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하늘이 뿌옇다. 황사에다 송화가루까지 날리기 때문이다. 그 곱던 연두빛은 어느새 짙은 녹음으로 변해가고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5월 5일, 아침에 사전 투표를 하고 김제로 향했다. 모악산에 있는 금산사로 가기 위함이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김제를 지나자 금산사로 빠지는 톨게이트가 맞아준다.
금산사 톨게이트를 나와 10여분 달리자 곧 금산사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주차장은 매우 넓었지만 이미 많은 차들이 들어서 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로 보아 경상도 분들이 많이 찾아온 것 같다.
주차장을 벗어나 음식거리를 지나자 연두 빛을 쏟아내는 은행나무가 마치 도열하듯 서있다. 꾸물거리는 날씨로 불안했던 마음이 은행나무 숲길을 걸으며 다시 살아난다. 다른 나무에 비해 은행나무는 잎이 늦게 나와 보드라운 아기 잎을 지니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매표를 하고 금산사로 향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장쾌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금산사로 향하는 왼편에 인공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수량이 꽤 많다. 높이도 있다.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폭포를 배경삼아 셀까를 열심히 찍고 있다.
폭포를 지나 몇 걸음 올라가자 일주문이 다가선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일주문을 바라보았다. 여느 절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 일주문 기둥은 어른 세 명 정도가 양팔을 이어야 할 만큼 부피가 있다.
일주문은 산사로 들어서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의 진리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다.
금산사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지 않고 평탄했다. 찻길과 인도도 잘 구분되어 걸어가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오래된 산사라서 숲도 우거져 있어 따가운 햇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등이 동행하며 숲길을 따라 금산사로 향하고 있다.
산사로 올라가는 길에 군밤과 옥수수 등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했다는 아주머니는 옥수수가 맛이 잘 들었다며 정답게 권한다. 아주머니는 어려운 불경을 틀어놓고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얼굴이 참 편안해 보였다.
"아주머니! 저 소리가 뭔 소리예요" "저도 뭔 소린지 잘 모르는디... 그냥 좋아라! " "그래라 !"
금산사는 다른 산사와 달리 부처님 대신 미륵불이 모셔져 있는 절이다. 미륵(彌勒)은 석가 다음으로 부처가 된다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출현하는 부처님이다.
도랑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금산사로 들어섰다. 모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3층의 미륵전 너머로 모악산 정상이 산사를 굽어보고 있다. 넓은 절 마당에는 보리수 두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다. 잎을 보니 얼핏 뽕나무와 흡사하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득도를 하셨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보리수나무 아래에 잠시 앉아 산사를 가만히 둘러보았다.
먼저 특이한 모양의 미륵전이 눈에 들어온다. 모악산을 병풍삼아 3층 높이로 우뚝 솟아 있다. 생김새로 보아 금산사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왼편으로 대적광전이 위치하여 산사의 균형을 잡고 있다. 그리고 대적광전과 미륵전 사이 언덕 위로 오층 석탑이 말없이 서있다. 참으로 고즈넉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금산사는 백제(600년)때에 창건되었으나 조선의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한다. 그 후 1600년경에 35년 동안 다시 복원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금산사는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본산지로 미륵을 자처했던 백제 견훤이 아들들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일어나 미륵전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외부의 모습과 달리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다. 그곳에는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세분의 미륵입상이 모셔져 있다. 어림짐작 10m는 돼 보였다. 황금빛을 두른 삼존의 미륵은 눈이 휘둥그레 질 만큼 거대하고 존귀한 모습으로 다가 왔다. 아무리 보아도 미륵불과 부처님을 구별할 수가 없다.
금산사를 나오는 길에 주변에 있는 찻집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실내가 참 조용하고 아늑하다. 잣죽과 깨죽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전통차를 팔고 있었다. 그 중 담근 지 4년이 넘었다는 오미자차를 마셔보았다. 진한 맛이 육체의 피로를 확 걷어내며 심신을 편안하게 해 준다.
오월의 신록이 더해가는 어린이날, 김제평야와 맞닿아 있는 금산사들 돌아보니 마음이 한 결 가볍다. 비록 송화 가루가 시계를 뿌옇게 흐려 놓았지만 신록의 푸르름과 산사의 평화로움은 닫혔던 마음을 열어 놓기에 충분했다.
끝내 우려하던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많은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이 비로 하늘도 마음도 깨끗해져 미륵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정토세계가 열리길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