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下獨酌 其二
李 白
花下一壺酒 獨酌無相親
擧盃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凌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월하독작 2
이 백
꽃 아래 한독 술을 놓고 홀로 안아서 마시노라
잔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그림자 따라 세 사람일세
달이 술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나를 따라 다녀도
달과 그림자 데불고서 함께 즐기는 이 기쁨이여
내 노래하면 달도 거니는 듯 내 춤을 추면 그림자도 따라라
깨이면 함께 즐기는 것을 취하면 모두 흔적이 없이
길이 이 정을 서로 맺아 오늘날 은하에서 또 만나리.
[출처] [공유] 당시선집,[신석정역]|작성자 옥토끼
[작가소개]
이 백
李 白 (701-762) 盛唐의 詩人. 字는 太白, 號는 靑蓮 또 스스로 酒仙翁이라했다.
中宗 長安 元年(701, 신라 효소왕 10년) 사천성에서 났다.
10살에 벌써 詩書에 통하고 百家書를 탐독했다. 고향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뒤에 각지로 방랑, 襄州 漢水로부터 洞庭湖로, 다시 長江으로 내려가
金陵을 거쳐 楊州로 가 호방한 생활을 하고, 35살때에는 太原에 놀고,
산동성 任城에서 孔巢文․韓 準․裵 政․張淑明․陶 沔등과 만나,
이른바 竹溪六逸의 교유를 맺고, 742년 42살 때 翰林院에 들어갔다.
시와 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744년에 실각,
陳留에 이르러 道士가 되고, 8578년에 江南에서 玄宗의 아들 永王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옥에 갇혔다가 이듬해 夜郞에 유배되어 가다가
도중에서 풀렸다. 代宗이 즉위하자 拾遺에 배명, 11월에 當塗에서
62살로 죽었다. 李 白은 自然兒였다. 喜悲哀歡을 그대로 노래에 옮겨,
그의 작품은 한껏 자유분방하여 天衣無縫의 神品이라고 하거니와,
당시 그와 아울러 일컬은 杜 甫가 새로운 詩風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李 白은 漢魏 六朝이래의 詩風을 集大成했다. 모랄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인 杜 甫와는 달리, 현실을 떠난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나라 문화의 爛熟期에 生을 받아, 그 퇴폐적 기풍에
젖은데다가 불우했기 때문에 술과 여자에 憂愁를 잊으려 했다.
詩文集 <李太白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