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로,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2017년 올해의 말씀이었던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를 매일의 삶에 실천하기 위해 이 큐티 게시판을 시작했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여기) 매일매일 예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변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해 보면,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이런 말들이 우리에게 굉장히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형체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7)'와 같은 구절을 읽거나 그에 관한 설교를 들어보면, 대부분 "예수님도 이렇게 낮아지셨으니, 우리도 낮아져야 한다."는 뜻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곧 우리의 정체성이다'라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하실 수 있었던 일을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기를 정죄하기에 바쁜 것입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주님의 은혜로 저는, 제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 자신에서 눈을 떼어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또 무슨 뜻이냐면, 이런 구절을 배울 때 "아이고...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네....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가 아니라 그 일을 하실 수 있었던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을 묵상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거기서 끝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셨구나. 예수님께는 내가 그렇게도 소중했나? 아, 그러면 나는 참 귀한 사람이구나.'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로 나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이 말씀에 대한 성도들의 적용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은 한번 힐끔 쳐다만 보고 그다음에는 오로지 자기 모습만 봅니다. 그것이 자기를 점검하고 회개하는 거룩한 성도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그것은 매우 교만한 것이며 자기를 우상숭배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말씀을 배워도 예수님이 아닌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는 차원에서 배우는 것일 수 있고, 주님께 나갈 때도 주제가 오로지 자기 자신이니 말입니다. 자기가 뭘 했는지, 뭘 못했는지, 뭘 잘했는지, 뭘 실수했는지 오로지 자기, 자기, 자기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겐 소망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30대는 30년간 경험했을 것이고 40대는 40년간, 50대는 50년간, 60, 70, 80, 각각 살아온 햇수만큼 자기를 경험하셨을 텐데 아직도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우리 자신(육신)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영광스러운 소망은 오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뿐입니다(골 1:27).
저 자신과 여러 형제자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정말로 '자기중심적인 사고 방식'은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이라는 뜻입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동시에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이미 다 아시는 데 뭐 하러 자꾸 또 알려드립니까?
다시 한번, 우리의 눈을 우리 자신에게서 떼고, 내가 의지하는 그 사람에게서 떼고, 내가 내 삶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서 떼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고후 3:18).
할렐루야!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