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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 제목 | 내용 |
| 報告 1932 | 겉표지 |
| 報告 1932 | 속표지 |
| 目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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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朝鲜 外金剛(集仙峯及び世尊峯登攀) | 금강산의 개요, 일정과 개념도 및 ‘집선봉 주봉(1,351m)’, ‘세존봉(1,160m)’, ‘동북릉 S2봉’, ‘동북릉 S1봉’, ‘동북릉 S3봉 이상’을 제목으로 등반 기록을 작성 |
25 | 記錄 | 1931. 11~1932. 11 등반기록 |
27 | Ⅰ. 北海道及東北地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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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Ⅱ. 上信越地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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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Ⅲ. 富上山及び南アルブス附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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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Ⅳ. 後立山·立山·飯附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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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Ⅴ. 槍·穂高附近 A.積雪期 B.夏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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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Ⅵ. 朝鮮地方 1. 金剛山毘盧峰越へ 8月, 2. 外金剛集仙峰附近 9月 | 8월의 금강산 비로봉 등산과 9월의 집선봉 등반(‘朝鲜 外金剛’의 기록을 말함) |
78 | 寫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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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集仙峯束北楼 S2. | 小川(T. Ogawa) 집선봉 동북릉 S2 경관 |
| 集仙峯東北枝 S5, S6 S7 | 桑田(E.Kuwata) 집선봉 동북릉 S5, 6, 7 경관 |
| 谷川岳南ノ耳 | 田口(I. Taguechi) |
| 明神岳最南峯 | 小川(T. Ogawa) |
| 圖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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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集仙峯群概念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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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谷川岳一ノ倉概念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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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部員名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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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山の会々員名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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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강산 비로봉을 넘어
1932년 8월의 금강산 비로봉 등반은 기타노(北野) 외 4명으로 비로봉을 올랐고 정찰 등반 성격을 내포한 등반이었던 듯하며 일정은 아래와 같다.
날짜 | 일정 | 세부 일정 |
8월 20일 | 원산-장전-온정리 | 원산-장전간은 열차 그리고 온정리까지는 자동차로 이동 |
8월 21일 | 온정리(7.30)-신계사-구룡연(11.00-11.30)-비로봉(15.30)-장안사(19.30) | 비로봉 정상에는 천막을 친 노점이 있을 뿐이었고 정상 아래쪽에 산장을 짓고 있었다. 장안사 도착 후 여관에 숙박 |
8월 22일 | 장안사-철원-서울 | 장안사에서 전철을 이용 철원에서 환승하여 저녁에 서울 도착 |
2. 외금강 집선봉 부근
■ 조선 외금강(집선봉과 세존봉 등반)
원정대는 조선의 산이 홋카이도(北海道)나 대만에 산들에 비해 암석미가 뛰어난 미등반의 산봉우리가 많은데, 그 중에 금강산의 암봉을 대상지로 하였고 사전 자료로 오다이라(大平晟)의 조선금강산(山岳 제19년 2호) 이이야마 다츠오(飯山達雄)와 시모데 시게오씨(下出繁雄)의 1월의 비로봉(朝鮮山岳1)을 참고하였으나 암벽등반에 참고할만한 내용이 없어 연전에 암벽등반 영화 촬영 목적으로 금강산을 찾았던 가와카미 요시오(河上吉雄)、카가미 요시유키(各務良幸) 및 조선산악회의 시모데와 이이야마 등으로부터 직접 만나서 통해 들은 사실이 보다 나은 정보가 되었다고 하며, 암봉이 뛰어난 외금강의 집선봉을 대상으로 동석동에 캠프사이트를 정하고 방사상(放射狀) 등반을 위하여 먼저 산정에 올라 등반대상지를 개괄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맞춰 등반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금강산까지 대략의 일정을 보면, 8월 중순을 지나 호타카다케(穂高岳) 등반에서 올라와 원정 준비를 마치고 선편으로 대한해협을 건너 8월 23일 아침 서울에 도착하였다. 당일 식료품을 구입하고 조선산악회를 방문한 후 저녁때 동해북부선을 이용 8월 24일 장전에 도착하여 차량을 이용 온정리 영양관에 숙박하였다.
8월 25일 순사부장 쿠니모토(國本)의 도움으로 짐을 옮길 인부를 구한 후 초가을의 맑은 갠 하늘의 집선봉과 채하봉을 목표로 출발하였으나 이내 날씨는 흐려졌고 인부 3명과 구니시호(國監)를 선두로 극락현으로 향해가다 신계사에 도착하였는데, 관음연봉의 기이한 암봉을 배경으로 화려한 채색의 사찰과 흰 옷을 입은 조선인에게서 이국적 풍경을 느꼈다고 한다. 신계사에서 서쪽으로 보운암을 거쳐 비구니 사찰인 법기암에 도착하여 식혜를 대접받고는 위치가 등반 캠프를 대신할 수 있어 쿠니모토에게 숙박을 할 수 있는지 의뢰하고 동석동으로 들어가 동북릉과 1,351m봉의 능선으로 둘러쌓인 계곡가에 캠프사이트를 정하였다. 인부 중 17세의 박봉서(朴鳳瑞)만 취사겸 잡일을 도우며 통역을 위해 2주간 함께 체류하였다.
明神岳 最南峯東面, 小川(T. Ogawa)
금강산 원정이 있기 전에 7~8월 호타카다케(穗高岳) 등지에서 능선종주와 암벽등반을 하였는데, 7월 31일 사진의 묘징다케(明神岳) 최남봉동면 암벽등반은 약 400미정도로 오버행이 많으며 화산암으로 부석이 많아 낙석의 위험이 있는 암장이다.
“두 번째 오버행에서 나무가 붙은 짧은 암벽을 올라 왼쪽 린네(Rinne) 아래로 들어선다.(12.00). 니시호타카다케(西穗高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바위로, 예상한 바와 같이 매우 약한 100여 미터의 린네 중에 이 등반 중 가장 나쁜 곳이었다. 이윽고 린네 도중에서, 오른쪽으로 풀이 자라는 리페(Rippe)로 옮겨, 이것을 올라 리페가 끝나는 정상 직하의 벽을 오른쪽으로 두고 나아가 마지막으로 10미터 정도의 리스(Riss)를 올라 최남봉의 정상에 섰다.(3.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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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강점기 금강산 등반기록은 이전글 「1930년을 전후한 근대등반 초기의 금강산 등반 기록과 이즈미 세이치의 등반 기의 표 <금강산 등반기록>을 참조 바란다.
2) 오가와 도키오(小川登喜男, 1908~1949) 일본의 산악인으로 도쿄도 출신이다. 도쿄고등학교(구제), 토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 산악부에 속해 있으며 스키 등반으로 蔵王, 八幡平에서 활동하였고 도쿄대학(東大)에서는 谷川岳一之倉沢, 穂高岳 屏風岩, 劍岳 설릉(雪陵) 등을 초등반했다. 폐결핵으로 요절해 오래도록 그 등반의 위업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호쿠제국대학 시절에 남긴 일기의 정밀조사에 의해 최근 전기가 출판되어 쇼와 시대의 천재 산악인이라는 평을 듣기까지 했다. -ja.wikipedia.org/wiki/小川登喜男-キャッシ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