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의 명시감상 제1권에서
수묵 산수
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 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一群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 생긴 산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했더니
아서라, 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 아닌가.
보아라,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 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김선태,[수묵 산수]({애지}, 2007년 여름호) 전문
수묵화란 무엇이며, 산수화란 무엇인가? 수묵화는 채색을 하지 않고 먹만으로 그리는 동양화를 뜻하고, 산수화란 자연의 경치를 그린 동양화를 뜻한다. 수묵화는 문인화文人畵의 대종大宗을 이루며, 그 기법에 따라서 ‘농묵濃墨’과 ‘담묵淡墨’, 그리고, ‘발묵潑墨’과 ‘파묵破墨’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농묵기법은 먹을 진하게 갈아서 그리는 기법을 말하고, 담묵기법은 보다 흐리고 습하게 운필하는 기법을 말한다. 발묵기법은 주로 종이 위에 먹이 번져 퍼지는 효과를 이용하는 기법을 말하고, 파묵기법은 농묵과 담묵과 발묵기법에 의한 윤곽선을 깨뜨리거나 그 한계를 분명히 하는 기법을 말한다. 수묵화는 특히 현란한 채색을 피하고 먹의 정신성情神性을 드러내는 양식이며,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들과 선비들이 즐겨 그려왔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수묵화는 당나라 때부터 발생했으며, 남종문인화와 더불어 발달하였다고 한다. 문인화의 시조인 왕유는 '화도지중수묵최위상畵道之中水墨最爲上'이라고 역설한 바가 있으며, 아무튼 수묵화는 그 ‘시서화일치사상詩書畵一致思想’과 결합되면서, 수많은 동양화가들을 배출해왔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산수화의 역사는 수묵화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고, 따라서 당대에 이르러서 그 화법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는 세 갈래로 나뉠 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전통적인 화풍이며, 두 번째는 남종계의 산수화풍,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선鄭敾의 유파에 의해서 구축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남종계의 산수화풍과 진경산수화풍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고, 따라서 ‘진경산수화’의 시대에 이르러서, 중국의 영향권을 벗어나 독창적인 산수화의 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천하의 명승명소名勝名所와 별서유거別墅幽居를 주로 그린 것을 말하고,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 것 등을 말한다. 요컨대 진경산수화가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畵’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던 것이고, 정선, 강희언, 김유성, 최북, 김홍도 등이 그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이상 {백과사전} 참조).
가창오리는 기러기목의 오리과의 새이며, 중국과 러시아와 몽골의 광활한 대륙에서 번식을 마친 후,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찾아오는 겨울 철새이다.
“몸 길이는 약 40cm이고, 날개 길이는 약 21cm이다. 수컷은 얼굴 앞쪽 절반이 노란색이고 중앙의 검은 띠를 경계로 하여 뒤쪽 절반은 녹색으로 윤이 난다. 부리는 검고, 홍채는 갈색이며, 다리는 회색이 도는 노란색이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이며 배를 제외한 몸 전체에 붉은 갈색의 얼룩무늬가 나 있다. 뺨과 멱, 눈 뒤쪽은 노란색이고, 검은 무늬가 있으며, 배는 흰색이다. 부리가 시작되는 부위에 흰 점이 뚜렷하다({백과사전})”.
가창오리는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날아오는 겨울 철새이며, 한반도에서 따뜻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는 그 주主서식지인 시베리아 등지로 날아가는 겨울 철새이다. 4월과 7월 사이에, 한 배에 여섯 개 내지 아홉 개의 알을 낳고 있지만, 세계적인 희귀조로서 멸종위기에 처한 새이기도 하다. 우리 대한민국에 그토록 수많은 겨울 철새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은 동북아에서는 대한민국이 가장 따뜻하고, 또한 월동하기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가창오리떼는 천수만, 금강하구, 영암호 등지로 해마다 날아오며, 그 수십만 마리 떼의 군무群舞는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 못해, 차라리 무아지경의 황홀함까지도 안겨주게 된다.
김선태 시인은 1960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고, 199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바가 있다. 시집으로는 {간이역}과 {동백숲에 길을 묻다} 등이 있으며, 현재 {시와사람}의 편집주간과 목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김선태 시인은 고귀하고 우아한 선비정신과 왕유 이래로의 ‘시서화일치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며, 그 제일급의 필치로 대한민국 서정시의 진수를 펼쳐나가고 있는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수묵 산수]는 언어로 표현한 ‘진경산수화’이며, 전라남도 영암호와 가창오리떼의 군무와 화룡점정의 보름달이 이룩해낸 아름다운 세계를 언어의 ‘수묵산수화’로 표현해낸 제일급의 걸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때는 ‘저물무렵’이고, “가창 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저물무렵, 가창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영암호의 수면을 박차고 날아 올라가 새까만 점들로 한바탕 군무를 즐긴다는 것은 즐겁고 복된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그리고 그 춤에 의해서 또한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춤이란 기쁨의 산물이며, 그 주체자의 행복과 그 문화지수를 나타낸다. 따라서 가창오리떼는 너무나도 기쁘고 또 기뻐서 춤을 추는 자들이며, 그 존재의 충일감은 존재의 무근거 상태로서 최고급의 행복의 문화지수(황홀한 몰입의 상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때의 군무는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라는 시구에서처럼 상호화합과 단결을 약속하는 공동체의 의지에 맞닿아 있는 것이며, 또한 그 공동체의 의지는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라는 시구에서처럼, 자연산 걸작품, 즉, 수묵 산수를 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가창오리떼의 군무는 ‘한마음--한몸’이 되기 위한 예비동작이었던 셈이며, 이제 그 가창오리떼들은 그 군무를 멈추고 저무는 하늘을 화폭삼아 ‘수묵 산수’를 치게 되었던 것이다. 정중동靜中動은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는 것을 말하고, 동중정動中靜은 어떠한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조용한 정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을 말한다. 가창오리떼의 군무는 동중정, 즉, ‘한마음--한몸’이 되기 위한 예비동작이었던 셈이고, 그리고 그 ‘한마음--한몸’이 되어서 ‘거대한 몸 붓’으로 ‘수묵 산수’를 치는 것은 정중동, 즉, 조용한 가운데 수묵 산수를 치기 위한 실천행위이었던 셈이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는 일순간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제대로 구도를“ 잡기 위해 고심을 하고, 또한 그 가창오리떼는 ”그렸다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一群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라는 시구에서처럼, 뼈를 깎는듯한 절차탁마의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반복은 모든 문예창작의 어머니이며, 그 반복 행위에는 크나 큰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경제로 따지자면, 그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에는 또한 그만큼의 고통과 그 주체자의 피와 땀과 눈물과,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가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一群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이며, 그리고 그 절차탁마의 시간에 의해서 ”듬직하고 잘 생긴 산 하나“가 ”이윽고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아서라, 畵龍點睛!“ 이때의 ‘아서라’는 ‘그만 두어라’는 부정적인 명령어가 되지를 않고, 그 반대뱡향에서, ‘여보게들, 이제는 그만들 수고하고 푹 쉬어라’는 뜻의 보름달의 상호화답적인 권유어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畵‘는 ’그림 화‘이며, ’龍‘은 ’용룡‘이고, ’點‘은 ’점찍을 점‘이며, ’睛‘은 ’눈동자 정‘이다. 옛날 옛적에 ’양梁나라‘의 장승요가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에서 두 마리의 용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 두 마리의 용에다가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았던 것이고, 그리고 그 이유는 눈동자를 그려넣으면 그 용들이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장승요의 말을 믿지 않자, 그는 그 용 한 마리에다가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리고, 그 용이 단숨에 이 세상을 박차고 하늘나라로 승천하게 되었던 것이다. 화룡점정에는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또한, 어떤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요컨대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가장 화려한 군무를 마치고 ’한마음--한몸‘이 되어서 [수묵 산수]를 치면, ”아서라, 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 아닌가“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둥그런 보름달이 온몽으로 환하게 낙관을 찍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의 사제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가 중의 예술가’이다. 김선태 시인은 저물무렵, 영암호에서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고, 그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군무를 바라보면서 한 폭의 수묵산수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 동중정과 정중동의 필치에다가 ‘一群의 細筆’로 음영을 더하고, 산과 호수,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와 둥그런 보름달로 [수묵 산수]를 완성시키고, 마치, 그 낙관을 찍는 것은 둥그런 보름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듯이 다음과 같이 노래해놓는다.
보아라,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 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예로부터 ‘낙관’이란 글씨나 그림에다가 필자가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호를 쓰고 도장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낙관은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창성과 개성의 표지이면서도, 그 작품의 품질을 보장해주는 보증수표와도 같은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 그림이 중요하지 않고 ‘낙관’이 더욱 더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그림을 인도해주고, 저자에게 돈과 명예와 부를 가져다가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태 시인은 ‘시서화일치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며, 그의 [수묵 산수]는 제일급의 ‘진경산수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수묵화보다도 더 아름답고 더 뛰어난 ‘언어의 수묵산수화’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이 천세불변의 목소리로, 나의 ‘명시감상’에다가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김선태 교수님의 명시 <수묵 산수>를 여기서 만나니 엄청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