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은 경찰시험 합격자 발표하는 날 인터넷을 보고 합격되었음을
알았다. 어찌나 기쁜지 잠자는 나를 새벽 2시에 깨워
“아버지, 저 합격했어요.”
라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장하다. 우리아들!”
하며 부둥겨 안아 주었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저녁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술잔을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생활이야기로 대화가 바뀌었다. 어쩌다 큰아들이 해마다 농사를 지어 가져가는 쌀이 떨어졌다고
하자, 아내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엔 그동안 서울생활을 하느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소사에 가기로
했다.
내소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대웅전 앞에는 천년(千年)의 수령(樹齡)이 되는 느티나무가 장구(長久)한 세월을 이겨내고 있었다. 여러 곳을 관람하려고 했지만 벌써부터 아내는 전주로 가자고
했다. 구이 밭작물을 가꾸는 곳에 아내의 마음은 가
있었다. 지금은 때가 일러 과일은 없지만 상추, 마늘, 도라지 등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두 아들에게 줄 쌀과 찹쌀
28만원어치를 구이방앗간에서 매입했다. 여기에 점심값도 아내가 먼저 계산해 버렸다.
집에 도착하여 차 한 잔을 나누려 했다. 그러나 아들들은 오늘 같은 날 어머니의 수고를 덜고자 같이 타고 온
자가용에 옮긴 뒤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먼저 들어 가시라고 하고서는 그대로 서울로 떠나 버렸다. 화가 잔뜩 난 아내는 그 성미를 못이겨 아들들이 준 용돈과 함께 미리
집에 준비해 놓았던 김치,
참기름 등을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어버이날 그 기쁨은 배가 되었는데 결국 아들들은 다시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한 셈이다. 아들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한국인 특유의
어머니의 사랑입니다.”라고 보내주었다. 아내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2018.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