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수요일>(2023. 1. 18. 수)(마르 3,1-6)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뜻』
구약시대 안식일은 주간의 마지막 날, 즉 토요일이고,
하느님께서 창조 사업을 마치시고 쉬신 날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하느님의 휴식에 동참하는 일로만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한 주간 동안의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나서 하느님과 함께 쉬는 일입니다.
신약시대 주일은 주간의 첫날, 즉 일요일이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면서
부활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주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구원 사업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새로운 창조 사업’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의미와 주일의 의미는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만 다를 뿐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든지 주일을 지키든지 간에, 모든 날이 다 거룩한 날이고,
모든 날이 다 ‘주님의 날’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속의 날’이고, 일요일 하루만
‘주님의 날’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속 사람으로 살다가 일요일 하루만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날을 신앙인으로서 살면서, 모든 날을 항상 주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르 3,1-6).”
요한복음 5장에도, 안식일 문제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요한 5,16-18).”
여기서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안식일에도 쉬시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사람들을 보살펴 주시는 일을 하시니
나도 안식일에 쉴 수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랑과 선을 실천하는 일은
요일과는 상관없이 날마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안식일에는, 또는 주일에는 특히 더 많이 실천해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라는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가 어렵다고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선이냐고
고민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또 누구에게나 사랑은 사랑이고, 선은 선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라는 말씀은, “안식일에 선을 실행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냐? 악을 행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냐?” 라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선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다.” 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 율법을 재해석한 말씀이 아니라,
원래의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날,
선을 행하는 날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탈출기와 신명기에 있는 십계명에도 안식일은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탈출 20,8-11; 신명 5,12-15).>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라는 말씀은,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냐?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냐?” 라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큰 죄다.” 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단히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것은, 예수님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식일 율법을
안 지키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말씀에
반박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해서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 분노와 증오가 올바른 판단을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마귀가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며”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에 대해서 노여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라는 말은,
율법주의자들이 고집과 집착을 버리지 않고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는 그들도 회개시켜서 구원해야 할 ‘양들’,
즉 ‘잃은 양들’이었습니다.
[출처] 연중 제2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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