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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
죄사함 |
거듭남 |
구원 |
정동수 목사님 (사랑침례교회) |
동일한 것으로 봄 (1) 말씀을 듣고 죄인된 자신을 자각한 후 (2) 믿음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영접하는 순간,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역사로 거듭남 |
거듭남과 구원을 동일한 것으로 봄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후 과정은 성화의 과정으로 구원과 상관없음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성화는 있을 수 없다고 보심 | |
죄사함, 거듭남, 구원에 대한 견해, 이런 구원을 확증함에 있어 무엇보다 말씀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김에는 ‘구원파’와 다를 바 없으나, 거기에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성화의 열매가 나타난다고 하시는 점이 다르며, 죄사함, 거듭남이 말씀을 듣고 자유의지에 의해 믿음으로 영접(신인합동)해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감리교(알미니안)의 주장과 동일하다고 보입니다. | |||
일반장로교 |
거듭남의 결과 칭의(죄사함), 회심이 뒤 따른다고 보고 있음 |
말씀을 들을 때 예정된 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거듭남 |
거듭남과 구원을 동일한 것으로 봄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후 과정은 성화의 과정으로 구원과 상관없으며, 상급에 차이가 있음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성화는 있을 수 없다고 봄 |
칼빈의 5대강령(tulip)에 따라, 전적타락, 거부할 수 없는 은혜, 미리아심, 거룩한 부르심으로 거듭나고, 이렇게 거듭난 자들이 회심하여 죄사함을 받고 양자가 되면, 양자된 자를 거룩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한 자를 다시 영화롭게 하신다고 보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구원은 절대로 상실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임 |
목사님 |
죄사함 |
거듭남 |
구원 |
이천수 목사님 (인천 산성교회) |
정동수 목사님과 동일한 견해 |
성화와 구원을 분리하지 않으심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보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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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목사님의 경우, 일반 장로교와 달리 거듭남에 있어 정동수 목사님과 같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신인합동)라고 보시지만, 이 거듭남은 구원의 출발(좁은길에 들어선 것)로 여기서 성장하여 성도가 되고, 신부가 되어야 하며, 이때 성장하지 않으면 거듭났더라도 육신대로 살다가 구원에서 떨어지게 된다고 보시고 이를 특별히 강조, 경고하심 | ||
정동석 목사님 (LA나성, 서울 삼성교회) |
(1) 거듭남 = 죄사함으로 보심, (2) 이는 위로부터 주시는 ‘계시의 믿음’으로 된다고 보심 |
이후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보심(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 세상에서 완전한 성화가 가능하다고 보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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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목사님의 견해는 거듭남은 ‘계시의 믿음’에 의해 이뤄진다고 보시므로 사실상 장로교 교리와 다 같으나, 차이는 장로교는 이땅에서 완전한 성화는 이룰 수 없다고 보는 반면, 정동석 목사님은 이룰 수 있다고 보시는 것이 다름 | ||
이현수 목사님 (전 LA 뉴호프채플) |
이현수 목사님은 정동석 목사님의 제자이시지만 거듭남과, 죄사함의 견해는 이천수, 정동수 목사님과 같은 견해이심 |
이후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보심(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 세상에서 완전한 성화가 가능하다고 보심 | |
문동환 목사님 (전 주님의 교회) |
정동수 목사님과 같은 견해라고 보임 | ||
김윤구 목사님 (참빛선교회) |
(1) 초보구원 (2) 만민에게 제한 없는 은혜 |
계시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할 때 새 생명이 태어남 |
성화와 구원을 분리하지 않으심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보심 |
* 이 내용들은 나열된 목사님들의 여러 편의 말씀과 책들을 읽고서 제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지, 직접 당사자들에게 물어 확인한 것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1)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믿음직하고, 복음적이라고 하실 수 있는 목사님들이 갖고 계시는 견해가 각기 다르십니다.
(2) 이러한 가운데 현재 우리 교회에서 전해지는 다수의 복음은 말씀을 듣고, 죄인으로서 깊은 자기발견이 누락된 상태에서 단순한 초청 및 영접기도를 하게 함으로 거듭났다고 선포해 버리는 자판기식 구원이 폴 워셔 목사님이나 베들레헴교회의 존 파이퍼 목사님 등에 의해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위에서 설명한 일반 장로교식 가르침, 그 다음 정동수 목사님과 같은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구원파는 죄인된 자기인식이 없는 가운데 신인합동에 의해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고, 구원을 받게 되며 이 구원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여 가장 값싼 구원을 말하고 있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3) 이중에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것은 김윤구 목사님의 견해인데요, 김윤구 목사님의 경우에는 초보구원은 만민에게 허용된 것으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물론 전제는 죄인된 자신을 자각하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되지만, 이후 거듭남은 하나님의 예정된 자만이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하여 가능하며, 이렇게 거듭났더라도 그 새생명 가운데서 알곡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4) 저는 개인적으로 이천수 목사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구원의 입문은(정동수, 김윤구, 이천수, 문동환, 이현수) 목사님들의 견해와 같이 (가) 말씀을 듣고 (2) 죄인된 자신을 자각한 후 - 그 정도와 깊이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 거듭나 새 생명이 생겨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구원의 시작으로 여기서 알곡으로 성장을 해야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며, 만일 거듭났더라도 날마다 새 새명가운데 믿음으로 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구원을 잃어 버린 다는 것은 얻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잃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며, 떨어지는 것이므로 돌이켜 회개하므로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 새 생명’을 어떻게 자각하고, 확신할 수 있는가? 궁금해 합니다. 이는 거듭남=구원의 결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집착하는 듯 싶습니다만, 저는 새 생명은 성령안에 감춰져 있어 마지막날에 나타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비록 그 새 생명을 뚜렷하고 명확히 자각하고 확신하기 원하지만 언제나 ‘희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
그러기에 믿음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죄인된 자신을 발견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영접하셨나요 ? 그러면 당신은 거듭나셨습니다. 당신안에 이제 새 생명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이 질그릇에 보배(주님의 생명으로 주신 생명)를 가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한 몸에 옛 생명과 새 생명이 공존하므로 날마다 갈등이 생기고 탄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 생명은 성령께서 연합하셔 두루 감싸(창세기 1:2) 보호되어 범죄할 수도 없고, 옛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죄로 오염 되지도 않습니다. 이때 우리가 현실적으로 체험되고, 내게 사는 것은 겉 생명인 이 옛 생명이며, 오직 새 생명은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인해 자칫 정신불열증이나 다중인격과 구분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현실적인 옛 사람의 생각, 느낌, 보이는 것, 여러 사회적, 인간적 관계에 끌려 살기보다는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거듭났더라도 새 생명은 나타나지 않고, 점점 더 희미해지고,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거듭나 새 생명이 있더라도 범죄하게 되고, 탄식하게 되며, 같은 죄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 이 부분 흠정역 성경에는 번역은 ‘전과 같이’로 되어 있는 것이 보다 정확한 번역이라고 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지만, 진정으로 거듭나면 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믿음으로 새 생명 가운데 살지 않는다면, 거듭났더라도 전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 하지만 믿음으로, 새 생명으로 살면 점점 겉 사람은 후패해지고 속사람이 강건해 진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저도 이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내 안에 그(성령님으로 오신 주님)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심) 믿고 순간, 순간 이 육신의 사람(겉 사람)으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사람으로 살고자 기도하며,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3) ”
하지만 저도 번번히 넘어지고, 절망합니다. 늦은 밤 홀로 컴으로 말씀을 쓰다가 안목의 정욕에 넘어지기도 하고, 감정이 상해 집사람과 아웅다웅 다투기도 한 답니다. 공부 안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회사에서 이기적인 직원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고, 지하철에서 예의 없는 사람을 보면 속에서 짜증이 밀려 오기도 하죠. 하지만 이게 다 옛 사람으로 반응하는 것인 줄 알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새 생명가운데 행하고자 돌이키고, 또 돌이키고, 성령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묵상하며 제게 주어진 시간을 인내하며 가고 있습니다.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여 볼 것을 믿고, 그 날에는 주님의 형상으로 장성해 있을 저의 새사람을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첫댓글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여 볼것을 믿고 ,그날에는 주님의 형상으로 장성해 있을 저의 새 사람을 소망하면서...아멘 그날이 반드시 올것을 믿습니다."너희속에 착한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장 6절.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