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원과 최씨 고집으로 유명한 광동제약의 역사를 직접 쓴 저자가 그 동안의 겪었던 모든 것을 거짓없이 기록한 성공한 기업의 영화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귀중한 자서전입니다. 실제 IMF 당시 최종 부도 위기까지 맞았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절치부심하여 초히트 상품 ‘비타500’으로 재기와 대 역전에 성공한 기업으로 광동제약의 성공 뒤에는 40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제약사업 외길을 걸어온 창업주 최수부 회장의 올곧은 소신과 뚝심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인 최수부 회장의 오랜 경영 노하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경영 저력, 작은 부침에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인생 저력을 담아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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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부회장의 ‘뚝심경영’에서 현재의 광동제약을 건설함에 근본으로 삼았던 원칙들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험난한 세파에 인내와 끈기로 이룬 기업철학을 되뇌이노라면 새로운 생활의 지혜를 뜸뿍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 한우물만 판다 요즘은 규모가 큰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심지어 조그만 점포에 이르기까지 너무 쉽게 업종 전환을 생각한다. 물론 항상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그 분야에 도전하는 일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 시작한 일에 진정한 최선을 다해보기도 전에, 조금만 경영이 어렵거나 장사가 안되면 그 즉시 업종을 달리하고 간판을 바꾸어 다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그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고 40년 동안 한방 외길만 걸어온 최수부 회장은 통이 적었거나 도전을 두려워해서 한 우물만 판 게 아니었다. 자신이 택한 업종이 너무나 소중해서 감히 한눈을 팔 수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자신이 몸담은 울타리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여겼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 집념과 끈기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제약회사 외판원이었던 시절, 영업을 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온 경우는 그야말로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경우에도 맥없이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 반드시 다시 들렀다. 처음에는 목청을 높여 내쫓았던 사람들이라도 10번, 20번 찾게 되면 그 사람들도 약을 팔려고 온 게 아니라 정말 인사차 들렀다고 믿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끈질기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자꾸 들르는 행동 그 자체가 아니다. 갈 때마다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것. 비록 약을 사주지는 않아도 결코 섭섭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것. 언젠가는 그 사람도 내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이런 집념과 끈기가 그를 저력 있는 경영자로 키워냈다.
▶ 물건을 파는 순간, 고객과의 관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을 파는 순간 영업사원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무 연고도 없는 낯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외판원의 경우,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영업사원의 역할은 “물건을 파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비싼 약을 산 고객이 제대로 효과를 보게 하려면 사후 고객관리가 더 중요한 법이다. 약은 정성이 반인데,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제때 정량을 지켜서 먹지 않으면 효능을 제대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소신을 갖고 약을 산 고객들을 꾸준히 찾아갔다. 약을 팔기 전에 인사차 열 번을 찾아간 고객이 있다면, 약을 팔고 난 후에는 그보다 더 자주, 스무 번 서른 번씩 찾아갔다. 그러다 보니 약의 효능도 제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처럼 정성을 다한 결과가 바로 인간 최수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가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진심으로 고객을 소중하게 섬기자 고객들도 계속해서 그에게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켜야 할 기업인의 자존심과 의무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부, 행정 당국과의 마찰이다. 최수부 회장 역시 정부 당국자와 대립하게 된 일이 있었다. 광동제약이 만들어 팔던 ‘편자환’에 중국 인삼인 전칠을 넣었는데, 외화를 낭비한다며 정부 관료가 수입 금지 조치를 종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고려 인삼과 중국 인삼은 같은 인삼과에 속하지만 효능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 특유의 효능 때문에 편자환을 만들 때는 반드시 중국 인삼인 전칠을 넣어야 제대로 약효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억울한 마음에 몇 번이고 관계기관에 항의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담당자를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담당자를 만났지만, 설명할 틈도 주지 않고 욕설을 퍼붓는 통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회사가 문을 닫고 길거리에 나앉는 한이 있어도 자존심 있는 기업인으로서 더 이상 참기 어려웠고 참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정부기관장과 멱살잡이까지 하고 말았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전칠의 수입도 그대로 이루어졌고, 편자환도 정상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다른 경영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과거 관계 당국의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들 때문에 곤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부당한 조치에 무조건 복종하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때문에 스스로 기업의 존폐를 걱정할 만큼 위기를 자초하거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순간에도 기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기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만큼 세금 납부의 의무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원들의 월급날과 세금 납부 일을 지키는 것이 기업인의 일차적인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위기와 시련을 성공의 기회로 삼는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 있다. 바로 유사 제품에 관한 경험이다. 물론 우수한 품질의 제품이 나오면 그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더욱 좋은 제품을 개발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동일한 품목에 진출하는 후발 기업들이 질 떨어지는 저질 제품으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이 없다. 그것은 결국'너 죽고 나 죽는' 최악의 결과가 되고 만다. 광동제약 역시 경옥고에 인삼 대신 도라지를 넣은 업체가 적발된 가짜 경옥고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 업체 때문에 고객들은 경옥고는 다 엉터리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정성껏 제품을 만드는 광동제약까지 회사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는 고민 끝에 이동 건재상을 생각해냈다. 경옥고가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은 결국 소비자가 직접 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원재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라지를 넣었는지 인삼을 넣었는지 직접 보지를 못했으니, 설사 산삼을 넣은 경옥고가 있다 하더라도 그 효능을 신뢰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일정한 처방에 따라 약재의 종류와 함량을 정한 후 이를 잘게 썰어 투명한 봉투에 담아 파는 이동 건재상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광동제약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더욱 튼튼한 회사로 성장해나갔다.
▶ 같이 먹고 같이 산다(직원의 기를 살려라) 그는 직원들에게 엄하기로 소문난 경영자다. 하지만 그가 언성을 높이는 것은 직원들이 맡은 바 일을 소홀히 하거나 그 때문에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만한 일을 했을 때다. 그래도 직원들이 그를 믿고 따라주는 것은 그의 꾸지람에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평소 직원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일에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급적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직접 챙겼고, 급한 경우엔 기꺼이 돈을 융통해주기도 했다. 외국 출장처럼 불가피한 일이 생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직원들의 경조사에 100퍼센트 참석하고자 노력했고, 아무리 회사 사정이 어려울 때라도 직원 식당의 쌀과 음식 재료만은 항상 최상품을 쓰도록 했다. 회사의 기반이 잡힌 다음부터는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힘썼다.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중졸 직원들을 위해 인근 고등학교와 연계하여 야간 특별 학급을 운영했고, 아파트를 분양 받아 영업사원들을 위한 숙소로 썼다. 또 해외여행이 일반화되기 전인 1980년대에 영업사원들에게 하와이 연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는 긴박한 순간에 큰 보답으로 돌아왔다. 어려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직원들은 너도나도 발벗고 나섰고,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전 사원의 상여금을 전액 자진 반납하는 등 직원들의 고마운 노력 덕분에 광동제약은 부도 위기를 극복하고 ‘비타500’이라는 대 역전타를 날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보유하고 있던 대표이사 주식 10만 주를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양도했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이 살고, 직원이 살아야 회사가 산다는 것을 40년 동안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 기회는 제 발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황청심원, 광동탕 등 광동제약에는 장수상품이 많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항상 새로운 제품을 꿈꾼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국내 최초 마시는 비타민 C인 '비타 500'이다. 비타민이 몸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야 누구나 다 알지만 그렇다고 매일 레몬이나 사과나 귤을 수십 개씩 까먹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물에 녹여 먹는 비타민C 였는데, 몸에 좋은 비타민인데다 무카페인 음료라는 점이 주효했다. 비타 500은 세상에 나가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밤늦게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 회복에 그만이라는 소문이 난 덕분이었다.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하고도 일손이 딸릴 정도로 비타500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5월에 판매 1억 병을 돌파한 즈음부터 제약업계에서 신화라 불리는 박카스를 위협한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고, 2004년 10월 현재 매출 600억을 돌파하는 등 빅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