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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4회) 명문가의 여인 제1권 1장 [1] 하얗게 웃고 있는 그녀 남편을 눕힌 후, 예여사는 침대 곁 안락의자에 앉는다. 잠시 남편을 내려다보던 그녀도 눈을 감는다. 탄력 잃은 그녀의 두 뺨 위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여사는 남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오래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앓아온 긴 이야기 일 것이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남편이 색깔을 알 수 없는 어떤 번민과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혼 초. 미국유학 시절. 그때부터 예여사는 남편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도 희미하게 알고 있었다. 그 미움은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복잡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후, 예여사는 차츰 남편의 그 복잡한 색깔이 어쩌면 죄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생동안 단 한 번도 그러한 남편의 갈등과 복잡한 감정에 정면으로 충돌하며 알은 체 하려 하지 않았다.
결혼 전, 집안 어른끼리 혼인 말이 오고 가기 시작 했을 때, 한창 나이의 예나원은 조명준을 몇 번 만나보고 이내 그의 성격을 파악했었다. 대단히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러한 성격 탓에 다치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도 눈치 챘었다. 재벌가의 딸로 구김 없이 자란 그녀는 조명준의 이러한 미묘하고 복잡한 성격이 어슴푸레 땅거미 질 녘 같은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조명준을 예나원은 아름다운 청년이라 생각하면서 너무도 좋아했었다. 화학을 전공한 단순한 성격의 그녀는 시를 사랑하고 소설을 이야기하는 청년 명준에게 한 없이 끌려들었고, 고급의 단어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그의 말솜씨에도 매력을 느꼈다. 그런 명준을 만나는 나날이 처녀 나원에게는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그녀는 명준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결혼을 결심했었다. 결혼 후에도 다감한 남편의 성격에 계속 반해 있었고, 현학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를 한 사람의 남자로서 존경하고 사랑했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귀 기울이고 싶지 않는 남편의 혼전연애 사건이 바람결에 들려오기 시작 했을 때, 예여사는 남편에 대해 얼마간은 실망을 했고, 많이 번민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풍문에 대해 남편에게 물으려고도 따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친정집에서도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라고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외적 이유보다 그녀가 남편에게 한 마디도 알은체 하지 못했던 진정한 이유는 그녀의 내면에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대한 면역이 너무 길러져 있지 않았었다. 다치기 쉬운 조명준의 복잡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로서는 차마 남편의 상처를 건드리며 닦달 할 수가 없었고, 남편을 괴롭히며 망가질 자신의 참담한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다가 올 그들의 파국은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장면이었다. 예민한 남편에게 따지는 것은 곧 가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풍문 따위에 집착하지 말자고. 그렇게 작심하면서 일생을 통해 남편의 과거에 대해 일체 알은 체 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다. (그 결정에 도달하기까지는 정말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어.) 그녀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문득 가슴이 먹먹해 지면서 아파온다. 그 후, 예여사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단 한 번도 남편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았건만, 남편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마지막 순간에 와서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유언처럼 말하고 있다. 아무리 정신이 혼미한 환자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비록 혼전 스캔들이라고는 하나, 세상 모두가 번히 알고 있는 남편의 염문을 끝까지 알은 체 하지 않고 혼자서 참아 내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지금처럼 공중에 띄워 놓는 말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토록 오랫동안 어둡고 두꺼운 벽 속에 숨겨 놓고, 철저히 관리해 오던 그의 내밀한 세계를 더 지킬 힘이 없어졌대도 지금까지 아내에게 하지 못할 말이었더라면 죽음까지 가져가야 한다. 예여사는 가슴이 쓰라렸다. 조교수는 한 평생 살아오는 동안 과거로 향한 문이란 문은 철통같이 닫아걸고, 단 한 발짝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와는 상관없는 과거의 일이라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둔 보따리는 끝내 하나도 풀려 하지 않았다. 예여사는 그런 남편의 가슴 한가운데로 접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그런 고통을 안으로 삭이는 형벌 같은 시간이 있었고, 남편의 번민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자신에게, 너무 많이 절망하는 세월도 있었다. 그런 중에도 남편에 대한 풍설은 잊을 만하면 망령처럼 다시 살아나 그녀를 다시 흔들었다. 그것은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세월이었다. 미쳐버릴 것 같은 갈증과 인내를 경험하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불행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너무나 인간을 작게 만들었고, 갈등 속을 헤매게 하면서 서서히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체득했다. 그러나 그런 불행이 그녀를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못했다. 불행은 고통이지만, 그것이 누구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송두리째 손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느 의미에서는 정신적 성숙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 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자각 속에서 그녀는 차츰 성숙되어 갔다. 정신적 성숙만큼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중후하고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 되어 갔다. 예여사에게 그 힘든 세월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것 중에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지혜로운 버릇이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당시 그녀는 자주 자신에게 질문하는 버릇이 생겨 나 있었다. (너는 그를 사랑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답이었다. (그러면 그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도 하나였다. 틀림없이 남편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데 대한 확신이 섰다. (그렇다면 네게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에게 무엇을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그 질문에는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마땅한 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예여사는 마땅한 답을 찾아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마땅한 답이란 것이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다 확인하고 나서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부부 사이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예여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더 이상 확인하기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그들 부부 사이에 통한의 시간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일생동안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생활을 가장 돈독히 해 주었던 미국유학생활 중에 젊은 조명준은 벌써 아내에게 외부의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철저한 믿음과 사랑을 심어 놓았다. 조교수는 과거의 일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번민하는 것과는 달리 부부생활에서는 결코 떠도는 혼령처럼 현실을 일탈하려하지는 않았다. 예여사가 가슴을 열지 않는 남편에 대해 늘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지만, 남편이 절대 그녀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그 남편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갖고 있었다. 그 믿음 있어, 그녀는 오늘 날까지 조교수에게 끝임 없는 사랑과 헌신을 바칠 수 있었다. 중년이후부터 예여사는 남편이 과거에 철통같이 자물쇠를 걸어 잠근 일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졌다. 그런 남편의 태도는 그들 가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며, 남편의 인격을 인정하려고 했다. 그녀가 이렇게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조명준에게 반해 있었던 그들 젊은 날의 추억도 일조를 했지만, 목마른 사랑과 안타까움이 항상 그녀로 하여금 남편에게로 더 많이 기울어지게 한 것도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갈증을 느끼고 있는 관계란 결국 파탄을 맞든지 아니면 상대에게 끝없는 봉사를 바치게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그녀는 후자에 속하는 길을 선택했었다. 이제 남편이 떠나고 나면, 그에 대한 목마름과 안타까움만이 그녀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남편은 그녀의 고통은 헤아리지도 않고, ‘미안하다’면서 ‘당신한테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에게 무엇을 미안해야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 어떤 변명도 양해도 구한 적이 없으면서 마지막 고해야 하는 이 순간에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아내에게 잘못했다고 용서하라고 빌고 있다. ‘당신한테도 잘못했다’는 말은 또 다른 누구한테도 잘못했다는 말이 된다. 그 순간 그녀는 오랫동안 앓아오던 감정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을 맛보았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회복 될 수 없는 섭섭함이었다. 용서를 빌 일이었더라면 더 진작 가슴을 열고 이야기 했어야 하지 않았나를 생각하며 예여사는 가슴 저 아래로부터 밀려 올라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순간적으로 오열한다. 그녀의 울음은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내재 되어 있을 것이다. 남편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빙자하여 마지막을 고하려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울음일 수도 있다. 예여사는 계속 흐느껴 운다. 한 참을 흐느끼고 난 예여사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든다. (진작 당신이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나에게 말했다고 해서 우리의 부부관계에서 무엇이 달라졌겠어요. 분란을 싫어하는 당신은 어떤 경우에도 나와 아이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을 거라고 압니다.) 한 평생을 바쳤던 사랑을 빈 몸짓에 불과한 한낱 안타까움이 전부인 것으로 끝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남편을 내려다본다. 잠이든 듯 눈을 감고 있는 조교수의 얼굴은 육체적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예여사는 다시 중얼거린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죄의식과 방황의 그림자를 나에게 때때로 보여주기는 했어도 당신은 끝까지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었고, 아이들과 나를 사랑한 집안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예여사는 남편이 자신에게 다 보여주지 못한 어떤 것이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으려 애쓰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또다시 손등으로 훔친다. (이제까지 어두움 속에서 혼자 지고 왔던 무거운 짐은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예여사는 칼날에 베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남편을 가슴 깊은 곳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신에게 타이르며 옆에 있는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다. 한참을 얼굴을 수건에 묻고 울고 난 예여사는 몸을 낮추어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남편을 깊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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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명준교수의 성격이 생각한 것을 말하고 털어버리는 저와는 좀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잘 묘사했나 싶습니다. 특히 아내의 헌신,봉사하는 모습이 우리세대 아내들의 모습을 너무 잘 표현하셔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치인들의 탐욕과 오판이 지향되었으면 하는 것과 재벌이 모범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많아 해 왔습니다. 나중에 독한 비평 부탁합니다.
예나원 여사의 내면적인 심리 갈등을 너무나 현명하게 잘처리하고 있네요 . 조명준 그는 이중 인격자 가장 고상한척 가장 충실한척 아내를 기만하고
살고 있었으니 ...죽음앞에서 만이라도 솔직해져야 되겠지요
군자야. 내가 기쁜 것은 네가 읽어 준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순진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너와 삐딱했던 내가 어느 일요일. 경북대 언덕에 앉아 했던 이야기 너는 기억하니. 완성하지 못한 그 당시 나의 소설 구상에서 착하고 발랄한 여자는 네가 모델이었다.
예여사님의 자존심에 칼날에 베이는것 같은 고통도 모른척 했던 그 지난날들의 섭섭한 감정들이 조교수의 죽음앞에
자신을 더욱 서럽게 느끼는 애절한 마음이 곧 내마음 같이 ........
명미야 고맙다. 사범학교 시절,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늘 너를 순수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네가 정직한 여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사람이 관뚜껑에 못을 친 후에야 그 사람을 평한다고 하는데 지금 멀쩡한 듯한 사람들이 죽은 후에 천하에 몹쓸 인간으로 평가될지 누가 아니. 문득 보고 싶다. 그때 대구에 오길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명미와 나 가끔 너이야기 많이한다 싫건 수다떨고는 경이가 옆에 있으면 이 하살것 없는 이야기도 소설의 주인공이 될수있는
소재가 된다고 ...우린 마주 보고 또 피식웃고 ...소설 구상에서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영광이다 늘 착하고 발랄한 여자로
기억해주게나 잊지 않고 명심할께 .
점점 흥미를 당기는군요. 대단하신 모양을 내는군요.
2회가 더 있습니다. 끝나면 비평 부탁합니다.
섬세하게 묘사한 한국의 여인상을 바라 보면서 그래도 조교수는 충실한 남편역을 잘 해주어서 다행입니다. 3회에서의 답글처럼 조교수는 아직도 미지수입니다. 내면과는 다른 충실한 역활을 한 건지 과거의 과오를 털고 충실한 남편으로 살아 온 건지? 아직 아리송하면서 흐름에 촛점을 두고 조교수의 심리는 흘려버려야 하는 건지? //이제 4회니까 더 기다려야 할까요???
2회를 더 읽고도 바랍새가 아리송하다고 하면 또 고쳐 쓰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다.
새머리 말은 정평이 아니랍니다.ㅎㅎ
눈꼽마한 험집이라도 도리상? 찾아볼라꼬 쪽집게하고 도수가 더 높은 앵경까지 준비했는데.....아이네.....이바구에 완존 푹 빠져뿟는데 핑은 무슨 핑 같은 소리고 싶네. 우야모 양념도 빌로 안쓰고도 요로코롬 마싰고 영양가도 높은!!!!!!나는 말할때는 빌로 사투리 안쓰밍서.ㅋㅋㅋㅋ 니하고는 반대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장허다1 준호할매!
준호 할매만 아니고, 우리 영선이(며느리) 까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금 답을 쓰면서도 웃고 있다. '핑'은 해야 한다.
사랑과 믿음의 힘으로 참고 살아 온 예나원여사는 역시 명문가의 여인입니다. 희경님, 소설 제목이 너무 좋습니다.
너무 고맙다. 너의 평이 힘이 된다. 경숙이와 미국 간다는 소식듣고 빨리 전화 못했다. 어떤 사람은 제목이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고 해서 어떡할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고맙다. 다시 전화 할거다만, 조심해서 다녀 오너라.
예여사의 참고 견디며 남편을 보필해 온 정신적인 성숙의 아름다움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 말고 잘 못된 곳을 지적해 주십시오. 읽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곳이 있을 것 아닙니까. 부탁 드립니다.
그토록 오랜세월 인내하면서 해바라기같은 사랑을 한 예여사님은 한국의 여인상이십니다.
누가복음의 사랑에 대한 구절 구절이 생각나는 군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