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이하 EPL) ‘토트넘 핫스퍼’의 유니폼을 입자마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알려진 이적료만 무려 3000만유로(약 392억원)다. 토트넘 클럽 역사상 세 번째로 큰 금액이자, 이번 EPL 여름 이적 시장 이적료 순위 10위 안에 들 만큼 비싼 몸값이다. 토트넘은 지난 몇 시즌 동안 경기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줄 폭발력을 가진 공격수를 찾아왔다. 특히 측면 공격수가 간절했다. 젊고 빠르며 득점력까지 겸비한 선수들을 물색했고, 결국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던 손흥민을 낙점했다.
손흥민을 오랫동안 관찰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토트넘 경영진의 판단은 정확했다. 손흥민은 이적 후 두 번째 경기였던 ‘카라바흐’와의 유로파리그 조별 리그 1차전에서 2골,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리그 6라운드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비싼 아시아 선수에 대한 불안감을 말끔히 털어냈다. 특히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보여준 단독 돌파 이후 터진 골은 런던팬들에게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가레스 베일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조심스럽지만 손흥민이 과거 토트넘의 스타였던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과 벌써부터 비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손흥민을 오랫동안 관찰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토트넘 경영진의 판단은 정확했다. 손흥민은 이적 후 두 번째 경기였던 ‘카라바흐’와의 유로파리그 조별 리그 1차전에서 2골,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리그 6라운드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비싼 아시아 선수에 대한 불안감을 말끔히 털어냈다. 특히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보여준 단독 돌파 이후 터진 골은 런던팬들에게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가레스 베일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조심스럽지만 손흥민이 과거 토트넘의 스타였던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과 벌써부터 비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 손흥민과 가레스 베일. /뉴시스
웨일스 출신인 가레스 베일은 9살 때부터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유스 아카데미에서 성장했다. 2006년 4월, 16살에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1군 데뷔 선수가 된다. 당시 사우샘프턴은 챔피언십(잉글랜드의 2부 리그)에 있었고 순위도 중위권이라 베일은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던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당시 베일의 포지션은 지금처럼 공격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왼쪽 풀백(수비수)이었다. 2007년 토트넘이 최대 1000만파운드를 주고 그를 데려갔을 때도 사실은 왼쪽 풀백으로 자리 잡길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베일은 수비에 약점을 보였다. 첫 시즌이었던 2007~2008시즌 선발·교체로 나선 24경기(리그 기준) 연속 무승을 기록했다. 선발로 나서 리그 첫 승리를 맛본 경기가 2010년 1월 풀럼과의 경기였을 정도다.
이후 토트넘의 감독이 바뀌면서 베일의 활용법이 달라졌다. 수비 대신 빠르고 강한 왼발 킥을 가진 그의 재능을 공격에서 살려보자는 대안이 나왔다. 변화와 적응이 시작된 것은 2010~2011시즌부터다. 레드냅 감독이 루카 모드리치를 중앙 미드필더로 옮기며, 베일을 왼쪽 측면 공격수로 꾸준히 기용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공격수 변신이 이때부터다.
개막전부터 선발로 나선 그는 특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직전 대회 챔피언 이탈리아 세리에A 인터밀란과의 조별 리그 3차전에서 해트트릭(한 경기 3골)을 기록하며 단숨에 유럽을 놀라게 했다. 특히 당시 세계 최고 오른쪽 풀백이었던 마이콘을 뚫는 빠른 돌파는 베일을 완전히 다른 선수로 바꿔준 계기가 됐다.
2011~2012시즌은 더 위협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2~2013시즌에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영역을 넓히며 토트넘의 스타가 됐다. 리그에서만 21골을 넣으며 잉글랜드 무대 뒤흔들었다. 토트넘을 상징하는 선수로 올라섰다. 2013년 가을 레알 마드리드가 최대 9100만유로(약 1190억원)에 그를 모셔 갔다.(영연방 언론은 최대 1억유로로 추정하는데 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적료를 넘는 세계 최고액이다.)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