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한용운은 1879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1905년 불교에 입문했으며,
1918년 월간교양잡지 『유심(唯心)』를 창간하여 편집인과 발행인이 되었다.
1926년 회동회관(滙東會館)에서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김소월과 함께 한국 근대시의 정초를 놓았는데,
시 「떠날 때의 님의 얼굴」은 이 시집에 실려 있다.
김소월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적절한 형식에 도달했다면,
한용운은 불교적 사상에 기반을 둔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한국 근대시에 사상적 깊이를 달성했다고 평가된다.
이 시는
두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연이 비교적 짧은 네 개의 행으로 되어 있으며,
둘째 연은 비교적 호흡이 긴 네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은
동일한 구조의 문장이 반복되는데
모두 상실과 소멸의 이미지를 노래하고 있고,
2연은
상실과 소멸에 대한 시적 자아의 자세와 태도를 드러내는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를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공(空)과 색(色),
혹은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대립적인 이미지의 길항 관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으며,
자비(慈悲)와 적멸(寂滅)의 대립을 표출한 시로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난해한 형이상학적인 접근을 피하고
연시(戀詩)로 이해한다면,
떠나가는 님과 그에 대한 시적 자아의 태도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있는 시들이
대체로 연시의 형식을 지니고 있기에
연애시적 관점에서 그의 시에 접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연은
소멸과 상실의 아름다움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꽃은 떨어질 때 그 향기가 아름답고,
해는 질 때의 빛이 아름다우며,
님은 떠날 때의 얼굴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행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라는 구절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 구절 또한 상실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표출한 구절로 이해할 수 있다.
논자들은 ‘목마친’을 ‘목마른’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기쁨이나 설움 따위의 감정이 북받쳐 솟아올라 그 기운이 목에 엉기어 막히다’는 뜻을 지닌
‘목맺힌’(‘목멘’의 잘못)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후자의 해석이 좀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데,
‘목멘’의 뜻으로 해석할 때,
나머지 3행의 진술과 유사하게 노래의 소멸과 종결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의 1연은
세상의 삼라만상이 모두 소멸하거나 상실할 때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소멸과 상실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 그 자체를 말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것을 대하는 주체의 심리적 태도에서 생성되는 가치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더 이상 자신과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
대상은 새삼스럽게 아름답게 평가되고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이 시의 1연은 바로 이러한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2연은
상실과 소멸에 대하는 시적 자아의 태도를 서술하고 있다.
첫째 행에서는
눈앞에서 사라졌기에 상상을 통해서 밖에 님을 만날 수 없는데,
그러한 상상으로 떠올린 님의 얼굴이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울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행에서는
떠날 당시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눈에 새겨두겠다고 다짐한다.
『벽암록』에서 “마음과 눈이 서로 비춘다(심안상조(心眼相照))”라고 했듯이,
여기서 ‘눈’은 ‘마음’과 다르지 않는데,
『님의 침묵』의 전체적인 기조가 그렇듯이,
님의 부재에 대한 태도로 망각이나 포기가 아니라
각인(刻印)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구절들이다.
셋째 행은
떠난 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별한 님을 사랑하는 방식은
슬픔을 통한 것임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넷째 행에서는
님의 영상마저 영원히
‘눈(마음)’을 떠난다면 슬픔보다 더한 고통이 따를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러한 고백은 님의 얼굴을 영원히 마음속에 각인시켜 놓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다.
이 시는 연시의 형식을 통해
이별한 님에 대한 감회와
님과 이별한 후의 변치 않는 사랑의 태도를 고백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시적 자아는 대상의 소멸과 상실이 대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가치 있게 한다는 이치를 설파한다.
그리고 2연에서는
부재하는 님을 마음속에 각인시켜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님의 떠날 때의 어여쁜 얼골을 나의 눈에 새기겄습니다.”
한용운 시인은 「님의 침묵」에서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님이 떠나가는 것은 님의 의지이지만,
그를 보내거나 보내지 않는 것은 주체의 의지에 속하는 문제이다.
님의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님을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마음속에 영원히 그 영상을 새겨놓을 수 있다면,
님은 시적 자아와 함께 있게 된다.
님의 부재를 님의 현존(現存)으로 바꾸는 마법이
곧 “님의 떠날 때의 어여쁜 얼골을 나의 눈에 새기”는 각인(刻印)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