가 제주인 내가 이 지경이니 앞으로는 더욱 간소화되다가 사라지는 형태로 변하겠지요.
과거 왕조.. 왕들은 자신을 신격하려고... 교모하게 백성들에게 이런 제례문화를 강요했을 겁니다.
충효사상을 강조한... 흔적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