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한말 유원표와 박은식 같은 학자가 숭실(崇實), 곧 실을 숭상한다는 주장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학 이름에 대해 사례를 들었다.
잠시 우리나라 대학 이름을 대충 훑어보자. 서울대학교는 해방후 일제시기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여러 전문대학을 합쳐서 만들었다. 서울을 학교이름으로 사용하였으니 재미없는 이름이다. 약칭도 없다. 서대, 울대.. 모두 재미없기에 약칭이 없을 듯하다. 일제시기 경성제대의 약칭은 성대였다. 일본의 제국대학 차원에서는 교토대학만이 '京大'이고 동경대는 '東大'이니 경성제대로 '城大'라고 했다. 그밖에 전국의 국립대학은 대체로 해당 지자체 이름을 쓴다.
사립은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일제시기부터 있었던 학교는 과거전통을 잇게 되고 새로운 학교는 이념이라든가 건학과정과 관련된, 또는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고려하여 작성한다.
연세대는 잘 알듯이 연희전문과 세브란스의전이 합쳤다. 세브란스(Severance)가 특별한 뜻을 가진듯 하지만 병원 설립에 기여한 미국 부호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를 상징하는 한자 世를 넣어서 만들었다. 고려대는 보성전문을 해방후 이름을 바꾸었는데 김성수가 우리나라 국호가 '고려'가 되리라 생각하고 먼저 그 이름을 땄다고 한다. 결국 국호와는 달랐지만 영어명칭을 'Korea'라고 함으로써 아쉬움을 달래는 듯하다. 대신 코리아대학이라는 농담을 듣게 된다. 그밖에 역대 나라 이름, 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이름 동국, 단국, 그리고 건국이 있고, 국민이라는 이름도 비슷한 범주로 볼 수 있다. 또한 서울을 상징하는 한양, 한성, 서경 등의 이름도 있다.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은 인하대학... 인천과 하와이를 결합했다고 한다. 인천은 지역명이고 하와이는 설립자금을 하와이 교민들이 모았다고 해서 그를 상징하는 글자를 넣었다. 왜 荷 자를 썼을까? 약간은 멋을 부린 글자를 택한 듯하다. 숭실대학이 박은식 같은 분이 강조했던 숭실에서 나온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튼 대학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도 되고, 박은식이 주장한 숭실의 의미에 대해 새겨보는 글이어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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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표와 박은식, 숭실(崇實)의 메시지(다산연구소, 노관범 교수)
우리나라 대학 이름에는 나라 이름과 지역 이름이 많다. 나라 이름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조선’ 등이 있다. 별칭까지 포함하면 ‘동국’과 ‘단국’도 넣을 수 있겠다. 지역 이름의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대개는 ‘서울’, ‘수원’, ‘강원’, ‘제주’ 등등 시·도 지자체 이름이다. 이색적인 이름으로 ‘서강’과 ‘인하’가 있다. 서강은 서울을 흐르는 한강 삼강(三江)의 하나인데 한강·용산강과 달리 대학 이름으로 진입했다.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가 결합한 신조어인데 옛날 같으면 인하 대신 인포라 했을지 모른다. 현순 목사의 『포와유람기』에서 보듯 하와이의 옛날 한자 이름은 포와였다. 아울러 ‘아주’라는 이름도 있다. 옛날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각각 아주, 구주, 비주, 미주라고 했다. 지구 대륙을 대학 교명으로 취한 사례는 한국에서 보기 드물다.
예외적으로 가치를 담아 만들어진 대학 이름도 있다. ‘홍익’과 ‘숭실’이 그러한 경우이다. 홍익은 한국사의 시원적인 건국 신화와 관계 있는 ‘홍익인간’을 가리킨다. 본래 『삼국유사』에 출처를 두는 이 말은 조선시대에는 잘 쓰이지 않다가 해방 후 자아 확립과 인류 공영의 건국 이념으로 칭양되었다. 숭실은 글자 그대로 실(實)을 숭상한다는 뜻인데 조선시대에도 쓰였지만 근대에 들어와 특히 각광을 받았다. 김윤식은 적극적인 출판 활동으로 한국인의 지식 개발에 기여하는 최남선의 학문하는 자세를 ‘거화숭실(去華崇實)’ 네 글자로 요약했다. 김윤식이 보기에는 최남선 같은 사람이 숭실의 학자였다.
숭실의 출현은 개화 세상의 실학 개념과 관계 있을 것이다. 일본 메이로쿠샤[明六社]의 쓰다 마미치[津田眞道]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학문을 크게 구별하면 두 종류가 있다. 고원한 공리를 논하는 허무적멸, 그렇지 않으면 오행성리나 혹은 양지양능의 주장 같은 것은 허학이다. 이를 실물에 비추어 보고 실제 형상에 물어봐서 오로지 확실한 이치만을 말하는 오늘날 서양의 천문학, 물리학, 화학, 의학, 경제, 그리스 철학과 같은 것은 실학이다. 이 실학이 국내에 두루 퍼져서 각자가 도리에 밝게 통달하게 되는 것을 진정한 문명세계라고 부를 수 있다.’(이새봄 쓰고 번역, 『메이로쿠 잡지』, 2021, 빈서재)
허학과 실학을 분별하고 실학의 확장에서 문명의 도달을 인식한다는 것. 유원표와 박은식은 모두 이와 같은 허와 실의 이분법을 공유했는데 ‘밀아자문답(蜜啞子問答)’이라는 글(『대한매일신보』 1907.6.8.)에서 이들이 설파한 ‘숭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의 구성은 평안도 학생과 개성 지식인 유원표 사이의 문답, 그리고 신문 기자 박은식의 비평이다. 학생의 질문. 한국이 쇠약해져 위급존망의 상태에 빠진 까닭이 무엇인가. 유원표의 답변. 천지간의 만사에는 항상 허가 있고 실이 있으니 ‘출허숭실(黜虛崇實)’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이 실패한 것은 허를 숭상해 실과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허로망상(虛勞妄想) 하지 말고 실업실사(實業實事)를 다스려 국력을 배양하라.
박은식은 유원표의 숭실에 찬동했다. 그는 한국인 포수 이야기를 보탰다. 연전에 포수 몇 명이 산골짜기 수풀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 어떤 포수는 기겁하고 숨었으나 어떤 포수는 용감하게 사살했다.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경쟁하는 원동력이 다름 아닌 실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은 남에게 의지하고 자립할 생각이 없으니 이제 실지사업에 힘써서 실력을 배양하자. 그는 한국 사회를 향해 거듭 ‘출허숭실’을 촉구했다.
후일 박은식은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다시 ‘숭실’의 메시지를 불어넣었다. “우리나라 사회는 도학 일파가 높은 지위를 독점하고 각별한 영예를 넉넉히 누렸다...다시 그 학문이 허를 높이고 실을 버려[崇虛遺實] 무릇 정학, 법학, 병학, 농학, 공학, 상학, 재정학 등 실용 있는 각 학문을 공리라고 배척해 버려두고 연구하지 않았다...선비는 실재(實才)가 없고 백성은 실업이 없고 나라는 실력이 없어서 마침내 천하에서 지극히 빈약한 나라가 되었다.” 대한매일신보 기사에서 ‘숭실’을 부르짖은 그가 한국의 국망의 원인을 ‘숭허’에서 구했다. 유원표는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 제4장 「동토문학허실(東土文學虛實)」에서 중국과 조선은 사물의 정신을 상실하고 허문에 매몰되어 빈약해졌다고 단언했는데 이와 동일한 생각이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유원표는 국망의 그 해 일본 관광단에 참가하면서 친일로 경사했고 그의 숭실론은 한국의 자강을 외면하고 일본 문명 예찬으로 귀결했다. 말년의 그는 내방객에게 일본은 실의 나라[實國]이고 이러한 실의 나라 같이 부자를 우대해야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소리를 되풀이했다고 한다. 박은식이 조선시대 도학을 향해 ‘숭허’를 성찰했다면 유원표는 식민지 조선의 부자를 위해 ‘숭실’을 읊은 것일까. 대한제국 언론의 숭실론은 식민지 현실에서 그렇게 굴절된 것일까.
첫댓글 도학은 방향성이고
실학은 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