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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50회>
씬 인서트 (정주포구)
여전히 공역이 한창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재를 나르고 있고 한쪽에서는 목수들이 배를 완성해 가고 있다. 그 부산함 저편으로 바다에는 많은 배들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씬 유장자 집 별채 마당
부용이 부엌에서 소반에 약탕기를 마련하여 마당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왕건의 방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띄운다. 그녀는 행복한 표정이다. 왕건의 방 앞에 이르러 말한다.
부용 장군, 약탕기 대령이옵니다. (사이) 장군, 소녀 약탕기 대령이옵니다.
씬 동 집 방안
부용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부용 (E) 장군, 약탕기 대령이옵니다.
왕건이 책상 위에 수북한 설계도들을 보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왕건 들어오시구려.
부용이 들어와 조심스럽게 왕건의 탁자에 약탕기를 내려놓는다.
부용 산삼탕이옵니다.
왕건 ........
부용 아버님께서 용한 심마니들을 통해 구한 것이옵니다. 드시오소서.
왕건 (답답한 듯) 낭자, 이런 일은 시녀를 시키면 될 일이 아닙니까..?
부용 그렇지 않사옵니다. 아버님의 영을 따를 뿐이옵니다.
왕건 낭자께서 이리 하시니 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이다.
부용 편히 생각하시오소서. 식기 전에 어서 드시오소서.
왕건 허허, 이것 참..... (마지못해 마신다) 낭자도 함께 드실 것 그랬습니다.
부용 아니옵니다. 소녀가 어찌 이런 귀한 것을... 장군께서는 큰 일을 하시는 분이시옵니다. 드시오소서.
왕건 (한참 보다가) 낭자...
부용 예, 장군...
왕건 지금이라도 아버님께 말씀드려 낭자가 하시는 일을 중단하도록 하십시요. 억지로 이렇게 하실 필요는 없소이다.
부용 무엇이 억지라 하시옵니까..? 소녀는 진심과 정성을 다해 장군님을 모시고 있사옵니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왕건 낭자.....?
부용 그럼....
부용이 물러간다. 왕건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쉰다. 그런 왕건의 표정에서....
씬 유장자 방안
유장자가 집사장을 마주해 있다.
유장자 금성에 무사히 내렸어...?
집사장 예, 어르신... 영산강변에 내렸으니 곧 백계산으로 향할 것이옵니다. 아마도 지금쯤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나 싶사옵니다.
유장자 그럴테지... 잘 되어야 할 터인데....
집사장 백제는 지금 신라의 서라벌을 공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훈련과 동원령이 내려져 있사옵니다. 소인이 알아본 금성은 여전히 태평했사옵니다.
유장자 (끄덕이며) 수고했네. 송악의 왕장자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게나.
집사장 예, 어르신...
집사장이 나가고 유장자가 생각에 잠기는데, 부용 모가 들어온다.
부용 모 집사장이 벌써 서남해를 다녀 온 것이옵니까..?
유장자 그렇소이다. 바다 바람이 순풍이라 올 때는 하룻길에 돌아왔구려.
부용 모 (긴장하며) 송악 사람들이 금성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옵니까..?
유장자 허허허, 부인이 몰라도 됩니다.
부용 모 아무리 아녀자라 하지만 우리 집은 물론이고 딸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옵니다. 어찌 몰라도 된다 하시옵니까..?
유장자 딸과 관계가 있다니...?
부용 모 별채에 있는 왕장군을 사위 삼는다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사위 될 사람이 목숨을 걸고 추진하는 일인데 어찌 장모 될 사람이 태평히 있을 수가 있사옵니까..?
유장자 장모...? 하하하.... 부인, 거 장모라는 소리 듣고 보니 괜찮구려.
부용 모 예.....?
유장자 하지만, 그쯤만 알아두시구려. 나라에서도 극비로 하여 추진하는 큰 사업이올시다. 일일이 다 아시려고 하지 마세요.
부용 모 참, 나으리도...?
유장자 그리고 기왕에 우리 사람을 삼으려고 결심을 굳혔으니 때를 보아서 송악의 왕평달 장자를 만나 볼 참이오.
부용 모 (반색을 하며) 그러시옵니까..? 왜 좀 더 일찍 딸아이 문제를 의논하시지 않았사옵니까..?
유장자 이런... 이런....... 모든 것은 기회가 있는 법이오. 그걸 잘 가려서 사람을 만나도 만나야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다. 지금 왕장군이 하는 일만 잘 된다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게요. 그나저나 간 일이 잘 풀어져야 할 것인데....
씬 산길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왕식렴과 변사부들이 오고 있다.
이치 예정보다 걸음이 좀 늦었소이다.
변사부 그렇습니다. 금성과 목포 일대를 자세히 보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군요. 하지만 이제 다 온 것 같습니다.
왕식렴 과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줄 지 모르겠습니다.
변사부 두고 보아야지요.
이들 그렇게 숲길을 넘는다. 저만큼 옥계사 전경이 보여온다.
씬 동 옥룡사 절 마당 안
왕식렴 일행이 절 마당으로 들어선다. 지나치던 동자승 하나가 합장을 하며 묻는다.
동자승 어디서 온 시주님들이시옵니까..?
왕식렴 주지스님 계시는지요..?
동자승 예... 계시옵니다. 따라 오시어요.
이들 동자승을 따라 요사채를 돌아간다.
씬 주지방 외경
주지 (E) 송악에서 오셨단 말씀입니까..?
씬 동 방안
주지가 세 사람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주지 송악의 어느 분이 보내셨습니까..?
왕식렴 도선대사님의 제자이신 왕건장군께서 보내셨사옵니다.
주지 ....... (꿈틀하며) 왕건장군...?
왕식렴 그렇사옵니다.
주지 이곳이 어딘 줄이나 알고 있소이까..?
왕식렴 그렇사옵니다. 백제의 땅이 아니겠사옵니까..?
주지 그런데도 고려국의 사람들이 겁도 없이 이 곳에 들어오셨단 말씀이오..?
왕식렴 저의 형님은 이 절을 세우신 도선대사님의 유발제자(머리를 기른 제자)이시옵니다. 어찌 올 수가 없겠사옵니까?
주지는 잠시 이들을 쏘아보다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무거운 침묵이 정적을 메우고 있다. 주지가 눈을 뜨며 날카롭게 묻는다.
주지 지금 백제와 고려는 전쟁 중이올시다. 아무나 믿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대들은 무엇으로 도선 스님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왕식렴이 품속에서 비단보에 싸여있는 도선비기를 꺼내 놓는다. 그리고 그 보자기를 풀면 책표지에는 선명하게 도선비기라 씌여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무거운 침묵만 오고 간다. 주지는 숨을 삼킨 채 떨며 그 책을 보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지 맞소이다. 이 책은 분명 우리 사문의 어른이신 도선대사님의 글이시옵니다. 오오.....이 귀한 책을 이 미련한 중이 볼 수 있다니....
모두들 .......... (그런 주지를 보고 있고)
주지 (손을 떨며 그 책을 집어든다) 틀림없소이다. 대사님께서 쓰신 책이시옵니다...... (사이).... 허면, 무슨 일들로 오시었소...?
변사부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 왔사옵니다, 스님.
주지 무슨 도움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왕식렴 금성일대를 고려국으로 만들자 온 것이옵니다.
주지 무엇이라...?
놀라는 주지의 표정과 함께 한동안 방안에 긴장이 감돈다.
변사부 스님, 도선대사님께오선 고려국의 왕건장군이 도탄에 빠진 백성과 삼한을 구하실 것이라 예언하셨사옵니다.
주지 ..........
변사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 이렇게 찾아 뵌 것이옵니다.
이치 그렇사옵니다, 스님... 스님께서 저희들과 금성에 있는 호족들간의 자리를 만들어 주셨으면 하옵니다.
주지 ............ (계속 한숨만) ......... 선사께서 공연한 일을 하셨구먼.. 속세의 일은 속세의 사람들이 알아서 하게 놓아두어야 하는 것인데.....
왕식렴 ........?
주지 왕건장군께서는 이 책의 내용을 보셨답니까?
왕식렴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주지 허허허... 그래요? 허면 그대들은 보았소이까?
변사부 주군께서 펼쳐보지 말라 이르시어 그 내용은 못보았사옵니다.
주지가 무심코 도선비기를 펼쳐 본다. 모두들 본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다. 놀라는 왕식렴과 변사부들..
주지 나도 이 비기에 대해 전해들은 것이 있소이다. 도선선사의 예언에 부합하는 자만이 이 속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하시었지요. 빈도 역시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구려. 허허허..... 오늘은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습니다. 잠시 여유를 가져 보십시다. 뒷채에 방을 내어 드릴 테니 좀들 가서 쉬십시요...
왕식렴 도와주시겠사옵니까, 스님...?
주지 돕고 아니 돕고 하는 것은 이미 소송의 소관이 아니올시다. 열반에 들어 계시는 선사께서 정하신 일이 아닙니까..? 나도 제자된 사람이니 그 뜻을 받들 수 밖에요. 가서들 쉬십시요.
모두들 ......... (안도의 빛이다)
씬 동 산사 외경 (밤)
산새 올음소리가 높다. 저만큼 객사에 불빛이 밝다.
씬 동 객사 방안
세 사람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치 참으로 유서가 깊은 절이옵니다. 듣자하니 한때 이곳은 백제의 군사 최승우가 잠시 머물다 간 곳이기도 하답니다.
변사부 최승우라면...?
왕식렴 신라가 자랑하는 삼최의 하나인 사람으로 지금은 백제의 온갖 정책이 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고려로 따진다면 내원과 같은 사람이지요
변사부 허어, 그러나 대단한 사람이로군요.
왕식렴 대단하지요. 백제국에서는 이찬 능환이라는 사람에 이어서 세 번쨰로 높은 대신입니다. 지략이 뛰어나고 학문까지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다 들었습니다.
이치 그렇습니다. 이 사람도 많이 들은 이름입니다. 고려국으로서는 경계해야할 인물이 되겠지요. 자, 밤이 늦었습니다.
잠자리에들 드십시다. 왕식렴 송악에서 많이 궁금해하고들 계실 것인데...
씬 유장자 집 별채 마당
마당에는 몇 필의 말과 장수장, 그리고 수하들 몇이 서 있다.
유금필 (E) 식렴 공자님과 변사부가 옥룡사에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씬 동 별채 안
부용이 시녀와 함께 약간의 안주거리와 술병이 담긴 주안상을 놓고 물러간다. 세 가신이 보고 있다.
유금필 금성까지는 무사히 도착하였다고는 들었는데...
능산 시간으로 보아 충분히 옥룡사에 도착하였을 겝니다.
박술희 주군의 스승님께서 계시던 절이라 들었사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일이 잘 풀리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마는...
능산 주군께서 명하신 대로 수군에 대한 훈련은 은밀하고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사옵니다. 이곳은 어떻사옵니까..?
왕건 예정대로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네. 우리가 자주 만나서 상황들을 점검하고 대책을 차질 없이 세워야 할 것이야.
유금필 하옵고, 주군... 지난번에 저희들이 의견을 나누었던 신라에 관한 일 말이옵니다.
왕건 ........?
유금필 우리가 금성을 공격하면 백제군이 남진을 멈추고 되돌아 올 것이옵니다. 그 때에 그 백제군의 뒤를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세력은 신라이옵니다.
왕건 그랬지. 그 말들을 했었지. 아주 좋은 생각이었어.
유금필 그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신라에 보내놓은 첩자들을 통하여 그곳 사정을 좀 더 알아보고 나서 자네들 중 누군가가 신라로 가야 할 것이야. 그리고 공조를 의논해 봐야지. 신라는 틀림없이 대답을 줄 것일세.
능산 그럴 것이옵니다. 자신들의 땅을 백제군이 빼앗으러 오는데 우리가 그들을 붙잡아 두는 격이 아니옵니까..?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허허허... 신라와 우리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함께 백제를 고립시킨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겠사옵니다.
왕건 ...... (끄덕인다)
유금필 오면서 보니 정주에서 전함을 만드는 공역들이 아주 대단했사옵니다. 도대체 배의 규모가 그렇게 큰 것은 처음 보았사옵니다.
왕건 (각자 잔에 술을 따라 준다) 많은 말과 군수품을 실을 수 있고 수백의 군사를 싫을 수 있는 배를 만들고 있네.
박술희 수, 수백이라 하셨사옵니까?
왕건 그렇다네. 왜 믿기지가 않는가?
박술희 세상에 그렇게 큰배는 듣도 보도 못했사옵니다.
왕건 하하하... 자, 들 들게. 이제 모두 보게 될 게야. 배들을 그 동안 많이 끌어 모았고 짖기도 다 지어가네. 역시 정주의 유장자 어른은 대단한 분이야.
능산 헌데, 주군...?
왕건 왜 그러는가..?
능산 방금 전에 이 주안상을 보아온 낭자는 이곳 유장자 어른의 따님이 아니시옵니까..?
왕건 그렇다네.
능산 아니...? 유장자 어른의 따님이..... 시중을 직접... 드시옵니까..?
왕건 (난처하다) 글쎄 그것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마는....
박술희 (한참 입이 벌어져 있다가) 아니, 주군...? 어쩌다보니 라니요..? 이런 어마어마한 대가집의 따님이 시중을 드는 일이옵니다. 무슨...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옵니까..?
왕건 별다른 뜻...?
박술희 밖에서 알면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유장자 어른은 이 나라 조정에서도 큰 일을 맡고 계시는 중신입니다. 그런 분의 따님이 주군의 시중을 들고 있다면..... 중요한 언약이 없고서야...
왕건 언약이라니..?
능산 술희의 말이 옳사옵니다. 혼인을 약속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처녀가 총각의 시중을 들 수 있겠사옵니까..? 아니 그렇사옵니까..?
유금필 무슨 약속이 있었사옵니까, 주군...? 저희들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게야..? 약속은 무슨 약속....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네. 아무 일도.... 허허, 이 사람들하고는....
모두들 ...........?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왕건 폐하의 막중한 영을 받아 정주에 와 있는 몸일세. 내 어찌 한가로이 처자들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겠는가..?
씬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대전
궁예가 사서를 보고 있다. 그 한쪽에서 종간이 은부와 함께 그런 궁예를 보고 있다.
종간 폐하께서는 한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시옵니다.
궁예 허허허... 무슨 소리... 나야 그저 습관적으로 보는 것이고 내원은 어떠하시오. 아예 책에 파묻혀 살고 있지 않소.
은부 그렇사옵니다. 내원께서 하시는 공부는 참으로 끝이 없어 보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글쎄 그렇다니까...? (가벼운 한숨) 아학사하고만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종간 .............
은부 염려 놓으시오소서.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내원이 어떤 분이시옵니까..? 인품이 워낙 크고 넉넉하여서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가 않는 분이시옵니다.
궁예 그렇긴 하오만..... 헌데, 두 분은 여기 어쩐 일이시오..? 한담이나 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종간 예, 폐하. 그러하옵니다. 실은 두 분 태자님들의 이름을 지어 올려야 하옵는데.... 벌써 삼칠일이 지났사옵니다.
궁예 ......음. 그렇지... 벌써 그렇게 되었구려... 그렇다면 마땅히 이름을 지어야지... 무엇이라고 지으면 좋을꼬.... 내원께서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구려.
종간 태자마마의 대명을 올리는 일이옵니다. 어찌 감히 신이 참여를 하오리까..? 다만, 폐하께서 세상을 구하는 미륵불이시니 그와 관련하여 지으시는 것이 마땅하다 사료되옵니다.
은부 참으로 그렇사옵니다, 폐하.
궁예 허허, 부처님과 인연을 지으라...? (한참 생각하다가) 하긴..그래야 하겠지. 뭐가 좋을까? 짐이 미륵이라면... 장자는 관음이 되어야 할 것이고 차자는 아미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 ...........
궁예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야겠어. 그렇게 하면 되겠구먼...(고개를 끄덕이며) ......청광과 신광....
두 사람 ..........?
궁예 어떠하오..? 청광과 신광이..? 맏이는 청광이고 둘째는 신광이야. 이 혼탁한 세상에 밝은 빛이 되라는 의미지
종간 폐하, 두분 태자마마의 존함으로는 참으로 신비스럽고 귀하신 뜻이 담긴 것으로 보옵니다. 너무도 훌륭하시옵니다
궁예 하하하.... 경들도 좋다 하니 그렇게 하십시다. 청광과 신광이라, 하하하하.. 거 짖고 보니 아주 괜찮은 이름이구려. 황후전에 알려주도록 하시오
두 사람 예, 폐하.... .
궁예 그리고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이제는 나의 두 아들을 만나봐도 되겠소이까..?
종간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폐하..? 그리하시오소서.
궁예 예에 어긋나지 않겠소이까..?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어서 납시오소서.
궁예 허허허허..... 고맙소이다, 내원. 나는 내원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를 잘 압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미륵이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으신 겝니다. 아니 그렇소이까..?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폐하를 영원히 거룩하고 위대한 부처님으로 모시기 위해 신은 이 목숨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살펴 헤아려 주시오소서.
궁예 어찌 모르겠소이까..? 내가 어찌 내원을 모르겠소이까..? 허허허,청광과 신광이라... 청광과 신광이라....... 자, 그렇다면 나는 우리 아들들을 보러 가야겠소이다. 핫하하하하.....
씬 궁궐 길
내관들을 앞세우고 궁예가 황후전으로 가고 있다. 그 위로 해설이 깔린다.
해설 청광과 신광. 궁예의 두 아들 이름이다. 스스로를 미륵으로 자처했던 궁예는 두 태자들의 이름마저 불교식으로 지었던 것이다. 장자를 청광보살이라 칭한 것은 관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차자를 신광보살이라 칭한 것은 아미타에 비견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것은 바로 미륵을 추존하고 있었던 법상종파에 궁예가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하튼간에 장자를 관음보살의 상징인 청색으로 불러서 청광이라 한 것은 자신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등장할 것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이 두 아들은 훗날 궁예에 의해 목숨을 잃게되는 비운의 운명에 처해지고 만다.
씬 황후전
제조상궁과 슬이가 태자들을 안고 즐거워하고 있다. 연화는 그런 두 사람을 힘없이 지켜본다.
슬이 태자님들... 자 어머님을 보시어요. 여기 계신 분이 두 분 마마의 어머님이신 황후마마이시옵니다. 자, 어서요...
제조상궁 호호호.... 마마, 말을 알아들으시는 것 같사옵니다.
연화 ...........갓난아이가 무얼 알겠는가..? (싫지 않은 듯 아기를 본다)
슬이 마마, 아기씨들이 이렇게 건장하시옵니다. 세상에 듬직하기도 하셔라.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내관 (E) 황제폐하 납시오
그러자 모두들 황망히 일어선다. 문이 열리고 궁예들이 들어선다. 진내관과 대전내관들이 좌우로 갈라서고 제조상궁이 옆으로 비켜선다.
연화 어서오시오소서, 폐하.
궁예 (다가가 연화의 손을 잡는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소, 황후...
연화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참으로 어렵고도 큰 일을 하셨소이다. 짐의 아들을 둘씩이나 낳아주니 이 나라 사직을 위해 이보다 큰 기쁨이 어디 있겠소이까..?
연화 .........
궁예가 다가가 두 아이들을 본다. 참으로 신기한 표정이다.
궁예 허허허... 너희들이 짐의 아들이란 말이지...? 이 아이가 큰 아이인 모양이오..?
연화 그러하옵니다.
궁예 허허허.... 이 아이가 간발의 차이로 아우가 되었구먼...?
연화 ............
궁예 잘들 생겼도다. 이보시오, 황후, 참으로 잘생겼어요. 내 이름을 지었소이다. 큰 아이는 청광이고 둘째는 신광이라 하였소이다. 모두가 세상을 구할 부처님을 뜻하는 것이오.
연화 예, 폐하...
궁예 자 청광아, 신광아...? 이 아비 좀 보아라.. 이 아비 좀 보아...?
어린 아기들이 웃는다. 궁예는 참으로 즐거운 표정이다. 모두들 따라 웃는다.
궁예 어서어서들 자라거라. 쑥쑥 자라거라. 그리하여 이 아비와 함께 천하를 호령하러 가자꾸나. 온 천지를 다 정복하여 불국정토로 만들자꾸나. 하하하... 청광아, 신광아... 그리하자꾸나.....하하하하...
씬 강장자의 집 외경
안에서 왁자한 웃음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씬 동 사랑
강장자와 강씨 문중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다.
강장자 자자.. 모두 즐겁게들 드십시다.
모두들 술잔을 들어 마신다.
강장자 오랜만에 우리 문중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습니다, 그려. 황후마마 대례 이후 처음인가요?
문중1 예예.. 그렇습니다요, 어르신..
강장자 황후마마께서 태자마마를 생산하셨어요. 훗날 그 분들이 황제의 자리에 등극을 하시는 날엔 우리 문중은 명실공히 황실의 외가가 되는 것입니다. 황실의 외가예요. 허허허허..
문중2 참으로 우리 신천 강씨 가문에 광영이 넘치는 일이옵니다.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겠사옵니까?
강장자 허허허.. 두고보십시오. 이제 우리 문중은 이 나라 최고의 가문이 될 것이오. 그리고 우리 신천 역시 평주나 송악, 정주에 못지 않은 고을이 될 것이외다. 아니 그들 고을보다 더욱 잘 살고 부강한 고을이 될 것이외다. 아니 그렇소이까?
문중1 그렇사옵니다. 그 동안 작은 고을이라고 해서 알게 모르게 설움을 겪었는데 이제야 어깨를 피고 살 수 있겠사옵니다.
강장자 특히나 젊은이들에게는 많은 길이 열리게 될 것이오. 중앙 관계로 진출하여 모두다 출세를 할 것이예요. 우리 젊은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많소이다.
젊은이들 .....(미소)
문중2 국부께서 젊은 사람들을 이끌어 주시오소서. 황후마마께도 인사를 시켜 주시구요.
강장자 아 여부가 있겠소이까? 그리 해야지요. 암요.. 허허허... 자 자네들도 한 잔씩 마시게.. 이제 자네들도 어깨들을 펴고 거리를 활보하게나. 암, 그리들 살아야지. 그렇고 말고....
호기로운 강장자의 모습에서..
씬 황궁 외경
종간 (E) 세간의 동정들은 어떠한가..?
씬 내원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 있다. 종간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둡다.
종간 별다른 일들은 없는가..?
은부 예, 내원어른.... 특별한 징후는 없사옵니다마는.. 굳이 따지자면 몇 가지....
종간 말해 보게.
은부 송악은 요즘 정주에 가 있는 왕건장군의 뒤를 대느라 분주한 것 같사옵고...
종간 응.... 참 그 정주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은부 벌써 많은 배들을 사들였사옵고 상륙전에 쓸 큰 전함을 많이 건조하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특별히 보안을 잘 취해야 할 터인데...
은부 그리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밖으로는 상선을 건조한다고 소문이 나있사옵니다.
종간 (끄덕이며) 그래야지. 그 많은 배들을 끌어 모으고 만들자면 엄청난 재원이 소요될 것인데... 유장자 그 사람도 참으로 대단하이.
은부 물론 그 사람 개인의 재력도 엄청나옵니다마는 주변의 도움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주변의 도움..?
은부 예, 내원어른... 송악에서도 상당부분을 지원하고 있고 또, 패서계 일대의 호족들이 은밀히 모금을 하여 돕는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긴장하며) 호족들이...?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예사롭게 보지 말고 감찰을 잘 하게나. 어찌되었든 저들이 별도로 힘을 모으고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세. 아지태라는 미치광이가 나타난 이후 이곳 패서계의 호족들이 동요하고 있네. 잘못하면은 폐하를 위해 좋지 않은 세력들이 나타나게 되네.
은부 알겠사옵니다.
종간 왕건장군이 여전히 정주에 있다 그 말이지..?
은부 예, 내원어른... 왕장군의 수하들이 이미 백제땅으로 건너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종간 음.... (끄덕인다) 그 밖에 다른 일은...?
은부 신천의 강장자가 요즘 연일 문중 사람들과 어울려 잔치를 벌리고 있다 하옵니다.
종간 허허허... 그럴 테지. 그 사람도 이제 서서히 권력에 맛을 알아가는 것이야. 그거야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아지태는 어디에 있는가..?
은부 지금 폐하와 함께 대전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대전에...?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또.... 무슨 요설을 놓으려고...?
은부 그러게 말이옵니다. 그자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치옵니다.
종간 큰일을 낼 자야... (도리질을 한다) 큰일을 낼 거야....
씬 대전 밖 복도
내관들이 서 있고 궁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대전 안
궁예 (웃으며) 아이들의 아비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오. 예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일이거든... 세상에, 짐이 어찌 승려로서 아들을 볼 생각을 했겠소..?
아지태 평범한 승려라면 그렇게 생각했사옵니다마는... 황제폐하시옵니다. 대를 이음은 마땅한 일이시옵니다.
궁예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소. 요즘은 매사가 다 즐겁소이다.. 자식이 둘 이나 생겼고 우리의 영토는 계속해 넓어지고 있고...
아지태 게다가 왕건장군이 세상을 놀라게 할 대 계획을 추진 중에 있사옵니다.
궁예 하하하... 그렇소이다. 어디 그뿐이오. 곧 왕장군의 일이 끝나면 대대적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할 것이고, 나라이름을 바꾸고 도읍을 옮길 것이오.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그 철원에 한번 다녀오고 싶소이다.
아지태 말씀하셨듯이 왕장군의 일이 끝난 다음에....
궁예 허허허... 천하의 아지태 학사도 이제는 눈치를 보는 모양이오..?
아지태 그런 것이 아니오라. 내원과 신료들의 반대가 워낙 극심하온지라.. 좀더 때를 보시고 가심이...
궁예 그럴 것 없소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오. 우리 함께 가 보십시다.
아지태 .......
궁예 참, 철원에 가기 전에 우리 정주에 한번 들려봅시다. 내 아우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격려라도 해 주어야 할 것 아니겠소..?
아지태 마땅하고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궁예 한동안 궁궐에만 머물러 있었소이다. 전장터를 떠돌아다니던 이 사람이 말이오. 이삼일 내에 우리 함께 가 보십시다.
아지태 예, 폐하.. 그리 하겠사옵니다.
궁예 내군의 은부장군도 데리고 가십시다. 짐의 신변을 보좌하는 사람이니 몰래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지태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그런 궁예의 얼굴에서... 디졸브
씬 유장자 집 외경
왕평달 (E) 장자어른께서 참으로 큰 일을 하고 계시옵니다.
씬 동 집 별채 안
왕건과 왕평달, 마사부, 유장자가 함께 해 있다.
왕평달 여러 가지로 소식을 다 들었사옵니다. 조카를 위해 그토록 힘을 써 주시니 참으로 고맙사옵니다.
유장자 왕장군의 일은 나라를 위한 일이올시다. 왕장군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마사부 허허허, 그렇사옵니다.
왕건 물심양면으로 아끼지 않고 도와주시어 늘 미안한 마음뿐이옵니다.
유장자 그런 소리 마시게. 송악에서도 많은 재물을 댔고 또, 광평성의 박지윤 장자를 비롯해 많은 호족들이 은연중 힘을 보태고 있네. 모두들 이번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야.
왕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유장자 지금 조정은 보이지 않는 알력으로 매우 시끄럽네. 아지태라는 자와 내원이 부딪히고 있는 것 같아.
왕평달 저도 그리 듣고 있사옵니다.
유장자 뿐만 아니라 내군의 은부장군이 많은 사람을 풀어 세간의 동정들을 염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왕건 그럴리가요..?
유장자 그래서 많은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패서지역의 호족들이 힘을 모아 당여를 만든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내군의 은부장군이나 내원의 종간이란 사람은 능히 그리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사부 그렇습니다.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유장자 그 사람들은 특히나 왕장군을 늘 경계해온 사람들이올시다. 더더욱 조심들 해야 할 겝니다. 그나저나 백계산으로 간 사람들은 어찌하고 있는지 모르겠소이다. 지금쯤 뭔가 일이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왕건 기다려 보는 수 밖에요.
씬 길 (낮)
옥룡사 주지와 왕식렴 일행이 오고 있다.
이치 스님,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
주지 허허.. 죽을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니 안심들 하시구려.
변사부 길을 보니 목포로 가는 것 같사옵니다마는....
주지 허허.. 이 쪽 길을 꽤 아시는 모양이구려.... 그렇소이다. 목포로 갑니다.
모두들 ..........?
주지 그대들이 잘 짚은 것이오. 금성엔 지금 내분의 조짐이 있소이다. 나라를 일으키던 때의 명분이 퇴색해 버린지 오래지요. 백성들의 형편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장자들도 거듭되는 전쟁의 비용을 대느라 지쳐있소이다. 하기는 다른 나라들도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여긴 좀 더 심합니다.
왕식렴 저희들도 이미 그런 것들을 파악하고 있었사옵니다. 그 때문에 이곳으로 건너온 것이옵니다. 목포라면은 장자 오다린이라는 사람 댁으로 가는 것이옵니까..?
주지 허허... 알고 계셨구려. 그렇소이다. 그 먼 곳에서 어찌 이곳 형편을 그리 소상히 잘 파악하시었소?
왕식렴 삼한 곳곳에 아니 가는 곳이 없는 장사꾼들이옵니다. 장사꾼들에게는 국경은 존재하지 않사옵니다.
주지 허허허.. 딴은 그렇겠구려.
변사부 오장자 댁에는 얼마나 더 가야 하옵니까?
주지 아직 한참 길이올시다...... 자 천천히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사라져 가고...
씬 오다린의 염전
여전히 사람들이 화염을 굽느라 바쁜 표정들이다. 그 한켠에 오다린이 도영과 함께 주변을 보며 오고 있다.
오다린 도영아....
도영 예, 아버님..
오다린 한때는 말이다. 사람들이 여기 소금을 일러 하얀 금이라 불렀단다. 금 말이다.
도영 소금이란 본래 귀한 것이 아니옵니까..?
오다린 그러니까 금이라고 하였지. 사람들은 이것이 없으면 살수가 없단다. 이것은 서해에서만 나오지. 동해 쪽에서는 소금을 볼 수가 없어.
도영 알고 있사옵니다.
오다린 내 이번에 이 많은 재산을 다 빼앗기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역시 재물보다는 세상을 다스리는 힘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야.
도영 ............
오다리 즉, 장사꾼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다. (주먹을 불끈 쥐며) 권력 말이다.
도영 ........?
오다린 지금 같은 난세에는 더욱 그 생각이 절실해 지는구나. 옛날 장보고 장군께서는 막대한 권력과 엄청난 부를 함께 가지고 계셨느니라. 기적 같은 힘으로 해상을 제패하셨고, 일본에 무역사절을 보내시고, 당나라에 견당매물사(당나라에 파견한 무역사절)를 보내시면서 삼각 무역을 통해 엄청난 세상을 만드셨지.
도영 우리 선조들께서도 장보고 장군과 함께 뜻을 같이 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오다린 아 그렇다마다.... 그 땐 정말 대단하셨단다. 장군의 막하 부장으로 계시면서 대외에 많은 일들을 관장하셨지. 그러한 충신이 둘이 있었다고 전해져 온단다.
도영 그렇사옵니까..?
오다린 암... 백여 년이 넘은 일이라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마는 당나라 신라방에서부터 함께 해 온 가신들이지.
도영 ...........
오다린 바로 우리 조상님께서 그 두분 중 한 분이시니라.
도영 그렇사옵니까..?
오다린 장군께서 허망하게 살해당하시고 청해진이 부서져 사라지고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 터를 잡으셨지. 그런데 이 아비 대에 이르러서 또 이렇게 가업이 무너져 내리는 구나. 안타까운 일이다. 너무 허망해. 그리고 억울하고....
도영 소녀가 있사옵니다, 아버님...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어요.
오다린 허허허... 그렇기는 하다마는... 하기사 이 모든 것이 어째 완산주에 있는 견훤황제만의 잘못이겠느냐..? 황제를 모시는 신료들이 잘못하니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야. 그렇지 않느냐..?
도영 ............ (미소만)
씬 백제궁 외경
씬 동 궁궐 최승우의 관사 (서재)
최승우가 서책을 넘기고 있다. 그는 독서에 빠져 능환이 들어오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능환이 인기척을 낸다.
최승우 아니, 이찬님이 아니시옵니까? 어인 왕림이시옵니까?
능환 차 한 잔 나눌까해서 왔네. 어떤가 괜찮겠는가?
최승우 허허허. 이를 말씀이시옵니까? 준비시키겠사옵니다.
능환 서두룰 것 없네....... 그보다도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이찬어른...
능환 많은 생각을 해보았네마는.... 사실 그간 우리의 관계가 좀 서먹서먹했던 듯 싶네. 사실 우리 사이는 좋았지 않았는가..?
최승우 .......... 물론이옵니다.
능환 머지않아 대병을 이끌고 전장터로 가게되네. 누구보다도 우리가 힘을 합치고 뜻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최승우 송구하옵니다. 소생이 먼저 찾아뵈었어야 하는 것인데......
능환 아니야, 아니야. 일의 시초가 자네의 의견을 무시했던 나의 속좁음 때문이었어.
최승우 다 털어버리면 그만이옵니다. 어떠하십니까? 요사이 태자님들의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고생이 크실 줄 아옵니다.
능환 뭐 예전에 비하면 고생이라 할 수 없지. 보게나. 백성들은 안정하고 외국과의 교역도 번성하고 있어. 이제 우리 백제국이 반석 위에 오른 듯 하네.
최승우 허나, 삼한이 통일되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능환 동감하는 바일세. 무엇보다도 군사의 조율을 담당하는 자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지.
최승우 혹 군사의 일을 소인이 맡은 것에 대하여 서운함을 느끼시는 것은 아니시온지요?
능환 허허허. 없다고 한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될 게야.
최승우 ............. (괜히 미안하다)
능환 괜찮네. 나는 대야성 전투에서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어. 그래도 아직 벼슬을 하는 것이 다행이 아닌가?
최승우 어인 말씀을..... 모든 것이 다 꼭 이찬님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사옵니다. 기본적인 전략에 있어서 대야성을 무리하게 취하려 한 것이 잘못된 것이었사옵니다.
능환 글쎄... 나는 아직도 먼저 대야성을 취하고 곧바로 서라벌로 가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네. 대야성은 신라의 관문이야. 어렵더라도 그 곳만 취한다면 신라는 통째로 무너질 것일세.
최승우 허허허, 너무 생각이 급하시옵니다. 우리의 상대는 궁예이지 쓰러져가는 신라가 아니지 않사옵니까?
능환 ............. (언짢다)
최승우 신라는 그냥 놓아두어도 무너질 것이옵니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우리가 가야 할 길에 혼란을 일으킨 다면 나라에 그보다 큰 누를 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능환 누를 범한다...?
최승우 그렇다는 얘기옵니다, 이찬어른, 허허허....
능환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하... 우리는 참으로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네. 처음에는 참으로 뜻이 잘 맞았는데 ....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꼬.....? 나라에 누를 범한다..? 나라에 누를...?
최승우 소생이 결례되는 말씀을 했나 보옵니다. 이찬 어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환 되었네. 이럴려구 자네를 찾은 것은 아니였는데..... 그만하세나.
최승우 이찬어른...?
그러나 능환은 대답 없이 싸늘하게 돌아선다. 당황하는 최승우의 얼굴에서....
씬 대전
견훤과 고비가 금강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그 옆으로 박영규와 공직이 앉았다.
견훤 보시오, 부인. 아 이 녀석의 장대한 기골이 짐을 닮은 것 같지 않소이까?
고비 호호호. 폐하께서도....... 아직 갓난아이이옵니다.
견훤 두고 보시오. 이 녀석은 분명 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단한 재목이 될 것이오. 아니 그런가, 사위?
공직 하하하. 그러하옵니다, 폐하.
견훤 보면 볼수록 짐을 빼다 박은 것 같단 말이야.
고비 이제 이리 주시오소서. 신료분들께서 계시지 않사옵니다.
견훤 (금강을 주며) 자, 데려가시구려. 요즈음엔 저 아이 보는 재미에 살 맛이나네 그려. 그래, 훈련 상황은 좀 어떠한가?
여전한가..? 공직 예, 폐하... 나날이 향상되어가고 있사옵니다. 출병을 하시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접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견훤 음............ 음, 그래야지... 신라는 어떠한가..?
공직 서라벌의 상황은 한심한 지경이옵니다. 효공왕은 주색에 빠져 헤어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옵니다. 간혹 충직한 노대신들이 진언을 하여도 듣기 싫다하며 그들을 궐에서 쫓아내고 있다 하옵니다.
견훤 저런, 저런..... 그런 신라에게 우리가 패하였다니.... 생각할 수록 기가막히고 원통한 일이야. 헌데 오늘따라 이찬과 파진찬이 아무도 안 보이는 군...?
공직 입궐하다 들으니 파진찬께서는 궐안 서재에 계신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틈만 나면 책이나 보고 차나 마시고 참 그 사람들 신선처럼 산단 말씀이야..? 나하고는 맞지가 않아. 그래, 이번에는 고려쪽의 이야기를 하여보세, 그쪽은 어떠하다든가..? .
박영규 지금 송악은 아주 시끄럽다 하옵니다.
견훤 시끄러워...? 왜...?
박영규 아지태라는 청주인 때문에 온 황궁이 떠들썩한 모양이옵니다.
견훤 아지태라.....?
박영규 예. 그렇사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아지태가 궁예왕을 꾀어 나라 이름을 바꾸고 천도를 한다하옵니다.
견훤 천도...? 나라이름까지 바꿔...? 왜, 무엇때문에....?
박영규 그러게 말이옵니다. 그 일 때문에 조정의 많은 신료들이 술렁거리고 특히나 궁예대왕의 기반이 되고 있는 패서지역 호족들이 걱정이 많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구먼.. 우리에게 있어서는 나쁜 일은 아닐세 그려. 우리가 대군을 몰아 신라를 치는 동안 저들은 저희들끼리 물고 뜯게 하세나. 우리가 마음놓고 신라를 치게 말씀이야, 허허허허.....거 궁예왕이 사람을 아주 잘못 만난 모양이로구먼. 허허허...
씬 길(밤)
궁예가 평복차림으로 아지태와 함께 가고 있다. 은부와 내군의 염상, 금대, 장일이 궁예를 호위하고 있다.
궁예 이보시게 은장군.
은부 예, 폐하.
궁예 그대는 오랜 세월 내원과 참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야. 그렇지?
은부 .....예... 그러하옵니다만...
궁예 짐은 송악을 떠나 철원으로 환도를 할 생각이네. 헌데 내원은 극구 반대를 하고 있어. 자넨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은부 ........?
아지태 ........?
궁예 내원은 참으로 총명하고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네. 그러나 그것도 때떄로는 너무 심하여 그 총명함을 가리우게 되지.
은부 폐하, 내원은 폐하의 종이옵니다. 폐하에 대한 충성밖에 모르는 분이옵니다. 오직 폐하를 위한 충정만을 생각하시옵니다.
아지태 그렇사옵니다, 폐하. 내원은 훌륭한 학자분이시옵니다.,
궁예 그걸 내가 어찌 모르겠소. 허나 너무 지나쳐.
은부 내원은 지극히 현실적인 분이옵니다. 사리판단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분이옵니다. 그 분의 말을 부디 흘려듣지 마시오소서.
궁예 허허허.. 이제 완전히 내원의 사람이 되어버렸구먼... 하지만 이 나라에 내원만 있는 것이 아닐세. 짐은 그들 모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야.
아지태 ............
은부 ........... 살펴 헤아리시오소서, 폐하....
궁예 물론일세. 나는 다 보고 있네. 내원은 너무 조심스럽고 완벽주의네. 그러다보면 때로는 큰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있지.
은부 ..........(놀라서) 폐하...?
궁예 아무리 내원이라 하여도 끝까지 짐의 가는 길을 막는다면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네. 그 동안 짐은 너무도 많은 것을 양보하여 왔네.
은부 .............. 폐하?
아지태 .......... (미소)
궁예 너무 많이 양보하여 왔어. 내원에게 말일세.
은부 ...............(충격이다) 폐하...?
궁예 대 제국을 이루는 일일세. 이 일에는 누구도 장애가 되어서는 아니되네. 내원에게 짐의 말을 전해주게. 은장군도 이 일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야.
은부 폐하.................
<50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