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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농장(2011년 8월 4일)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때 부터 소를 키우셨다.
지금 내 나이 사십여덟. 현재 소 농장엔 육십 여섯 마리의 소가 있다.
언제부터 늘어 났는지 모를 소들
내가 시집 오기 전까지는 늘 한 마리의 소 한마리의 송아지 뿐.
아버지는 소를 언제부터
키우셨는지도 모른다.
아마, 할아버지께서 키우시던 소를 물러 받아서 키우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는 한 마리의 소, 한 마리의 송아지 밖에 없었는데
육 남매 공납금을 송아지를 팔고 또 팔고 또 팔고 해서 마련해 주셨는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소를 팔면 다시는 사기 어렵다시며 절대로 소를 팔지 않으시고
송아지만 팔아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곤 하셨는데
돈 없다고 공부 하지 말라고 만류하신 엄마를 설득 시켜 공부 시켜주신 아버지.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큰소리로 아버지, 아버지 하고 소리쳐 진다.
하늘을 보며 눈물을 삼킨다.
왜일까?
이제 아버지는 얼마 사시지 못할 것 같은 예감
지금 연세 만 73세
몰골만 남으신 아버지 모습이 더욱 더 생생하기 때문일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심사,
먹을것 입을것 아껴 가며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농사 지은
쌀, 감자, 옥수수, 고추, 참기름,들기름, 콩,미싯가루........
제 다 갖다 주시던
아버지 안 계시면 누가 갖다 주실까?
엄마, 허리 휘어진 엄마는 아버지 안계시면 무거운 물건 아무것도 들 수 없으실 것만 같은 마음,
점점 늙어 가시기 때문에 허리는 더 굽으실 것이고 힘이 없으지시겠지.
아버지도 아버지이시지만
아버지 돌아 가시면
엄마는 어떻게 사실까?
무서움을 많이 타시는 엄마,
늘 아들, 아들만 생각한다고 딸들이 구박을 주기도 했지만 정성 들인 탓인지 역시 아들이 잘 하는것을 보니 마음이 든든 하다.
남동생 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남동생이 잘 하고 있는데도 조금만 더 잘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자식된 도리에서 그랬을 것이다.
마침 남동생이 잘 살아 주어서 든든 하기만 하다. 아버지도 든든 하신가보다. 1남 5녀
늘 어린애 같았던 남동생이 어느듯 색시를 얻어서 떡 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쑥 낳아
친정 부모님을 더욱더 든든하게 해주니 이토록 고마울 수가?
나는, 늘 못했다는 생각만 든다.
아버지 맛있는 것 사드릴려고 하면 집에서 먹고 오셨다고 마다 하신다.
내가 식당에 일해주고 받을 것 있다고 하고
밥을 사드릴때면 (보쌈과 돌솥밥.짜장면, 볶음밥등) 이렇게 맛난 것 처음 먹어 보셨다는 엄마,
아버지는 입 다 물으시고 흐뭇해 하시는 듯 한 모습이 생생하다.
소고기 돼지 고기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려고 하면 돈 들어 간다고
안 가실려고 하시는 부모님.
엄마는 만만한 둘째 딸인 나를 보고 아들 돈 쓰게 한다고 나 보고 가지 말라고 하신다.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모두 자식 생각한다는 마음에 이해 할려고 노력한다.
딸, 아들 손자 손녀가 다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드시는 엄마,(못말리는 우리 엄마)
나 라도 좀 잘 살면 한턱 쏠텐데.
남편이 쏠려고 했다는 말만 들어도 좀 고맙기도 했지만, 혹시 냈더라면 우리는 몇달 동안 헉헉 거렸을 것이다.
가난이 죄구나.
그래도 마침, 남동생이 잘 살아 주니 한 없이 고맙기만 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사는 남동생을 생각을 하니 기운이 난다. 어느새 눈물이 말랐다.
그래. 울지 말고 웃어야 겠지. 좋은 것만 생각해야지.
아버지 병 걱정에 온통 무슨 약을 쓰면 될까?
고민끝에 갑자기 상황버섯이 암이 좋다고 들었던 생각에
영주에 아는 선배님께 전화를 했다.
상황버섯 먹으면 어떨까요.
"병 증세가 어느 정도 인데"
잠시. 말 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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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장 (풍기 인삼) 생수에 조금씩 타서 드시게 하면 좋다고 하신다. 눈이 번쩍 떠인다.
당장 그렇게 해 드리고 싶었다.
오늘8월 8일 다시 병원에 가시는날(복부 물을 빼신다나. 다시 피검사를 하신다나.아버지는 간에 염증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1시 30분
아참, 오늘 아버지 남동생과 서울 아산 병원에 가시는 날이지
어제 집에 갔다 올 걸 후회 스럽기만 했다.
어제 사실 갈려고 황도를 사 두었는데
어영 부영 하다가 그만
아니, 차가 없어서 못갔다.
버스 타고 갈려고 하다가 왠지 좀 덥고 내 몸 도 자꾸만 깔아 앉고 해서 머뭇 머뭇하다가 그만, 남편도 바빠서 늦게 들어왔고
병원 검사 결과 염증이면 좋으련만, 내가 대학교 다닐때 부터 간이 나쁘다고 하셨는데 벌써 2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모두 그냥 꿈이기를 바랄 뿐이다.
웃음 치료,아니면 절에 가서 요양하는 방법, 모든 채소 웰빙 먹기,
녹음기를 사서 좋은 얘기 듣게 해 드리는 방법,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 엄마는 잠시 노시는 것을 못 보실것인데.
아버지께서 절에 계실려고 하실까?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가실려고 하실테지.
남동생이 병명을 아버지께 알렸을까?더 심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무서워서 묻기도 좀 그렇다.
'소식 오기만을 기다릴까? 아니 그래도 동생 혼자 병원에 아버지 모시고 갖다 오느라 고생 많았는데 내가 물어 봐야 겠지.
무슨 말을 할까? "덜컥 겁이 난다.
혹시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넷째 여동생 난희 한테 전화를 해 봤다. 병원에 갔다가 차 탈려고 한다고 했다.
아버지 어때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약 타 가여,피 검사 하고 다음에 또 병원에 가서 약타면 된데"
6시쯤 언니 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전화 해 봤나 언니가 물어 왔다.
응, 약 타 온 얘기만 하던데
좀 전에 통화 했는데
~
밖에 못 사신데
나는 말문이 막혔다.
??
언니는 울먹인 목소리로
엄마한테 말씀 잘 드려 절대로 일시키지 말라고
엄마한테 아버지 병명 얘기 했더니
큰소리로 술 담배 피우지 말아야 한다시며 아버지를 무척 원망하며 그토록 미워하는 것같더라며 속상해 하는 것이었다.
난 오히려 언니에게 엄마의 속 마음은 진심이 아닐것이라고 얘기 했다.
난 많은 생각을 해 봤다.
머리가 복잡하다.
서울 세라 세영이한테 모시면
밥을 잘 못드시겠고
우리집에는 시어머니땜에 못 모시고
요양원을 알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가실려고 하실까?
절에서
조용히 새소리,물소리 들으시며 계시는것이 어떨까?
김용사 절에 전화를 했다.
100일기도 하시는 분이 있어서 방이 없다고 하신다. 100일 뒤에는 된다고 하셨다.
지금 당장필요한데.
인진쑥과 홍삼 원액이 좋다고 하는데.
홍삼 진액45,000원을 주고 샀지만 드릴수가 없었다. 만일 드렸다가 병이 악화되면 형제들이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는 생각에
다시 한번 생각 해 봤다. 고개가 흔들어 진다. 지금 어차피 얼마 못사시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인데 시도 해볼까?
어차피 시한부 인생인것을
택배왔다고 전화를 받았다. 나의 아지터인 태극당에 갖다놓으라고 했는데 태극당에서 전화가 왔다. 태극당언니 작은시어머니께서 간 환자에게 홍삼 먹이면 큰일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더욱더 겁이 났던 것이다.
받아 놓았다는 소식이 왔다.
엄마, 아버지는 새벽6시에 우리집 입구로 오셨다. 엄마는 발가락을 다쳤다시며 침을 맞으려 오셨다. 한창 자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려서 벌떡 일어나 폰을 보았더니 아버지라고 적혀 있었다. 예, 아버지. 나다 집앞이다.
아침에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이야.
거실에 혼자 잤으니 망정이지. 남편이 전화벨을 들었더라면 웬 새벽에 전화야고 인상을 찡거렸겠지. 평소 7시에 일어 나는데 부모님 덕분에 일찍 일어 났다.
침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시어머니 때문에 집에는 들어 오시라는 말씀도 못드리고 차 안에서 침을 놓았다. 엄마는 애기 발가락이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에헤이. 왜 이래. 어쩌다 이랬어.
헬스 기계에 올라 가다가 그랬어. 풍양에 새벽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침을 못 맞고 왔어.
나는 구침을 꺼내 힘껏 찔렀다. 여러 곳에서 시커먼 피가 나왔다.
엄마는 연신 감탄을 했다. 피가 퍽석 나오네. 아이구, 시원해라. 네 침이 이렇게 시원하다.
흐뭇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선 하다. 침을 다 놓고 아버지를 놓아 주었다. 오줌이 자주 마렵다고 하셨다. 다리로 침을 쥔 내 손이 갔다. 오줌 소태에 좋은 침을 놓았던 것이다. 목을 좌우로 돌리시고 목에 침을 놓아 달라고 하신다.
또 한데 꾹 놓아 드렸다. 아무튼 내 마음은 편안했다.
침을 놓아 드리고 나니 돈 30,000원을 주셨다. 이건 왜요. 했더니 받아 라고 하셨다.
에공, 침은 공짜로 놓으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효과 보실려고 안 받을려고 하는 딸을 던져 주시나보다. 그냥 못이긴듯 받아 두자. 그 돈으로 나는 황도를 사고 요플레를 사서 아버지 갖다 드려야 겠다고 생각 했다
지난 번 집에 갈때 황도와 요플레 사 드린 것 다 드셨겠지.
2011년
8월21일
친정 집에 가고 싶다.
침 놓아 주어야 하는데
차가 없다. 남편과 저녁에 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침을 상주 향청 사무실에 두고 안가지고 왔다. 그래서 내일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남편을 꼬셔서 가야 겠다. 남동생을 시킬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갖다 오는것이 좋을 듯 싶다.
부산 제부가 며칠전에 다녀 왔다고 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버지 돌아 가시면 엄마 옆에 누가 있어 주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고맙기만 했다.
남편은 약해서 농사도 못 지을 것이다.
그냥 도와 주는 것은 되지만 도저히 생각도 못할것 같다.
10년후 남편이 퇴직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쩌면 나는 아들 딸 애기 돌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서울로 함창으로 퇴강으로 왔다 갔다 하면 되겠지.
아버지의 힘이 되어주는 소들
아버지 돌아 가시면 저 소들은 누가 먹이를 주지.
울 엄마도 많이 힘드실텐데.
울 아버지 저 소들땜에 쉽게 빨리 돌아 가시지 않으실꺼야.
그래. 희망을 가지고 웃도록 하자.
소야, 소야, 제발 우리 아버지 안 아프게 해 다오.
너희들의 아버지 강하신 아버지 쉽게 떠나지 않으실거야. 그치.
내가 자주 못 가니까? 너희들이 울 아버지 웃겨서 엔돌핀(다이돌핀=엔돌핀 보다 훤씬 좋은)돌리게 해다오.
나는 믿는다. 너희들을 믿는다.
나의 친구였던 소들아, 내 마음 알제.
2011년 음력 11월 6일 아버지의 기일
12월 1일 성모병원에서 저녁 9시 45분에 맥박이 멈추셨다.
남동생의 누나야 아버지가 위독하셔.응, 그래~~설거지하든 것을 멈추고 함창에서 버스를 타고 성모병원으로 달려 갔다.
가슴이 떨려왔다. 금방이라 도꼬꾸라질듯했다.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호흡기를 꼽으신 아버지의 병실로 달려 갔다.
아버지는 내 손은 꽉 잡으셨다. 호흡기가 꽂혀서 아무말씀도 못하시고 눈으로만 말씀을 하시는 듯 했다.
"너만 믿는다.모든것."하시는 듯 했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무언의 말을 서로 나누었다.
면회시간이 끝이나서 밖에서 가족들과 얘기하고 다시 들어 갔더니 아버지는 주무시는지 눈을 감으신채 눈물 한방울이 맺혀 있었다.
울컥, 목이 꽉메였다.
9시 45분 쯤 맥박의 그래프가 멈추고 숫자가 엄췄다.
간호원한테 맥박기가 빠졌나와요. 간호원이 정검을 하더니
어두운 얼굴로 9시 45분에 운명하셨습니다.
예, 아니예요. 빠졌나 봐요. 믿기져지 않았다.
언니는 조금만 더 참으시지.아직 할 얘기도 남았는데
응응응,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하였더니
병실에 환자가 10명정도 누워계시는듯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울지 말라는것이었다.난는 안에서 울다가 밖에 나와서 엉엉 울고 또 울었다.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 가시고.
언니가 오고 숙희가 오고 고모 아들 내외가 오고 난희가 병실은 울음 바다가 되었다.
막내는 바로 중앙장례식으로 바로 왔다.
삼촌은 어느 장례식장으로 가는가 물어왔다.
2013년
6월 23일
아버지, 엄마 다리가 너무 아프셔서 수술 했어요. 왼쪽 무릎 관절이 견딜수 없어서 수술하고 2주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지금, 언니 집에 계셔요. 언니가 고맙기만 합니다.
언니는 공부도 많이 시키지도 못하셨는데 엄마 땜에 마음 고생하고 계시네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버지, 소 먹이를 엄마가 주시다가 다리가 너무 아프셔서 이제는 손을 놓으셨습니다.
엄마가 많이 힘드시나봐요. 이제는 퇴강도 가기싫답니다. 농사,소먹이 주는일이 너무 힘드셨나봐요.
75세 엄마, 언제 농사일을 접으실까 했는데요. 이제는 접으신듯 합니다.
이제 엄마 모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버지, 도와 주세요. 엄마가 편한곳으로 가실수 있도록 . 모시는 형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도 해주시고요. 엄마 살아 계시는 동안 편안히 잘 계시도록 해 주세요.
2014년 11월 23일
아버지, 엄마 남동생한테서 잘 계셔요
걱정마세요.
텃밭도 일궈시고 감갂으로 다니신데요.
아버지 , 엄마 이제 고집 좀 껶으신것 같아요.
아버지, 그동안 엄마 땜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지요. 농사 지으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엄마는 아버지 안계시면 스트레스 안받실줄 알았나봐요. ㅎㅎ
아버지 안 계셔서 늘 외롭고 심심하시는 줄도 모르고 후회 하실거예요.엄마는 아버지 항암치료 하셨는데도 조금 괜잖아 지셨다고
농사 일을 시켜셨잖아요. 아버지 왜 엄마 말씀을 거절 못하셨어요. 쇠약해진 몸으로 그 많은 농사일을 다 하시고
무거운 것을 들어다 나르시고 저는 배추 한포기도 들기 힘드는데요.
아버지, 저 지금 눈물을 닦으면서 울고 있어요. 제주도 가서 찍은 사진 인화 해드리지도 못한 것이 무척 후회 스러워요. 인화 해드려야지 하면서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아버지는 기다리시지 못하고 떠나셨지요. 아버지와 함께 코끼리 한테 바나나 주든 생각, 말타든 생각 귤농장에서 귤을 사서 함께간 증촌사람들께 나누어주든 생각,러브공원을 함께 구경하든 생각,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들은 즐겁기만 했는데 왠지 아직 엄마가 살아 계셔서 인지 엄마하고 제주도 간 기억을 하면 온통 스트레스 받은 생각 뿐이예요. 혼자 다닐때는 즐거웠는데 절에 갔을때 계속 절하고 빨리 내려오지 않으려고 하다가 너무 늦게 버스를 타서 동료들께 미안했던 생각, 엄마 다리 아프셔서 혼자 구경하고 늦게 와서 엄마께 혼난생각만 나네요. ㅎㅎㅎ
아버지, 러브 공원에서 아버지께 빨리 와 보시라고 하고선 부끄러운적도 있었어요. ㅎㅎ자가용 속에서 브레지어 걸어 놓고 삐걱거리는 소리 들릴때. 또 옛날에 자녀들과 한 방에 자면서 부부가 사랑하는 장면,바람들은 콘돔이 피식하고 꺼지는것 보고 좀 얼굴이 화끈 거리기도 했었지요. 팬티도 안입고 시커멓게 보이는 인형 모습들, 아기자기하고게 꾸며 놓은 러브 공원 참 볼만했어요. 엄마 못보신것 아버지는 보셨어요. ㅎㅎ 핫트 모양에서 아버지 사진찍어 드릴 때 맑게 웃으시는 모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납니다.
아버지, 벌써 아버지 3번째(음력11월 6일)의 기일이 다가옵니다. 그날 우리 형제들 모일것입니다. 이제 올케 힘들까봐 형제들 마음놓고 엄마보러 자주 못갑니다.
엄마,혼자 계시는 것도 불안하고 해서 아들한테 있어요. 아들, 아들 하시더니 아무튼 엄마는 잘 계십니다.
아버지, 천상에서도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어제는 신씨 아줌마 꿈에 아버지께서 보인다고 하셔서 마음이 좀 저려 옵니다.
기분 좋을때도 신씨 아줌마께 소식듣고 나쁘실 때도 신씨 아줌마께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묘 합니다.
전에는 아버지께서 깨끗한 옷을 입으시고 즐거워 하시더란 소식을 들으니 무척 기분이 좋았었는데. 제가 요즈음 좀 그렇습니다. 겨울이 되니 기름값도 많이 들고 경제가 좀 어렸습니다. 그래서 촛불(성-돈)도 잘 못 켜드리고
남편 차 할부도 내야하고요. 아들 용돈도 줘야 하고요.이자도 내야하고요. 이젠 쌀도 사 먹어야하고요.
외식을 줄이라고요. 근무하고 집에 가면 왠지 좀 짜증스럽고 청소하냐,시어머니 저지리한 것 보고 그냥 있잖이 짱나고 바빠요.
그래서 가끔 외식을 하곤 했죠
아버지, 엄마를 만나서 맛난 것도 사들리고 싶은데 너무 딸들한테 의지 하시고 며느리 아들한테 큰 소리치실까봐 좀 자제를 하고 있을 뿐이예요. 이해하시겠지요.
왜 엄마가 안보고 싶겠어요. 아버지는 엄마 성격 아시지요.
엄마 공부시켜 드릴려고 한글 공부할것 노트나 연필 지우개, 퍼즐 등 사가져가도 공부는 뒷전이시고 엄마 입던 옷 모두 커내서 저를 주실려고 하시고 냉장고 다 뒤져서 음식 다 싸 주실려고 하고
처음에는 마음이 여려서 그냥 주는 대로 싸왔어요. 근데 올케가 음식을 해먹으려고 하면 없더라면서 막내한테 얘기를 하더래요. 난 그런줄도 모르고 엄마가 다 썩혀 버린다고 꺼내주곤 했었지요.
때론올케가 버린 김밥도 주워서 저를 주시는것 있죠. 또 소고기 족 꼬아서 버린것도 주시고요.
그러면 전 냄새 맡아보고 시었으면 버려요. 엄마의 과잉도 병인가봐요. 이제 전 싫어요. 올케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주기만을 기대합니다.
저도 고부간의 갈등으로 엄청 힘이 들었잖아요. 그래서 올케만은 시집살이 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늘 올케편에 서서 살아가는 것 아시죠. 올케가 그 마음 알련지요. 엄마 생각하면서 시어머니께도 지난 과거 앙금 다버리고 잘할려고 노력하고 있었요.
섭섭한 얘기 엄마가 언니한테 얘기해도 전 언니 한테도 주는대로 먹고 자소리도 하지 말고 살아라고 타 일러라고 해요. 딸들 줄려고 애써지 말고 엄마만 잘 계시면 딸들은 편하다고 타 이러기도 합니다.
수다스러운 엄마, 제발 바꿔 주세요.
아버지, 엄마 잔소리 안들어서 좋으시죠. 하늘에서 엄마, 형제들 모두 보살펴 주세요. 참 삼촌들도 보살펴 주시고요.
모두들 욕심 부리지 말고 우애있는 집안이 될수 있게 해 주세요.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지네요. 눈물이 이제 말랐어요.ㅎㅎ
점심 먹어야 겠어요.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 전화기 없애지 않고 엄마가 쓰고 있어요. 가끔 아버지 보고플땐 벨 눌리기도 하지요. 다음에 다시 문안편지 쓸께요. 슬프 하지 마세요. ㅎㅎㅎ
하루도 잊지 못하는 둘째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