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인생 2막을 어떻게 준비하나.”
요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거리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7세. 반면 평균 퇴직 나이는 53세다. 직장에서 은퇴 후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황혼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인생의 3분의 1을 노후로 살아야 하는 셈이다. 그만큼 준비 안된 은퇴는 개인에게 크나큰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20대부터 재정적으로 노후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서울지역 직장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인 노후대비 실태’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노후 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2003년 같은 조사에서 3명만이 ‘그렇다’고 응답한 것에 비해 불과 2년 만에 노후대비 직장인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20~30대의 노후 대비에 대한 의식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20대의 경우 2년 전 19.2%에서 48.9%로, 30대는 31.5%에서 64.8%로 높아졌다. 초고속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해진 고용불안 탓에 젊은 세대마저도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고령화 사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복지를 나름대로 준비해 온 반면 우리의 경우는 이제야 그 심각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탓에 재정 확보가 힘든 정부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경우 이대로 간다면 2047년에는 완전히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부모 부양에 대한 인식 변화도 노후 대비에 대한 초조함에 한몫을 한다. 큰 돈을 쥐고 있으면 몰라도 자녀에게 기대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버리는 게 낫다는 게 요즘 풍조다.
특히 지금의 40~50대는 자신은 헌신적으로 부모를 모셨으나 정작 본인의 노후 때는 자녀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스스로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부르는 자조적인 신조어도 유행한다.
결국 각자가 알아서 준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근래 서점가를 휩쓴 ‘10억 만들기’ 열풍은 불안한 황혼을 벗어나려는 ‘노(老)테크’에 대한 절박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노후자금 예측부터 하라
먼저 은퇴는 당사자에게 경제적 사건이다. 그래서 노후 준비의 첫 단계는 얼마 만큼의 돈이 필요한 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노후 자금은 은퇴 전 소득과 살아온 생활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또 향후 물가 변동 폭 등을 염두에 두면 더욱 복잡해진다.
통계청이 조사한 2005년 1분기 55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소비지출액은 177만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생명이 추정한 노후자금을 보면, 60세에 은퇴해 부부가 20년의 노후생활을 한다고 가정할 때 저소득층은 대략 4억2,480만원(177만원x12개월x20년), 상류층 생활 패턴을 따르면 8억9,360만원이 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이는 예상밖 긴급 자금을 감안하지 않았고 또 물가 상승률이나 금리 등이 지금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직장인 노후 대비 실태’에 따르면 ‘저축으로 모으겠다’는 사람이 37%로 1위였다.
이어 개인연금(21.4%), 국민연금(17.1%), 부동산 임대료(14.5%), 퇴직금(5.3%) 등이었다. 퇴직금 비중은 2년 전 18.6%에 비해 크게 줄었다. 과거와 같이 퇴직금으로는 노후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인지 나이가 들수록 노후대책으로 부동산을 선호했다.
50대의 경우 2년 전 3.5%였던 것이 올해에는 17.2%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8ㆍ31 부동산 대책에서 보듯이 갈수록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관련 세금이 많이 오를 추세로 과도한 부동산 보유가 힘들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사는 집을 이용한 ‘역모기지’를 통해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적극 권장한다. 미국인들은 장기할부(모기지)로 집을 마련하고 은퇴하면 집을 담보로 한 역모기지 노후 자금을 쓴 후 사망할 때 자녀들에게 장례비만 남기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미국식으로 집을 마련해 젊을 때는 주택자금 대출을 갚고 은퇴 후에는 역모기지를 통해 자금을 얻어 쓰는 방법도 은퇴 후 유용한 자금 융통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차분히 저축을 통해 노후 대비를 하는 방안의 성패는 각종 연금상품과 세금감면 상품에 얼마나 합리적으로 투자하느냐에 달렸다고 조언한다.
우선 소득 공제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개인연금이 노후를 대비해 저축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세금을 피할 수 있다면 노후를 위한 저축액은 그만큼 늘어나므로 과세상품에 묶인 돈을 인출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자금운용 방법이라는 얘기다.
또 노후에는 뜻하지 않는 질병에 시달릴 확률이 높아 다양한 보험상품 중 부부에게 맞는 상품을 골라 가입해 둘 것을 권한다.
은퇴 후 인생계획을 세워라
전문가들은 은퇴를 순전히 경제적 사건으로만 취급하는 사고에서 벗어 날 것을 충고한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른다면 미래의 재정계획을 세워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많은 은퇴자들이 멋지고 만족스러운 노후를 영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근시안적으로 은퇴의 재정적 측면에만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삶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들과 스트레스 및 도전적인 과제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은퇴자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은퇴 개념은 여가나 휴식이 아니라 활동과 참여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0년 실시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7.3%를 넘어서는 고령화사회로 이미 진입했고, 2018년엔 65세 이상이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또 2030년이 되면 고령인구가 총인구의 35%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고령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감에 따라 미래는 고령층이 막강한 정치적 힘을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자연히 연령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연령차별주의가 퇴조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은퇴는 과거와 같이 단순히 현실에서 물러나 ‘은둔’하는 삶의 단계가 아니라 맹렬하게 행동하고 참여하는 인생의 단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실시한 은퇴자의 삶에 대한 연구에서도 은퇴 직후 삶의 만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재산이나 건강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관계의 폭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미국인의 삶의 방식과 우리는 일정한 차이가 있겠지만 유의할 만한 대목이다. 성공적으로 늙어가려면 은퇴 이후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많은 연구자들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면 평생 학습의 태도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신적 유연성이 지적 호기심 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노화에 대한 한 가지 고정관념은 노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유연성이 이런 구태의연한 사고에 대한 해결책인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정년 퇴직한 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7.4%의 사람이 자영업 등 다른 사업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다음이 자기 개발(31.3%), 봉사활동(21.6%) 순이었다. 2년 전 자기개발(35.6%)이 가장 많았지만 갈수록 개인 사업 등 보다 활동적인 은퇴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은퇴를 위해서는 사회적 네트워크뿐 아니라 금융 지식도 당연히 필수적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금융지능을 높여라’고 조언한다.
안락한 은퇴 생활의 대비책으로 인플레이션, 금융환경의 변화 등에 적절하게 반응하며 재정습관을 개발하는 것이 소득수준이나 직업보다 중요하다는 충고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많이 쓰고 그릇된 투자를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수준이 높고 고소득 직업을 가진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재정적으로 적당히 준비가 된 사람은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인이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