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살다 보니 명절이 와도
옛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럴 땐 예전 명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내가 쓴 글을 찾아 다시 읽어보곤 하는데, 먼 길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객고도 달랠 겸 읽어보던 글 중에서 이 글, '어머니의 정원'을 읽던 중에 어머니가 많이 그리워 울컥 대는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정원> - 2004년 10월 7일 -
소곤소곤, 어머니는 손수 가꾼 뜨락에 물통을 들고 앉아, 앞에 있는 꽃을 어루만지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몇 년 전 고향 대구로의 출장, 당일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잠시 짬을 내어 부모님 계신 집을 잠시 들린 참이었는데,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문살 틈으로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초인종을 누르려던 손을 멈추고 칠순을 훌쩍 넘겨버린 어머니가 꽃을 어루만지며 칭찬하고 격려하며 대화를 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참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다음 꽃으로 자리를 옮기시던 어머니가 내 기척을 느끼시고는 분주하게 반기셨다.
"어? 익이 왔나~ 출장왔더나? 얼른 안 들어오고 와 거 섰노?"
"어무이, 뭐 하고 계셨어요? 꽃한테 무슨 말을 하시는 것 같던데......"
"테레비에서 꽃도 사랑을 주면 더 예쁜 꽃을 피우고 건강하게 잘 큰다 카길래..."
계면쩍게 웃으시던 어머니는 혹시 내가 어머니를 우스꽝스럽게 생각할까 염려가 되셨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다음 말을 이으셨다.
"근데, 그렇게 해보니 정말 꽃들이 더 예쁘고 건강해지는 것 같더라. 참말이데이."
"저도 사랑받는 꽃이 더 예쁜 꽃을 피운다는 그 프로 봤어요. 야~ 우리 어무이가 정말 그 실험을 해보셨구나~"
마침 그 얼마 전에 본 프로가 생각나 동감을 해드렸더니,
"배 고푸제?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자식들만 보면 늘 배고플까 조바심을 치시는 어머니는 서둘러 집안으로 나를 이끌고 들어가셨다.
또 다른 출장길에 고향집에 들렀을 때는 마침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다툼을 하고 계셨다. 말다툼의 연유를 듣다가 나는 그만 킥킥 웃고 말았는데, 그 연유는 어머니가 아버지께 정원수 손질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손이 크신 아버지가 모양은 생각하지 않고 너무 많이 정원수의 가지를 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무도 자존심이 있는데 저렇게 모양 없이 잘라버리면 어떡하느냐고 어머니는 불평이셨고, 아버지는 확 잘라놓으니 답답하지 않고 보기 좋다고 우기시다가 서로 말다툼으로까지 발전하여 케케묵은 옛날의 원망까지 동원되고 있던 중에 내가 집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멀리 있는 자식이 왔는데,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던 두 분은 서둘러 말다툼을 끝내셨고, 서울로 밤길 도와 돌아오는 중에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자꾸만 키득거렸다.
내가 태어나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집에도 작지만 어머니가 손수 가꾸시던 정원이 있었다. 나는 그때 어려서 쪽쪽 빨아먹으면 단물이 나오는 꽃과 손을 대면 오그라드는 꽃만 기억날 뿐이지만, 나보다 컸던 형과 누나들은 어머니가 애써 가꾼 그 정원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형제들이 다 함께 모이는 자리에선 늘 빠지지 않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가세 기울어 팔 년의 서러운 셋방살이 끝에 다시 우리들의 집을 장만했을 때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그 집에도 마당 중간에 작고 동그란 정원이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을 받은 정원수와 꽃들은 아주 잘 자랐고, 스무 살 무렵 그 정원의 무화과와 목련을 보며 나는 어설픈 시를 긁적이기도 했었다.
두어해 전, 어머니는 지금의 집 뜰에 꽃들을 솎아내고 아주 작은 텃밭 하나를 마련하셨다.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농산물에 농약이 엄청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난 다음이었다. 그 작은 텃밭에는 채소와 과일들이 철을 바꾸어가며 자랐다. 가끔 고향집에 들리면 그 작은 텃밭에 오밀조밀 각종 채소는 물론이고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윤을 내며 매달려 있을 때도 있었고, 아이 주먹만한 수박이 보일 때도 있었다.
이번 추석, 그 어머니의 텃밭과 정원을 사진에 담았다.
백일홍과 정원수의 등을 짚고 담에 오르려고 애를 쓰는 호박이며, 그 호박 줄기에 삶의 터를 잡은 거미, 화분으로 자리를 옮긴 꽃들, 텃밭의 상추며 정구지(부추), 이름 모를 채소들...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찍어나가다가, 벌레 먹은 깻잎 앞에서 나는 그만 사진기에서 눈을 떼고 한동안 울컥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깻잎을 보는 순간 무언가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이 내 마음을 강하게 자극해 왔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잡힐 듯 말 듯한 상념을 그대로 두고 천천히 벌레 먹은 깻잎을 사진에 담았다.
고속도로 혼잡을 피하기 위해 추석날 늦은 밤 시간을 택해 귀경길에 나섰다. 곧 아내와 딸과 아들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고, 중앙고속도로를 다행히 막힘 없이 달리던 나는 잠시 묻어둔 그 벌레 먹은 깻잎에 대한 상념을 불러내었다. 다시금 가슴에 찡한 울림이 생겨났고, 흐릿했던 상념은 밤길이라 그런지 이내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그 깻잎은 바로 어머니였던 거야...
농약 없이 깻잎 향을 짙게 뿌리니 어떻게 벌레들이 그 맛있는 잎을 갉아먹지 않을까.
무공해 사랑을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귀한 젊은 날의 시간들을 자식 위해 다 바쳐버리고는 벌레 먹은 깻잎처럼 온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패어버린 어머니가 바로 그 깻잎이었던 거야...
우리는 철없이 그 깻잎을 갉아먹고는 성충이 되어 날아가버린 나비와 무엇이 다른가?
이젠 벌레 먹은 깻잎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옆의 꽃들이나 찾아다니는 제 잘난 나비와 무엇이 다른가?
아직도 더 내어줄 신선한 무공해 깻잎이 남아 있단다 말하며 웃는 깻잎처럼, 밤길 나서는 우리 가족에게 미리 싸둔 여러 가지 보따리들을 바리바리 건네주시며 웃으시던 어머니 얼굴이 고속도로 앞쪽 어둠 속에서 떠올라 조심해서 운전해라 염려하시는데 나는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
어머니...
늘 제 곁에 계심을 알고 있어요.
길 위 어디에서나 어머니를 뵐 수 있어
저는 많이 행복합니다.
모레 밤에는 한가위 달로 오시겠네요.
첫댓글 추석명절 생각
아름다운
어머니의 정원생각~
제아들도 미국에있어요
사람은
그리움의
동물인가봐요
매일매일이 행복한 날만 되시길~
아드님이 멀리있어 명절이면 더 많이 보고 싶겠어요.
그리움 달래시면서 추석 잘 보내세요~
추석이 다가오는 이런 날엔
부모님 멀리 가시고
본인 역시 먼 이국 땅에서,
어린시절의 명절을 생각하며
부모님 생각합니다.
만약에,
부모님을 젖먹이 시절에 여의고
홀로 세상 헤쳐오신 분들이
명절에 어머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기억해 내겠습니까?
내가 그리울 때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 주시는 우리의 부모님은
마음의 부처님이고 주님입니다.
어머니의 정원,
벌레 먹은 깻잎을 연상하시는 마음자리님,
한가위,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먼길 다녀와 이젠 집에서 편히 쉬며
한가위 인사들 드립니다.
오후에 한인마트에 가서 송편도 사고 한가위 먹거리들을 조금 장만을 했어요.
가족들과 한가위 분위기라도 조금 내보려구요. ㅎ
콩꽃님, 머리 잘 다듬어시고 한가위 가족 친지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마음자리 님이 글에 쓰신 어머니 모습이
요즘의 제 생활과 많이 비슷합니다 .
하물며 벌레먹은 깻잎도 우리 뜰에 가득해요 .
제가 벌레들을 이길수가 없어 그냥 놔 둡니다 .
그런데 이국에서 맞는 추석 명절에 어머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자리님처럼 훗날 우리 애들이 저를
그리워 할까 ... 생각이 드네요 .
고국의 명절일때 우리의 마음은 좀 쓸쓸해 지지만
그래도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
훗날 아녜스님의 아이들은 그들 가슴 속에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될 겁니다. ㅎ
약간 쓸쓸하긴 해도 그 쓸쓸함을 느껴보는 것도 타국에서의 명절 즐거움이려니...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명절을 보냅니다. ㅎ
어머니. 엄마. 태어나 첨 옹알이를 하는 아이들도 어느 인종 할것없이 맘. 이라 한다죠.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병사들이 죽어갈때 하나같이 엄마를 찾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도 소중한, 세상 누구에게나 있는 어머니. .
~한가위 보름달로 오실 어머니..~
글이 참 좋습니다.
차분히 보름달을 볼 수있기를 바래봅니다.
지금도 우러 전쟁에 하루 천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사상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어머니... 불가의 화두처럼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에겐 화두가 되셨습니다. ㅎ
커쇼님, 한가위 명절 잘 보내세요~
벌레먹은 깻잎을 보며 멀리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군요모든 것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애태우시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이지요 그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어머니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제 어머니 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들은 다 그러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들이 잘난 체 하며 살고 있지요. ㅎ
같이 감사드리며, 나국화님의 한가위 명절 행복하게 보내시라고 기원 드립니다.
추석이. 가까우니. 고향생각. 어머니생각이 간절하겠습니다
고향 생각이 두서없이 일어나는데, 그 중 어머니 생각이 가장 크네요.
푸른비님, 한가위 행복하게 보냇세요~
밥 두 그릇을 담아서 나란히
놓아두고
한쪽은 사랑을 주고 한쪽은 미움을 주는
실험을 하였답니다.
놀랍게도 사랑을 준 밥은 변화가 없고
미움을 준 밥은 부패가 심했다고 합니다.
사랑은 꽃을 피우기도 하고
메마른 나무에 잎을 틔우기도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은
하늘 땅 만큼 높고 넓습니다.
마음자리님 그리는 어머니 사랑을
저는 제 자식들 사랑으로 비춰봅니다.
인천 사는 막내가 의정부 신세계백화점 으로
와서 부모를 만나고 갑니다.
오늘도 만나서 식사하고
선물도 받고 헤어지는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떠나는 아들 차가 보이지 앓을 때까지
주차장에 서서 손 흔들고 눈물 흘렸습니다.
엄마의 막내사랑은 더 깊습니다.
1시간 거리 언제든지 보고프면 달려 갈 수 있는데도 오늘 눈물이 더 났던거는
제 마음이 나약해저서 그랬던거였습니다.
폭염에 허약해진 몸과 마음이
원인이 되어서 모든게 의욕이 없으니
침체기에 있습니다.
보름달 두둥실 떠오르면
우리 모두가 화평하기만 소원 빌겠습니다.
기쁜 날 되세요.
그 큰힘의 사랑에 어머니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듬직하고 정 많고 효심 많은 막내아들 만나고 떠나보내시며 울컥 눈물이 솟는 그 장면이 그려집니다. 제 가슴도 울렁울렁합니다.
조윤정님, 한가위 대보름달 떠오르거든 그 기운 한껏 다 받으셔서 얼른 기운 차리세요~
어머니의 정원.
텃밭이 넘 정겹습니다.
명절이 되면 타국에서도 마음이
설레실 것 같습니다.
송편을 빚자는 며느리한테
송편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사먹자 했어요.
집집마다 송편과 시루떡을 하고
전을 부치던 옛날이 그립지만
전 고기만 준비했습니다.ㅎ
추석날에는 한가위 달로
오실 어머니~!!
제 마음과 꼭 같은 시를 어찌 찾으셨어요. ㅎ
이베리아님, 늘 고맙습니다.
얼른 기운 차리세요.
기운 차리실 때는 대보름달 기운이 최고입니다.
보름달 바라보며 단전호흡하시면 금방 기운 차리실 겁니다. ㅎ
우리의 최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 납니다. 더더욱 외국에서 사시니 어머니의 회상,추억이 더하겠지요.. 제친구는 5남매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수필집 <아버지의 정원>이라는 책을 얼마전 낸바 있지요..
아... 그런 남매들도 있군요.
명절 그리움 중엔 어머니 그리움이 가장 큽니다. ㅎ
20년전 쓰신 글로 그리운 어머니를 회상하시네요
모레 한가위에는 보름달로 어머니가
미국까지 찾아오실것 같습니다
제가 2008년에 이곳으로 왔으니 이제 16년, 강산이 한번 반이 변했네요.
명절 분위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가 없으니 추억을 불러내어 그 분위기를 되살려보곤 합니다.
오늘 어머니는 모레 환하게 웃어주시려고 볼살 찌우고 계셨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나봅니다.
벌레 먹은 깻잎에서도 어머니를 떠올리는 익이..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르길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에 어머니가 함께 떠오르겠지요.
네. 모레 세상에서 가장 밝은 웃음으로 찾아오실 겁니다. ㅎ
타국 생활하면서 맞이하는 명절은
옛추억을 회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마치 제가 써야할 이야기를 대신 써올린듯
감회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제 는 고향에서 맞이하는 명절에 익숙하여
아침일찍 동네 돌아보고
선산 돌아보고 하면서 추석인 내일을 준비
합니다.
타국생활에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국에 계시니 명절 맞으실 기분이 훨씬 더 즐거우시겠어요.
그간 명절 준비 하시느라 그곳에 도착하시자마자 많이 바쁘셨지요?
이제 편히 즐겁게 추석 맞으세요~
추석인즐도 모르고 지내지요, 저는 ~
마지막 문장이 와 닿습니다.
어머니...
늘 제 곁에 계심을 알고 있어요.
길 위 어디에서나 어머니를 뵐 수 있어
저는 많이 행복합니다.
모레 밤에는 한가위 달로 오시겠네요.
미국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잊고 지내는 추석 잘 맞으시길 바랍니다 ~~
네. 캘리포니아에서 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습니다.
음식 장만은 엄두도 못 내고, 한인마트에 가서 송편과 전을 사와 한가위 분위기만 살짝 느껴봅니다. ㅎ
단풍님도 한층 건강해지신 아내분과 함께 평온하고 행복한 한가위 맞으세요.
멀고 먼 길 위의 여행이 지치지 않음은
늘 어머님이 곁에 함께 하심이니...
한가위 잘 보내셨나요?
네. 길에는 항상 어머니가 함께 계십니다. ㅎ
이쁘게도 표현하시네요
활짝 웃어주려고 볼살 찌우는...
저는
님같은 절절한 그리움없는
구순엄마와 다투며 치는 고스톱이
저의 추석이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