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시리즈, 굿 플레이스는 넷플릭스와 NBC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한 미국 시트콤이다. 이 드라마는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흔히 불리는 천국, 지옥을 각각 굿 플레이스, 베드 플레이스로 묘사한다. 문득, 모티브한 주제를 생각하면 작품에 기독교적 사상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위 시리즈에선 다들 궁금해 할 사후세계의 모습을 비교적 가볍고 재치있게 풀어냈다. 그러면서,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볼 철학적인 문제들을 언급하며, 선과 악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엘리너 셸스트롭(크리스틴 벨)
여기서 나오는 크리스틴 벨이 연기한 엘리나 셸스트롭(주인공)을 인상깊게 볼 수 있다. 주연들이 각자 죽은 후, 사후세계를 굿 플레이스로 오게 되는데, 이들은 전생에 굿 플레이스에 올 만한 점수(사후세계에서 사람들의 선행이나 악행을 점수로 매김)에 한참을 못 미친다. 주연 중 1명인 철학교수, 치디 아나곤예(윌리엄 잭슨 하퍼)의 윤리 철학 수업을 중심으로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악할 순 있지만, 악한 인간이 발전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필자가 인상깊게 본 부분은 결정론이 나오는 장면이다.
-결정론(determinism)vs자유의지(free will)
결정론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굿 플레이스에서 엘리너와 치디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전생에도 제대로 사랑을 못 준 엘리너, 사후세계에서 운명의 짝을 만난 격), 이 굿 플레이스의 설계자 마이클이 이들을 일부러 '소울 메이트'로 연결지었다. 이를 엘리너는 설계자 마이클이 자신을 조종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엘리너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은 팔에 달린 줄을 조종당해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게 된 거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치디를 사랑하게 된 건 자신의 선택이 아닌 당신(설계자)이라는 전지전능한 악마(설계자가 설계한 곳, 즉 주연들이 온 굿 플레이스는 악마가 설계한 '배드 플레이스'이다.)가 우릴 붙여놓고 조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결국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수백만 개의 생물학적, 유전적 요소와 사회적 인자로 인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한다. 즉, 인생은 결정론이라 주장한다. 결정론이란 인간의 행동에 결정의 자유가 없다는 이론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떠한 외부 영향에 의한 것이며, 이는 인간의 선택권 밖이다. 그러나 설계자는 둘을 사랑에 빠뜨리려고 한 적은 없었다라고 한다. 서로를 붙여놓고 괴롭히려 했지만, 엘리너가 치디에게 키스한 건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설계자는 엘리너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선택을 했다고 언급한다. 그는 사후 세계를 완벽하게 짜놓으려고 했지만, 항상 엘리너의 예측을 벗어나는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플랜이 계속해서 엇나갔다고 말했다. 결국 인생은 타자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없고 모든 일이 정해져 있다면 세상을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인간의 본성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 마지막으로 굿 플레이스에 간 사람이 천 년전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절대적 선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선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 굉장히 복잡해졌다. 누군가를 위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물을 주었다 하자. 이것은 완벽하게 선하다고 볼 수 없다. 누군가를 위해 물질적인 선물을 주면, 다른 곳에는 이 선물로인한 환경적인 피해를 입어, 결국엔 선한 일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굿 플레이스에서 말하고자는 점은 근본적인 선의 개념이 아니다. 절대적 선과 완벽은 없다. 모든 사람이 모호하고, 불완전하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하고 성장할 수 있다. 실수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성장이고, 이는 곧 실수와 부족함이 무한과 완벽에 근접한 가치를 지니게된다.
첫댓글 천국과 지옥을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이름 붙인 게 특이하더군요. 그리고 탈종교적인 장소로 재구성하였지만, 여전히 종교적 전통을 따르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특히 굿플레이스에 잘못 오게 된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결정론에 주목했는데요, 대개 종교에서는 결정론을, 휴머니즘에서는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경향을 가진답니다. 물론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치면 이러저러한 결과에 이른다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지만, 어떤 선택을 할 지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의지가 지지되는 구조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