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끓인 호박죽
조동원
가을을 많은 사람들은 설렘으로 맞는데 난 피곤함과 기운 없음으로 맞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오후가 되면 너무나도 피곤하고 지쳐서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몸은 지치고 까라지는데 머리는 반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달콤하고 시원한 음식이 자꾸만 스쳐 지나간다. 딸기아이스크림, 차고 시원한 냉장고 속 과일, 제과점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티라미슈 케잌 등등 ...
토요일 오후도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생각하면서 있는데 예전에 엄마가 해 주었던 호박죽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면 내가 직접 해서 먹어야지. 기운없다고 쳐져 있던 몸과 마음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가을에 딴 늙은호박을 두통 얻어다 베란다에 가져다 둔 기억이 났다. 여러 가지 죽을 좋아해서 자주 해 먹는 음식중 하나가 호박죽이다. 당연히 요즘 새대인 딸은 고개를 흔들며 싫다한다. 그래도 가끔 전복이나 새우를 다져서 참기름에 볶다가 충분히 물에 담가두었던 쌀과 함께 끓여 주면 처음 따뜻할 땐 맛있게 먹어 주기한다. 물론 한 번 먹은 뒤 남은 죽을 끝까지 먹는 것은 내 몫이 되지만...
지금까지는 호박죽을 끓일 때 호박을 내가 손질하지 않고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토막 내고 껍질과 속을 정리한 것을 가져다 준 것을 사용했었다. 이번에는 친구집에서 얻어온 호박을 내가 손질하여야 했다. 처음 별 생각없이 부엌칼을 갖다 되었는데 ‘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단단할 수 가없다. 예전에 엄마가 ‘호박을 잡아야지’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 봄, 여름 밥반찬으로 해먹던 초록색의 호박은 부드러워 칼질이 쉬웠는데, 햇살을 충분히 받고 뜨거운 여름을 이겨낸 노란색의 반질반질한 호박은 정말 단단했다. 쉽게 생각했던 처음과는 달리 싱크대에서 식탁으로 옮겨 두 손으로 힘껏 힘을 주어 호박을 잘게 조각내어 속은 버리고 이제는 잘드는 과도를 찾아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한참을 호박과 씨름하고 있는 내 모습을 작은 딸이 보더니 한 소리 한다. 호박죽을 먹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죽집에 가서 사다먹지 엄마처럼 힘들이고 땀 흘리며 직접 하진 않는다고. 그러는 딸에게 예전 외할머니가 내게 해주던 죽 이야기를 한참 해 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딸은 엄마는 죽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고 지금 몸이 힘드니까 외할머니가 보고 싶은 거야라고 한 소리한다.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지금 엄마가, 내 엄마가 옆에 있어서 힘들다고 하소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보고 싶다 우리엄마. 호박을 손질하다 말고 울음 짓던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지금 호박죽을 끓이기 위해 호박을 손질하고 있다고 하니 엄마는 힘들게 그걸 네가 하니 집에 오면 해 줄 텐데 한다. 엄마에게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엄마가 모든 걸 보살펴 줘야하는 어린 딸인 거다. 외손녀인 내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호박을 손질하여 냄비에 넣고 끓이며 물에 불린 찹쌀을 갈고, 냉동실에 얼려 둔 삶은 팥을 꺼내어 죽을 쑤었다. 끓으며 퍽퍽 튀어 오르는 죽을 주걱으로 휘휘 저으면서 엄마, 시어머니 생각을 해본다. 저렇게 단단한 호박을 당신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정성껏 손질해서 우리 집에 가져다주던 두 어머니의 마음이 나를 찡하게 했다.
내 딴에는 알맞게 끓인 죽을 딸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가 해 주던 맛이 아니다. 좀 싱겁고 밋밋하다. 그래도 팔이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지도록 열심히 한 죽이니 많이 먹어야지. 먹고 힘든 몸을 다시 정상으로 회복시켜서 내일 일요일은 기운차게 대청소라도 해야겠다. 이번 주말은 저 죽만을 먹으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맛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니어도 내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든 것이니까. 내년에 다시 끓일 때면 엄마가 해 주던 맛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제50호 문집 편집을 담당한 이두희입니다. 더 나은 글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검토결과를 알려 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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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두번째 문단 2번째 줄; 그래 이거면 내가 직접 해서 먹어야지. -> 이 문장은 작은 따옴표를 붙여야 할 것 같음. '그래 이거면...
0 두번째 문단 5번째 줄; 그래도 가끔 전복이나 새우를 다져서 참기름에 볶다가 충분히 물에 담가두었던 쌀과 함께 끓여 주면 처음 따뜻할 땐 맛있게 먹어 주기한다. -> 그래도 가끔 전복이나 새우를 다져서 참기름에 볶다가 충분히 물에 담가두었던 쌀과 함께 끓이는 전복죽과 새우죽은 곧잘 먹곤 했다.(문장을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음)
'
0 세번째 문단 4번째 줄; 이렇게 단단할 수 가없다. -> 이렇게 단단할 수가 없다.(띄어쓰기)
0 세번째 문단 10번째 줄; 작은 딸이 보더니 한 소리 한다. -> 작은 딸이 보더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는지 중얼거리듯 말한다. (딸이 엄마에게 한 소리 한다고 하면 버릇없는 딸처럼 비추어짐), 그 뒤에도 "한 소리한다"를 "말한다"로 바꾸었으면 좋겠음.
0 그리고 대화체로 되어 있는 부분은 겹따옴표( " ")를 붙여서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