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아이
모두가 굶주리고 가난했던 1960년대. 그 시절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쯤 시내버스를 탔다. 그때마다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한 아이와 마 주쳤다. 헤지고 엉성한 치마에 천 조각으로 더덕더덕 기운 윗옷을 입 은 아이는 한동안 못 씻었는지 손등이 다 터서 손가락만 겨우 보였다. 한 손에는 껌 서너 통을 들고 다른 손은 입가에 가져가 호호 불었다. 입김조차도 애절해 보였다. 그 아이는 노래 솜씨가 뛰어났는데, '동백 아가씨'를 '순이 아가씨'로 바꾸어 부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 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면 껌을 안 살 수가 없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어느 날, 유난히 지갑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나 도 땡전 한 푼 없었다. 아이는 껌 열두 통이 담긴 상자를 들고 눈깔사 탕을 맛있게 먹는 다른 아이를 눈이 빠져라 보고 있었다. 종종 각설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씻기고 밥을 먹였던 터라 그 아 이와 함께 집에 갔다. 집에 밥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삶아 놓은 보리쌀 한 그릇에 된장과 김치를 내줬다. 잠시 한눈판 사이 다 먹어 치웠기에 배가 많이 고왔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한 어머니가 아이랑 나를 번갈아 보더니 아이에게 물었다. "껌 사 주랴?" 아이는 고개를 젓고는 껌 한 통을 마루에 놓았다. 그리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다 넘어지고 말았다. 문턱은 아이가 먹은 음식으로 뒤범벅이었다. 어머니는 혀를 찼다. "급히 먹어 체했구나! 손 따게 빨 리 바늘 가져오너라." 헌데 자세히 보니 아이의 입이 아니라 옷 아래에서 음식이 나왔다. 어머니가 멈칫하더니 다정하게 물었다. "아가, 누구랑 사니?" "병든 아부지랑 구두닦이 오빠랑 동생 둘이 요, 엄마는 못 살겠다고 야밤에 도망쳤어요..." 아이는 말끝을 흐리다 다시 이었다. "오늘 제가 껌 한 통 못 판 것처럼 오빠도 비 때문에 구두 한 켤레 못 닦았을 거예요. 오빠랑 같이 먹고 싶어서 주신 밥을 가져가려고 했는 데, 마땅한 데가 없어서 옷 속에 넣었어요." 아이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옆집에서 밥 한 그릇을 빌려 먹이고 목 욕을 시켰다. 해맑은 어린이의 본모습이 피어났다. 어머니는 아이의 껌을 전부 샀다. 아이는 고마웠는지 노래를 부르고 여느 아이처럼 깔 깔 웃었다. 해가 넘어갈 즈음,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입는 옷과 우리 형제가 입 던 옷, 반찬과 쌀 등을 잔뜩 챙겨 나에게 줬다. 그리고 아이를 바래다 주고 오라고 했다.
야산 아래, 염소 집 같은 움막이 아이의 보금자리였다. 그 안에 모여 앉은 식구들은 내가 산타 할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쳐다봤다. 이후 우리 집은 그 집과 가까이 지냈다. 명절에는 그 집에서 온 식구 가 찾아와 놋그릇도 닦아 주고 장작까지 전부 패 줬다. 소박한 정을 나누던 우리는 서로 바삐 지내다 어느 순간부터 점차 멀어졌다. 한겨울 된장과 김치로 밥을 먹을 때면 그 아이가 떠오른다. 해맑게 웃던 그 아이는, 그 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광호 | 대구시 동구
슬기로운 생활
퇴근길, 수레에 상자를 한가득 실은 택배 기사님과 엘리베이터에 같 이 탔다. 우리 집은 꼭대기 층이고, 택배 기사님들 대부분이 가장 위 층서부터 내려오면서 배송하니 이대로 같이 올라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기사님은 상자의 주소를 확인하더니 엘리베이터 버튼의 3분 의 2 정도를 눌렀다. 올라가면서 배달하려는 것이었다. 하필 점심 식사를 거른 날이었다. 가뜩이나 배고픈데 층층마다 멈췄 다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기사님, 보통 내려오면서 배달하지 않나요?"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기사님은 미안한 표정을 지 으며 말했다. "저도 이런저런 방법 다 써 봤는데요, 이렇게 올라가면서 하는 게 제일 낫더라고요." "왜요? 내려오면서 하는 게 훨씬 편 할 거 같은데...." "내려가는 분들은 약속이나 일 때문에 나가는 거라 분주하시겠더라 고요. 엘리베이터가 설 때마다 초조해하시는 게 느껴져요. 그런데 올 라가는 분들은 대부분 일 마치고 들어가시는 거라 여유가 있어요. 그 래서 올라가면서 배송하면 저도 마음이 덜 불편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만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해 놓고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이 종종 있었던 탓이다. 기사님은 자신보다 다른 이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고 우선하며 슬 기롭게 일하고 있었다. 배려와 지혜를 한 수 배운 흐뭇한 퇴근길, 내 손이 먼저 열림 버튼을 눌렀다. 황덕순 | 인천시 서구
인천시 서구 청라국제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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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초록 상록수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공감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쁨, 미소 가득한
한 주 보내세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복된 하루 보내소서 ~^^
오늘도 아름다운 글들을 올려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망실봉님!
1960년대는 우리 국민 태반이 못 먹고 굶주리며 살았으니깐요.
그러던 분들이 이제는 모두가 노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사람마다 본 모습이 있는가 봅니다.
해맑은 아이 눈동자를 그려봅니다.
배려와 지혜,
항상 잣대를 나에게 놓지 말고, 상대에게 먼저 올려 놓은 것이 배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아침에도 눈이 많이 내립니다.
우리들 마음이 저 눈처럼 하얗게 순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한 주 건강하고 힘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향기나는 댓글 주신
바다고동 님 !
감사합니다 ~
대한 추위가 이제사 왔는지
전국이 영하권 날씨입니다 ,,
보온으로 따듯한 하루
미소 가득한 하루
건강한 하루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