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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한국의 추수감사절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추수 감사절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다음가는 큰 축제일인 추수감사절은 1620년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필그림 청교도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신대륙에서의 정착생활에 물질적으로는 제반 준비가 잘 안되었던 그들은 첫해 겨울에 추위와 질병 기아 때문에 102명중에서 47명이 사망하였다. 그들이 영국에서 가져온 씨앗들은 바위가 많은 미국 땅에 적합하지 않았고 영국에서 쓰던 농사 기술 또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다음해 봄에 그러나 그들은 스콴토(Squanto) 또는 티스콴텀(Tisquantum)이라 불리는 왐파노악(Wampanoag)족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콩, 보리 등을 재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좋은 수확을 거두자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aim Bradford) 식민지 지사는 감사의 날을 정하여서 3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 이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매사소이트(Massasoit)인디언 추장을 포함한 91명의 원주민을 손님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축제를 즐겼다. 그 당시 왐파노악 인디언들은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사슴고기와 사냥물들을 가져갔고, 필그림들에게 크랜베리(Cranberry)와 다른 여러 가지 요리법을 가르쳐 주었다. 훗날 이것이 미국의 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의 정확한 날짜는 남아있지 않지만 9월말부터 11월초로 추정된다. 미국이 독립한 후 의회는 일년에 한 번 온 나라가 축하할 수 있는 감사의 날을 지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통령은 그것을 11월 26일로 정했다. 그 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 때 그것은 11월의 마지막 목요일로 바뀌었다. 1939년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전에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보다 일주일을 앞당겼으나 1941년에 다시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확정되었다. 추수감사절의 잔치 음식은 칠면조를 중심으로 해서 크랜베리소스와 호박파이로 이루어진다. 인디언에게 옥수수는 추수와 가을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옥수수도 추수감사절을 상징하는 식품으로 쓰이는데, 그것은 필그림들이 그 곡식 덕분에 생존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식탁이나 문 앞에 장식으로 쓰인다. 칠면조는 미국 대륙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큰 새이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때에 큰 거위를 구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신대륙에서는 거위 대신에 칠면조를 쓰게 되었다. 칠면조를 오븐에 구울 때는 한 파운드 당 약 20분 정도 걸리는데, 그것은 보통 15 파운드가 더 나가기 때문에 적어도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부터 칠면조를 굽기 시작하면 오후 한두 시가 되어야 다 익는다. 그 동안 식구들은 에그넉(eggnog)이라는 크림과 우유에 계란을 섞어서 달게 만든 음료에 때로는 브랜디를 조금 섞어 마시며, 치즈를 곁들인 비스킷이나 콘칩 같은 것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눈다. 미국도 우리 나라나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그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미식축구 시즌을 즐기기 위해 TV 곁에 모여 앉아 주로 경기 중계를 보면서 식사를 기다리고, 여자들은 부엌을 드나들며 상차리기에 바쁘다. 잔칫상은 대개 점심시간 무렵에 차려지지만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추수감사절 디너(저녁식사)라고 부른다. 크랜베리 소스는 소스라기 보다는 달콤하고 새콤한 잼이나 쳐트니같고 약간 씁쓸한 맛이 있는 터기와 잘 어우러지는 식품으로서 첫 추수감사절부터 지금까지 이 명절의 식탁에는 빠질 수 없이 애용되는 음식이다. 호박은 갈아서 되게 짓이겨서 파이로 구어 후식으로 먹는다. 물론 식탁에는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추수감사절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이다. 추수감사절 축제가 끝나면서 전국적으로 공식적인 큰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전기가 켜지고, 일년동안 꽁꽁 숨어있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면서 그 때부터 근 한달 동안 거리와 집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가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상품들이 진열된다. 매년 추수감사절 날 뉴욕 시에서 메이시 백화점이 주간하는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벌써 75회나 되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퍼레이드는 유럽적 전통에서 나온 것인데, 1920년 많은 메이시 백화점 점원들은 이민 1세 들이 많았다. 그들은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자축하고 추수감사절이라는 미국 특유의 명절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그 날 유럽에서 하던 것 처럼 축제 퍼레이드를 벌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뉴욕 145번 가에서부터 34가까지 카우보이, 기사, 삐에로로 분장하고 풍선, 밴드, 센트럴공원 동물원(Central Park Zoo)에서 빌려온 25마리의 동물들과 거리를 행진하였다. 2만5000명이 넘는 인파가 길거리로 모여들어 퍼레이드는 대 성공을 하였으며, 그 후로부터 오늘까지 메이시 퍼레이드는 계속되고 있다. 올해 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는 장한 일을 하여 전국적 캠페인으로 뽑힌 아이가 퍼레이드 주자로 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리본 자르기에 동참하고는 퍼레이드의 선봉에 설 것이다. 미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퍼레이드를 전국적으로 TV로 보는데, 퍼레이드가 끝나자마자 TV는 미식축구장으로 옮겨져서 축구시즌의 시작의 개막을 알린다. 그 때부터 크리스마스를 지나서 까지 축구 경기는 계속된다. 한편,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을 축하하고 있는 동안에 많은 미국 원주민들은 필그림이 신대륙에 처음 발을 딛었던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이 보이는 콜스언덕에 모여 애도(哀悼)의 날 (National Day of Mourning)기념행사를 한다. 이 행사는 1970년부터 거행되었는데, 그 때 매사추세츠 공동체는 왐파노악 추장인 프랭크 제임스를 초대해서 연설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문 내용에는 미국 원주민들에 대한 억압을 향한 분노가 강력하게 나타나 있음으로, 그것을 행사 전에 미리 알아챈 주체 측은 그의 연설을 취소했다. 이렇게 침묵을 강요당하자 그는 몇몇 원주민들과 그 장소를 박차고 콜스언덕에 올라가 그들만의 정직한 목소리로 애도의 날을 길이 기억하는 행사를 만들었다. 뉴욕 시는 메이시의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맞추어서 관광 패키지를 내어놓고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이 패키지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타임스퀘어 부근의 쉐라튼 호텔에서 4박을 제공하며 $579 (US dollar)로서 저렴한 가격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호텔 왕복 택시요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관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장권, 호텔 세금, 백화점 할인권 등이 포함되어있다. 혹시 우리 나라에서 추수감사절 기간을 전후하여 미국에 사업차 가려는 사람들은 이 패키지를 예약해 놓으면 사업이 끝난 후 뉴욕관광을 손쉽고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관광문의는 인터넷 상의 검색엔진에서 Thanksgiving Day나 New York City, 그 후 Macy's Parade를 들어가면 된다. 추수감사절은 제2의 국민 명절이지만, 그 선호도에 있어서는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는 명절이다. 왜냐하면 선물을 주고받을 쇼핑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모이기 때문이다. 또 명절이 끝난 후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잊었던 친지들에게 안부를 전할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가면서 따듯하고 넉넉한 마음이 되어 한 달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 유래와 의의
인디언들과 함께 즐기는 첫 추수감사절
1. 감사의 어의 구약 히브리어로 '감사'는 toda(히브리어가 안되는 관계로 영어 발음으로 표기합니다. 양해해 주세요.)인데 '감사한다'라는 yada에서 온 말로써 '손을 펴는 것', '공헌', '공경', 특별히 '예배자들의 성가대', '신앙고백' 등의 뜻을 가졌고, 동사 yada는 '손'이라는 뜻의 yad에서 온 말로 '손을 쓰다', '던지다', '경배하다(손을펴서)', '찬양하다', '감사하다' 등의 뜻이 있다. 신약 헬라어로 '감사'는 '엑소모로게오마이'(마11:25, 눅10:21)와 '안도모레오마이' (눅2:38)가 드물 게 나타나는 반면에 '유카리스테오스티아'와 '카리스'는 많다. 예수님은 양식을 얻고 감사했으며(요6:11,23) 기도의 응답을 받고 감사했고(요11:41), 주의 만찬의 뜻을 감사했다.(눅22:17,19)
2. 성경에서의 기원 구약에서 감사에 대한 기록은 가인과 아벨 두 형제의 제사로부터 시작된다. 가인이 드린 농작물과 아벨이 드린 짐승은 농경과 유목생활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노아의 자손들이 홍수가 지난 후 제사를 드렸고, 그후에 야곱이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 모습이 보인다. 출애굽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이것이 제도화되어 추수감사절이 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에서 감사절을 지키기는 1904년부터이다. 제 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한국교회에서도 감사일을 정해 지키기로 하였다.
우선 다른 교파 선교부와 협의하여 그 날짜를 정하기로 하고 우선은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정하여 장로교 단독으로라도 지키기로 하였다.
그후 1914년 각 교파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제 3주일 후 3일(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총회 전도국에 보내 전도사업에 쓰기로 하였다.
그후 수요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 일각에서는 한국농촌의 실정에 맞는 시기인 중추절(추석)을 전후해서 한국교회다운 추수감사절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시행하는 몇몇 교회와 교파도 있다.
유래---------------------------------------
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청교도들과 이미 형식주의적 신앙 생활에 젖은 영국의 국교도들 간에는 많은 신앙의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국왕은 영국의 국교도와는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신앙적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러나 11년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무척 고된 것이었으며, 올바른 신앙인으로 자녀를 교육하기란 더더욱 힘이 들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7년 동안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배를 샀다. 그러나 스피드웰이란 이름을 가진 그 배는 장기간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다른 배를 구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이다. 그러나 이 배 역시 180톤의 작은 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앙의 열정에 불타는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먹을 물과 양식이 부족한 가운데 행해진 65일간의 항해가 험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꿈에 부풀게 했던 신대륙에서의 생활도 생각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한 식량난과 추위, 기후차와 영양 실조들의 원인으로 인해 첫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죽었으며 그 나머지도 질병에 시달렸으므로 항상 일손 부족으로 인한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심한 고통 속에 있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마음 좋은 인디언들이었다.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 주었고,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다음해인 1621년 청교도들은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ㅁ거으며 신대륙에서의 기쁜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다.
그후 162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하였으며,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추수 감사절이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중단하였다. 그 뒤로 추수 감사절은 일부 주에서만 비 공식적으로 지켜지게 되었고, 그 기념일도 주마다 달랐다.
이렇게 폐지되었던 추수 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을 미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하면서부터 였다. 이는 Godey's Lady's Book의 편저자였던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의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건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음을 기념하는 연례적인 절기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진해되고 있었는데, 추수 감사절 하루 동안은 전쟁이 중지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의 카톨릭에는 추수 감사절 주일이 따로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신교와 똑같이 추수 감사절을 지키고 있으며, 성공회 역시 감사 주일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기도서에는 이날 행사에 대한 기도가 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추수 감사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키게 된 것은 1904년부터이다. 처음에는 장로교 단독으로 11월 10일을 추수 감사절로 기념하던 것이 1914년 교파 선교부의 회의 결과에 따라 미국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셋째주 수요일로 변경되어 지켜지게 되었다. 그 후에 추수 감사절은 그 요일이 수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어 11월 셋째주 일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게 되었다. 한편 오늘날 우리 나라의 교계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추석(중추절)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일부 교회와 교파에서는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다.
풍습------------------------------------------------------
추수 감사절의 근본 목적은 한해동안 보살펴 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또한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데 있다. 1621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신대륙에서의 첫 수확을 거두게 된 청교도들은 추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실질적으로 신대륙 생활에 도움을 준 이웃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물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 했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사람들은 추수 감사절에 새 곡물로 만든 음식과 추수 감사절에 관련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추수 감사절과 관련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풍습으로 칠면조 慈綬?먹는 것이 있다. 칠면조 고기를 먹는 풍습은 첫 추수 감사절 때 새사냥을 갔던 사람이 칠면조를 잡아와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날 식탁에 5개의 옥수수를 올려 놓는데, 이는 청교도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할 때 한 사람의 하루 식량으로 배당되었던 옥수수 5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각 가정의 부모는 첫 추수 감사절이 지켜지기까지 고생했던 그들 선조들의 수고를 설명해 주며 자녀들과 함께 그 옥수수를 먹는다.
유럽의 여러나라는 예수의 승천일 전 3일간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는데, 이때 유럽인들은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풍년 기원제를 드리며, 밭으로 나와 보리밭을 걷는 풍습을 행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8월 1일에 추수한 곡식으로 만든 빵을 드리며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며 이날을 기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