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명장면] ⑥제갈공명의 죽음
큰 별은 지면서도 도저한 빛을 뿌리니…
이번 여름에 다시 ‘삼국지’를 읽으며 예전과는 달리 유독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이 있다. 제갈공명의 죽음 장면이다. 그곳에는 죽어 가는 영웅의 비범함이 아니라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사사로움 없이 지혜롭게 정리해 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삼국지’에서의 죽음은 사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점이 있다. 대군 50만을 이끌고 나아가 전멸한다거나 적의 머리를 벤 것이 1만여 급이며, 100만 대군 중 살아 돌아온 자가 몇 안되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일일이 따져 읽는다면 아마도 ‘삼국지’ 한 권당 1억명 정도는 죽어야 마땅하다.
그러니 제갈량(諸葛亮)의 죽음 장면은 단순히 그의 죽음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제갈량이 유비와 뜻을 같이하여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현실화한 뒤, 제4차 북벌을 감행한 때는 이미 천하 대세가 기운 뒤였다. 대세가 기운 궁극적 원인은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죽음을 못 잊어 복수의 일념으로 대세를 그르친 것에 있었다. 천하를 도모하는 자가 형제의 우애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격 상실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천하의 대세가 제반 사회적 관계 총체의 결과가 아니라 영웅들의 노력 여부로 결정 난다는 사관(史觀)이 내재되어 있는 ‘삼국지’이기에 이미 기운 대세는 제갈량의 병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갈량은 이미 죽은 유비의 유지를 받든다. ‘난세를 바로잡고 위태로운 주인을 붙들어 모신’(당의 시인 원진의 시구절) 지 20년, 다시 후주 유선을 보필하며 최후의 전쟁인 북벌을 준비한다. 오장원 전투가 그것인데 이것은 공명의 죽음의 무대로써 기능한다. 이때의 상대는 유명한 사마의(司馬懿). 천하를 통일한 사마염이 그의 손자였다. 마지막 반전의 기회는 제갈량이 더 살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었는데 이때의 장면은 이러하다.
“그대는 나가서 갑옷을 입은 군사 49명에게 각기 검은 깃발을 들게 하고 검은 옷을
입혀서 장막 밖에 둘러서게 하오. 나는 안에서 북두(北斗)께 기도를 올리겠소. 만일 7일 동안 주등(主燈)이 꺼지지 않으면 내가 12년을 더 살 것이요, 등불이 꺼지고 만다면
목숨을 연장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여섯 번째 밤, 장수 위연이 적의 침입을 알리려 황급히 들어오다 그만 주등을
꺼뜨리고 말았다. 공명은 탄식하기를 “죽고 사는 일이 천명에 달린지라, 빌어서 얻을
일이 아니로다.”
이 장면을 읽으며 ‘위연이 실수만 안 했어도’라고 늘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이는
공명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의 첫 장면에 다름 아니다. 공명은 혼신을 다해 역사의 현장에서 떠날 준비를 한다.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쫓을’ 계책을 짜 무사히 후퇴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위연의 배신을 미리 경계하며, 나아가 자신이 글로 남긴 여러 계책들을 부하에게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表文)을 쓴다. 그 표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다.
"성도 신의 집에는 뽕나무 800그루와 밭 15경이 있어 자손의 의식은 넉넉할 것이옵니다. 신이 외방의 임무를 맡아 나와 있는 동안에는 소용된
바를 모두 관에서 받아 쓰며 따로 살림을 늘리지 않았사옵니다. 신이 죽는 날에 안으로 비단 한 조각 없고 밖으로 몇 푼의 재물도 남기지 않은
것은 이로써 폐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자 함이옵니다."
제갈량은 한실의 정통을 세우려는 유비의 대의에 따라
28년 간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현실의 무대에서 사라질 순간에도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보상을 원치 않았으며 죽는 순간에도 그가 천하를 올바르게 도모하겠다는 대의에 따라 생각했고 후일을 부하에게 맡겼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단지 죽음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라지는 퇴사(退師)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역사로부터의 퇴장 역시, 일할 때만큼의 공력(功力)으로 수행하는 뒷모습은 그래서 쓸쓸하지만 아름답다. 천하에 나서는 일만큼이나, 아름답게 퇴장하는 일의 어려움을 공명의 죽음 장면에서 보는 것이다.
(서경석 한양대교수·국문학)
제갈량(諸葛亮)이 성공치 못한 것은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로 인함이니라.
[증산도 道典] |
유상팔백주. 와룡(臥龍) 공명이 출세할 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뽕나무 800주를 둔 일을 말한다.
전쟁터에 나가면서 모든것을 바치지못하고, 뒷일을 생각하는것은 군인의 결사정신과는 위배되는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